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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독창보다 합창, ‘사회적 뇌’도 입을 맞춘다

등록 2015-03-26 14:44수정 2015-03-26 14:44

뇌과학으로도 활성화 확인…행복·만족감 더 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https://www.youtube.com/watch?v=sJQ32q2k8Uo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https://www.youtube.com/watch?v=sJQ32q2k8Uo

“오 친구여, 이런 음색이 아니라

좀 더 유쾌하고 기쁜 음색들로

노래하지 않으려나

환희! 환희!

환희, 신들의 아름다운 불꽃,

낙원 ‘엘리시움’의 딸이여

우리는 불꽃에 취해

천국 같은 신성한 곳으로 가네

그대의 신비로운 힘은

관습이 엄격히 나눠놓은 것들을

다시 하나로 합쳐 놓네

모든 사람들은 형제가 되네

그대의 부드러운 날갯짓이 반짝이는 곳

친구의 친구가 된 자들이여

사랑스런 여인을 얻은 자들이여

다함께 기뻐하세”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합창’ 중에서

바야흐로 봄입니다. 봄햇살 속에 합창하듯 일제히 새싹을 틔우는 꽃과 나무들의 모습이 참 눈부십니다. 독일 시인 실러의 송가 ‘환희에 붙여’에 선율을 붙여 만든 베토벤의 교향곡 ‘합창’을 우연찮게 듣고나니, 환하게 찾아온 봄을 환영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몸짓 중에서도 유독 합창단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25일 ‘기쁨콘서트‘를 여는 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 26일 ‘음악사 속의 합창이야기’를 개최하는 강릉시립합창단, 21일 창단연주회를 펼치는 구미여고 40~50대 동문들로 구성된 ‘더 릴리즈’, 26일 봄을 주제로 올해 첫 정기연주회를 여는 인천시립합창단이 노래로 자기 고장의 봄소식을 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인천시립합창단 연주회에서는 ‘세노야’, ‘산넘어 남촌에는’, ‘노란 셔츠의 사나이’ 등 대중음악들을 편곡해서 부를 계획인데, 그 중에서도 그룹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합창한다고 해서 눈길이 더 많이 갑니다.

벌써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벚꽃엔딩’을 혼자서 흥얼흥얼 따라 부르는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혼자서 부르는 ‘벚꽃엔딩’과 여럿이 합창으로 부르는 ‘벚꽃엔딩’은 과ㅣ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더 구체적으로 우리 마음 속에 어떤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것일까요?

미국 대학들 중 생물학 분야 명문으로 손꼽히는 스크립스 리서치 인스티튜트에서 신경생물학을 담당하는 래리 파슨스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합창을 할 때에는 혼자서 노래를 부를때 반응하지 않던 다른 부위의 뇌 영역이 활성화 된다고 합니다. 혼자서 노래를 부를 때에도 중독성 마약에 대해 반응하는 곳과 같은 부위인 뇌 시상하부의 ‘쾌락중추’ 복측 피개부가 활성화 되지만, 합창을 할 때에는 거기에 더해 이른바 ‘사회적 뇌’ 부분이 활발한 활동을 보인다는 것이죠.

뇌의 아래쪽 후두엽과 측두엽에 걸쳐있는 뇌피질 중에서 가운데가 굵고 양 끝이 가는 모양으로 밭이랑처럼 솟아올라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데 관여하는 방추상회(紡錘像回), 뇌의 옆면에 위치하여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곳을 감지하는 우측 상부 측두골 뇌구(腦溝 뇌에서 도랑처럼 파인 부분), 다른 사람의 몸을 관찰하는 기능을 하는 후두부 대뇌 피질의 일부, 뇌의 기저부에 위치하여 기본적 시각정보 처리를 담당하는 상구(上丘 위쪽 둔덕 모양 뇌 부위), 인간의 강렬한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 등이 서로 입과 호흡을 맞추고 동작을 최대한 일치시키며 합창을 할 때 반짝반짝 ‘불’이 들어온다는 것이죠.

뇌의 집행기능을 촉진하는 전두 두정엽(앞뇌 정수리 부분)의 신경망과 감각과 관련된 전전두엽(앞뇌 가장 앞쪽 부분)의 피질도 깨어납니다.

