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민간부문에서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합니다. 저는 분명히 음악인이고 또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실험’들 중의 하나가 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이 있고 또 할 수 있다는 그 생각에 스스로 도움을 받는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내가 무중력 상태에서 어떻게 노래하는지를 보게 될것입니다”
올해 9월 인류 최초의 우주공연을 앞두고 있는 영국의 세계적 여성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은 위와 같은 말로 음악적이면서도 물리학적인 실험의 개인적 동기를 밝혔습니다.
이 실험을 위해 570억 원을 지불한 그녀는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올라가 우주에서 열흘간 머물 예정인데요. 그곳에서 뮤지컬계 거장이자 전 남편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노래를 부를 예정이라고 합니다.
들어가는 돈도 어마어마하지만, 개인적으로 특별한 실험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미적 경험을 얻어보려는 사라 브라이트만의 예술가로서의 열정이 더더욱 어마어마하게 느껴집니다. 열정적인 물리학 연구를 통해 우주 만물의 근원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공식을 발견해내려고 했던 아인슈타인처럼 그녀가 이번 우주공연 실험에서 무슨 미적 경험을 통해 어떠한 음악 법칙의 실마리를 발견해낼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실험미학’이 지구에서 이뤄져온 것이라면, 이번 사라 브라이트만의 ‘실험미학’은 지구를 벗어나 우주공간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험미학’은 19세기 독일의 과학자이자 철학자 구스타프 테오도르 페흐너가 심리학의 입장에서 미적 경험의 법칙을 탐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주창한 것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하여 18세기 독일의 바움가르텐, 칸트, 쉴러, 헤겔 등의 철학자들이 관념적 차원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 즉 ‘미학’을 연구했다면, 페흐너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심리학, 그 중에서도 실험을 통해 미적 대상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느끼는 감각의 크기는, 자극의 크기의 로그(log)에 비례한다”라고 하는 ‘페흐너의 법칙’을 주장했습니다. 이 법칙에 따르면 미적 자극의 세기를 강하게 함에 따라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의 세기는 처음에는 급격하게 변하지만 점차 그 증가율이 약해지게 됩니다.
20세기 초반 무조성 음악이라는 파격적 실험을 했던 쇤베르크를 예로 들자면, 한 옥타브 안의 열두 반음을 모두 동원해 재배열시켜 음열을 만든 뒤 그것으로 선율을 진행시키는 12음열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의 음악은 장조와 단조의 구분이 없고 불협화음과 협화음의 경계도 없어 처음 들을 땐 놀라움의 크기가 굉장하지만, 그 음악을 들은 사람이 그 뒤 더 큰 자극을 주는 실험 음악을 듣게 되었을 땐 놀라움의 크기가 처음만 못하다는 주장인 것이죠. 아이스크림은 처음 먹었을 때가 가장 맛있게 느껴지고 그 다음부터 먹으면 먹을수록 처음 먹었을 때보다 맛있는 느낌이 점점 더 줄어든다고 하는 경제학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이후 현대에 들어서는 D.E. 벌린이 ‘새로운 실험 미학 연구’ 등의 저서들을 통해 미적 대상에 대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얻고 그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보편적 법칙을 얻는다는 자연과학적 방식으로서의 ‘실험 미학’ 토대를 더욱 더 굳건히 다졌습니다.
P.T. 맥멀렌과 M.J. 아놀드는 ‘리듬에 있어서 반복이 선호도와 흥미에 미치는 영향’에서 아주 복잡한 음악과 리듬은 처음엔 너무 낯설어 듣는 사람의 기쁨 수치가 낮지만, 반복해서 듣도록 하면 귀에 익숙해짐에 따라 덜 복잡하게 느껴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기쁨이 최대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죠. 1992년 서태지가 ‘난 알아요’를 들고 나왔을 때, 댄스곡에선 처음 도입된 강렬한 전자기타 리프 등의 영향으로 처음엔 굉장히 낯설게 느꼈다가 점차 귀에 익으면서 듣는 기쁨이 배로 증폭되었던 이유가 설명되는 셈입니다.
E.L. 워커는 ‘고슴도치 이론과 음악교육’ 등에서 소리의 미적 자극 즉, 음악이 적당하게 복잡하고 불확정적이며 변화무쌍해야 듣는 사람이 기쁨을 많이 느끼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K.C.스미스와 L.L.커디는 ‘기쁨을 주는 선율 ; 반복과 친숙해짐의 효과’에서 음악 화성의 복잡성 정도에 따라 기쁨을 느끼는 수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유럽 고전음악에서 사용하는 화성들을 난이도별로 5단계로 객관적으로 나눈 뒤, 그 화성들이 들어간 선율 20개를 36명의 심리학 전공 대학생들에게 들려주었더니, 느끼는 즐거움이 화성의 복잡성 정도에 따라 달라졌다고 합니다. 또한 그 선율들을 들은 학생들의 음악경험 수준에 따라 즐거움의 정도 또한 다르게 나타났다고 하죠.
