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나를 가장 흥분하게 만드는 일 중의 하나는 바로 노래가 떠오를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앉아서 기타나 피아노를 치는 것이다”
2015년 5월2일, 수많은 한국의 비틀즈 팬들이 그토록 고대해오던 내한 공연을 하는 폴 매카트니는 노래를 만드는 일은 나이와 상관없이 심장을 떨리게 만든다고 말했습니다. 매카트니는 한국에 오기 전 가졌던 일본 공연에서 2시간40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31곡의 노래를 내리 불렀다고 합니다. 걱정이 된 관객들이 물 좀 마셔가며 하라고 소리쳤을 정도라고 하죠.
폴 매카트니는 1942년 영국 리버풀 태생으로 한국 나이로 따지면 74살이나 되는데, 도대체 어디서 그런 말도 안되는 괴력이 샘 솟는 것일까요? 또 얼마나 기억력이 좋길래 그 많은 노래들의 가사를 거의 까먹지도 않고 그렇게 능수능란하게 부르는 것일까요? 음악을 오래도록 하면 혹시 가사를 외우는 능력이 남몰래 좋아지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시끄러운 레스토랑에서도 친구 음성 정확하게 판별
음악과학 연구에 따르면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폴 매카트니처럼 오랜 기간 꾸준히 음악활동을 해온 음악인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노화로 인한 기억력이나 청력 감소가 덜하다고 합니다. 미국 일리노이즈 에반스톤의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신경생물학과 생리학, 소통과학을 연구하는 청각신경과학 실험실의 니나 크라우스 교수는 위와 같은 사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였습니다.
크라우스 교수는 9살 이전부터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그 뒤로도 계속 음악활동을 해온 18살~65살 연령대의 40여 명과 음악교육을 3년 미만으로 받고 음악활동 또한 뜸한 같은 연령대의 40여 명의 머리에 전극을 부착하여, 그들이 청각신호에 얼마나 적절한 시간대에 반응하는지 살펴보는 ‘신경 타이밍’ 측정 실험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오랫동안 음악활동을 해 온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과 비슷한 속도로 청각신호를 처리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물론 음악활동이 뜸한 사람들은 청각신호 처리속도가 젊은 사람들에 비해 뒤쳐졌구요.
오랫동안 음악활동을 해온 사람들은 시끄러운 레스토랑 소음 속에서도 친구의 음성을 정확하게 기억해서 판별해냈습니다. 크라우스 교수에 따르면 복잡한 소음 환경에서 특정한 소리의 패턴을 알아차리는 기억력은,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과 베이스 등의 선율과 화음, 리듬패턴을 분별하여 파악해내는 기억력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크라우스 교수 연구팀은 소음 환경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와 악기 소리 패턴을 알아내는 민감성이 소음 속에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죠.
깁슨 기타를 들고 있는 폴 매카트니. 한겨레 자료사진
크라우스 교수에 따르면 음악을 듣는 것을 넘어 악기를 직접 연주하면 청력과 기억력이 나이를 덜 먹게 된다고 합니다. 악기를 연주하면 뇌와 척수를 잇는 줄기 역할을 하는 뇌간(腦幹, brainstem)의 자동처리에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이 뇌간은 진화론적으로 꽤 오래된 부분으로서 숨쉬기, 심장박동, 복잡한 소리에 반응하는 등 중요한 기능을 맡고 있죠. 크라우스 교수는 악기연주가 대뇌 피질 하부의 감각회로를 근본적으로 형성시킬 수 있기 때문에 소음 속에서 읽기와 듣기 능력 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맥길대학에서 인지심리학과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대니얼 레비틴 교수는 기억력에 미치는 음악의 영향력에 대해 “음악에는 기억에 꼬리표를 붙이는 기능이 있어서”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특정 음악을 들으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데, 이는 뇌에서 음악을 이용해 기억을 각인시켜 놓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음악은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 구실을 하므로 격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면 그 기억을 음악적 요소로 만들어 꼬리표를 붙여 놓는다는 것이죠.
치매환자 맞춤형 음악치료로 몇달만에 아내 알아봐
이렇게 기억에 꼬리표를 붙이는 능력 때문일까요? 음악을 들으면 치매를 예방하거나 나아가 치매를 어느 정도 치료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도 많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음악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거나 인지기능을 회복하는 데 모종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증거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미국 비영리재단 ‘음악과 신경학적 기능 연구소’의 집행이사인 콘체타 토메이노 박사는 “음악은 퇴행성 질환으로 인해 기능이 원활하지 않은 뇌의 중요 부위를 자극한다”고 말합니다. 30여 년간 음악의 치료효과에 대해 연구해온 토메이노 박사에 따르면, 집에서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알츠하이머 환자가 긍정적 영향을 얻는다고 합니다. 오페라나 클래식, 재즈나 종교음악을 즐겨 듣거나, 가족들이 모였을 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 기억이나 인지기능 회복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중기에서 말기에 이르는 치매환자 45명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3번, 한 차례에 1시간씩 10개월간 개인 맞춤형 음악치료를 시행한 결과, 그들의 인지기능 테스트 점수가 50% 가까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그 중 한 명의 환자는 몇 개월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부인을 알아봤다고 합니다. 뉴욕 브롱크스 소재 베쓰 에이브러햄 건강 서비스 센터의 음악치료사이자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램지는 “치매 환자들은 음악청취를 통해 물리치료를 받는 것과도 같이 인지기능 회복효과를 본다”고 합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후 렛 더 독스 아웃’ 같은 새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면 그 노래를 애창하게 되는 데, 이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뇌 속에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게 된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음악 청취는 자폐증 아이들이 소통하는 데, 중풍 환자가 말과 거동을 하는데, 치과 외과 정형외과 환자가 주기적인 통증을 제어하는 데, 정신과 환자가 불안과 우울증을 다스리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고도 합니다.