특히 눈과 가까운 쪽 뇌 부분인 안와전두피질, 정수리 부분 오른쪽 아래 두정피질, 후두 중간 앞쪽 피질이 사람이 협력과 관련된 행동을 할 때 유독 더 눈에 띄게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기능성자기공명영상 조사를 통해 본 협력과 경쟁의 신경학적 토대’ (미국 워싱턴 대학교 ‘학습과 뇌과학 센터 사회인지신경과학 실험실’ 진 디세티, 필립 잭슨, 제시카 서머빌, 티에리 차미네이드, 앤드류 멜초프) 논문.
‘기능성자기공명영상 조사를 통해 본 협력과 경쟁의 신경학적 토대’ (미국 워싱턴 대학교 ‘학습과 뇌과학 센터 사회인지신경과학 실험실’ 진 디세티, 필립 잭슨, 제시카 서머빌, 티에리 차미네이드, 앤드류 멜초프) 논문.

합창을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모여 연습을 하다보면, 소속감과 함께 무엇인가를 같이 한다는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되어 외로움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 노래는 소프라노 없인 못불러”, “역시 베이스가 없으면 어딘가 비어 보여”하는 얘기들을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도 “나는 이 합창단에서 꼭 필요한 존재야”라는 의식을 갖게되면서 ‘인정욕구’가 충족되어 행복감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음악교육학 교수 그레이엄 웰치 박사에 따르면, 규칙적으로 노래교실을 다니는 어린이들은 신체적으로 호흡, 심장, 신경 계통의 발달에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노래를 부를 때 호흡을 조절하고 가사 속 어휘의 음운에 신경 쓰며 발성을 하기 때문인 것이죠.

교육적 관점에서 볼 때도 노래 교육을 제대로 받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배운 것을 이해하는 능력과 기술이 더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음악작업을 하면서 소통하고 공동체에 대한 이해의 기초를 다지기 때문에, 노래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아 노래 능력이 뒤처지는 아이들에 비해 더 긍정적인 자아관념과 사회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호주 그리피스 대학 공중보건센터 돈 스튜어트 교수의 연구는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의 효과를 직접적인 수치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튜어트 교수 연구진은 그리피스 대학이 위치한 퀸즈랜드 지역 5개 팀을 포함한 21개 합창단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조사대상 합창단원들의 98%가 자신들의 삶의 질을 좋거나 최상급이라고 점수를 매겼다는 것이죠. 그들의 81%는 자신들의 건강에 만족하거나 매우 만족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합창단원들의 51%가 실제로는 오랜 기간 건강문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 호주사람들의 평균보다 2배 높은 수치인데요. 함께 한다는, 그리고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의식이 합창단원들에게 행복감과 삶에 대한 만족감을 줬다는 것입니다.

같은 합창단원으로서 적어도 함께 노래 부르는 순간 만큼은 에리히 프롬이 말한 변증법적 휴머니즘의 목표 즉, 사회적 계급이나 차별이 없는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진정한 인간공동체가 이뤄지기 때문인 걸까요?

예전 한국방송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서 이경규, 이윤석, 김태원씨 등을 비롯한 연예인들과 일반인 출연진들이 보여줬던 행복과 감동 가득한 얼굴 표정들이 다시 한번 눈에 선하게 펼쳐집니다.

수전 보일의 ‘메모리’.  https://www.youtube.com/watch?v=U2q0T2Wg5iE
수전 보일의 ‘메모리’. https://www.youtube.com/watch?v=U2q0T2Wg5iE

“노래 속으로 날 제대로 인도한 것은 엄마였습니다. 엄마는 내 목소리에 뭔가 있다는 것을 아셨죠. 내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느끼셨으니까요. 그 몇 년 전 내가 12살이었을 때 합창단에 들어가라고 등 떠민 사람도 엄마였죠. 합창단과 함께 시작해라, 그리고 너를 사로잡는 지점을 바라보아라 말씀하신 엄마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자폐증상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딛고 세계적 가수로 우뚝 선 수잔 보일의 말처럼, 새 봄을 맞아 함께 입 맞추어 부르는 합창 속에서 사람들은 삶의 한순간을 사로잡는 중요한 무언가를 눈부시게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14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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