R.W. 런딘은 ‘음악의 객관적 심리학’에서 대중음악의 경우 몇 번만 반복해서 들으면 즐거움을 최대로 느끼는 경향이 있는 반면, 고전음악의 경우에는 상당한 정도로 반복해서 들어야 정서적 즐거움이 최대치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고전음악의 경우 복잡성이 대중음악보다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들어야 익숙해지고 그렇게 익숙해진 만큼 즐거움이 증가한다는 것이죠.
D.J. 하그리브스는 ‘음악을 좋아하는 데 있어 반복이 미치는 효과’에서 성인과 대학생들에게 아방가르드 재즈, 대중음악, 고전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아방가르드 재즈곡을 들은 성인그룹에서 반복에 의해 선호도가 증가된 것을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아방가르드 재즈는 전위적 실험적이라는 아방가르드의 말뜻처럼 재즈 중에서도 조금 난해한 재즈를 말하는 데, 그러한 재즈를 들은 성인들이 처음에는 즐거움을 잘 못 느끼다가, 반복해서 듣다보니 나름의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최적 복잡성’ 연구결과들에 따르면 음악에 대해 즐거움을 느끼는 정도와 음악자극의 복잡성 사이에는 ‘역 U자 모양’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합니다.(아래 그림 참조)
음악에 대해 즐거움의 정도를 Y축으로 놓고, 음악자극의 복잡성을 X축으로 놓고 볼 때, 음악자극의 정도가 중간 정도에 이르렀을 때 음악에 대한 즐거움의 수치가 최대치에 이른다고 합니다.
음악에 대해 즐거움의 정도를 Y축으로 놓고 음악자극의 복잡성을 X축으로 놓고 볼 때, 음악자극의 정도가 중간 정도에 이르렀을 때 음악에 대한 즐거움의 수치가 최대치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죠. 마치 공자의 ‘중용’ 철학을 음악 속에서 발견하는 느낌도 듭니다.
근래 들어서는 미적 자극에 대한 뇌 신경반응 데이터를 통해 아름다움의 과학적 인과관계를 밝혀내려는 ‘신경미학(Neuroaesthetics)‘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뇌에 관한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연구들에 따르면, 사람의 뇌에서 무엇이 아름운지 미적 판단을 내리는 주요 부분은 뇌의 배측면 전두피질과 안와전두피질이라고 합니다.
나달, 무나, 카포, 로셀로와 셀라 콘디의 연구에서는 사람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름답다고 느끼면 뇌의 배측면 전전두피질((背側面 前前頭皮質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아래 그림 왼쪽 위 가장 파란 부분)과 안와전두피질(눈이 위치하는 두개골 내의 공동쪽 앞뇌 겉부분 眼窩前頭皮質 orbitofrontal cortex, 아래 그림 왼쪽 아래 하늘색 부분)이 활성화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영국 런던글로벌대학(UCL) 신경미학 교수 세미르 제키 등의 연구에 따르면 안와전두피질은 그림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스위스 제네바대학 비누 알루리 박사 등의 연구에선 안와전두피질이 음악적 아름다움이나 선호도에 대한 미적 판단과 연관된 긍정적이고 정서적인 경험에 중요하게 관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구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카트자 코르니쉐바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단순한 음악 빠르기가 아닌 리듬패턴의 아름다움을 판단할 때 뇌의 복내측 전전두 피질(腹內側 前前頭皮質 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위 그림 왼쪽 가운데 옅은 남색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토모히로 이쉬즈 박사 등의 연구에서는 음악과 그림에 대한 집약된 미적 경험과 관련된 뇌의 아주 미세한 영역 즉, 안와전두피질 중간부분 A1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죠.
사라 브라이트만 ‘넬라 판타지아’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XKd783xdG6s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뇌의 안와전두피질과 관련된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에서 신경과학을 가르치는 제임스 팰런 교수는 사이코패스들의 뇌에서 바로 이 안와전두피질의 활동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살인 등의 강력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들의 뇌 부위 중에서도 바로 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안와전두피질’ 부분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더욱 놀라운 사실은 팰런 교수가 우연찮은 기회에 자기의 뇌 사진을 보니, 바로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전형적 특성을 가진 뇌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는 점이죠. 혹시나 하여 가계도를 추적해보니 가까운 조상 중에 모친 살해범을 포함한 살인자가 여러 명이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팰런 교수 자신은 범죄와 아무런 관련 없이 신경과학자로서의 길을 꾸준히 걷고 있습니다. 팰런 교수가 음악이나 미술 등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교육을 통해 뇌의 안와전두피질을 발달시켜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유전자의 영향을 이겨내고 자기의 의지대로 삶을 개척해냈다고 하면 과연 지나친 비약이 되는 것일까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는 역사를 거듭하며 더 이상 아름다움뿐만이 아닌 철학, 심리학, 뇌신경학, 윤리학, 교육학 등과의 ‘관계학문’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주로 날아가 인류 최초로 음악공연을 하는 사라 브라이트만은 무중력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어떠한 생각의 음표들을 지구로 아름답게 흩뿌릴지 ‘관계학문’ 차원에서도 사뭇 궁금합니다.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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