젊은 시절 폴과 린다 매카트니. 한겨레 자료사진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마음과 뇌 센터’의 인지 신경과학자 피터 제네타는 이마 바로 뒤쪽 내측 전전두엽 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mPFC)이 음악과 기억과 감정의 ‘중추’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저널 ‘대뇌 피질’에 발표한 그의 논문에 따르면 13명의 데이비스 캠퍼스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8~18살 사이였을 때 음악순위차트 100에서 무작위로 뽑은 30개 음악의 발췌본을 듣게 하고 자기공명영상을 찍었더니, 노래들이 개인의 특정한 기억을 떠올리게 할 때 내측 전전두엽 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 mPFC)에서 특별하게 강한 활동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제네타 박사는 그러한 뇌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음악들을 일컬어 마음으로 보는 ‘정신적 영화장면’의 OST라고 부릅니다. 내측 전전두엽 피질은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면서 가장 나중에 위축되는 뇌 부위로 알려져 있죠.
마음으로 보는 ‘정신적 영화장면’의 OST
하버드 의대에서 음악, 신경영상, 뇌 유연성 연구를 하고 있는 의학박사 고트프리드 쉴록은 “악기 연주는 손가락을 두드리는 것에서부터 춤을 추는 것에 이르기까지 여러 동작을 취하게 하며 그와 함께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한다. 다차원적 감각과 운동 경험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또한 뇌에서 기쁨을 느끼게 하는 등의 보상체계에도 관여한다”고 말합니다. 음악활동을 하면 ‘쾌락 중추’라고 부르는 중뇌 부분의 복측피개영역(VTA, ventral tegmental area)~전뇌 부분의 내측전전두엽(medial prefrontal cortex)~중격측좌핵(nucleus accumbens) 등으로 연결되는 신경회로망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기쁨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집중적인 음악훈련을 하게 되면 창의성과 인지기능 그리고 학습능력과 관련된 뇌 부위에서 새로운 신경회로가 만들어지며 이 과정이 오랜 기간 반복되면 뇌의 기능과 구조가 바뀌게 된다고 합니다.
음악을 들으면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는 쾌락 중추 복측피개영역 (VTA, ventral tegmental area). 그림 가운데 부분. 위키피디아
고트프리드 쉴록 박사는 또 “음악학습은 뇌손상을 당한 사람이나 학습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손상되거나 막힌 뇌 회로를 대체하는 통로 혹은 다른 우회통로를 제공하고 뇌의 다른 부분들을 연결함으로써 그들에게 회복 효과를 가져다준다”고 말합니다.
미국 연방하원 의원 가브리엘 기퍼즈는 2011년 1월 애리조나주 투쏜에서 있었던 유권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제러드 리라는 정신 이상자의 총격으로 뒤쪽 머리에 총을 맞아 총알이 왼쪽 뇌반구를 관통한 심각한 총상을 입어, 말하기와 관련된 뇌 중추에 중대하고도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습니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까지 여겨지는 치명적 뇌손상을 입었던 기퍼즈 의원은 언어자극과 음정 음높이 음조 등 억양 멜로디 치료 등을 통해 의사소통 기능을 일부 회복했다고 합니다. 그해 8월에는 걷기와 쓰기가 가능해졌다고 하죠.
기퍼즈 의원처럼 뇌 기능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을 위한 음악치료 방법으로는 ‘리듬 청각자극(RAS ; Rythmic auditory stimulation)과 ‘시파리(SIPARI)’라고 하는 만성적 실어증 실증치료가 있습니다. RAS는 ‘리듬청각신호’라고도 표현되며 적절한 타이밍에 반응하도록 운동감각을 동기화시키는 치료방법이고, 독일 WHU(University of Witten-Herdecke) 등에서 연구되고 있는 SIPARI는 리듬선율음성훈련기술, 전자음악 만들기, 미리 녹음된 노래와 라이브 음악 듣기 등을 통해 뇌 기능 회복에 음악적 요소가 개입하도록 설계된 치료방법입니다. RAS는 뇌졸중 환자의 걸음걸이 속도와 길이, 보폭 균형의 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고, SIPARI는 심각한 뇌손상 뒤 중증 건망증 환자에게 환자가 좋아하는 라이브 음악과 녹음된 음악을 들려주어 불안감을 완화하고 방향감각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보았다고 합니다.
뉴욕대학교 의학대학원 첼시 포브스 박사는 이러한 음악치료 방법들에 대해 조금 더 체계화된 검증과정이 남아있지만, 환자에게 어떠한 해악도 끼치지 않고 적은 비용으로 쉽게 시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검토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내서도 치료 효과 논문 줄이어
음악을 통한 치매 치료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4년 명지병원 한현정 교수 등 연구진은 약한 치매증상을 보이는 108명을 대상으로 1년간 민요, 가요, 부르기와 소고 등의 악기 다루기를 즐기게 한 결과, 음악치료가 경증 치매환자의 우울증과 불안감 감소에 도움을 주며, 대중교통 이용이나 돈 관리 같은 일상생활 능력을 개선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죠. 또 2014년 성신여대 음악치료학과 이성은씨의 석사논문에선 주의력과 단기기억력 중심의 인지재활 음악치료가 치매노인의 인지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했습니다. 중간 등급 치매를 진단받은 65세 이상의 노인 12명을 대상으로 음악적 주의제어 훈련(MACT)과 음악적 기억훈련(MMT) 중심의 인지재활 음악치료를 실시하였더니, 인지기능에 전반적인 변화가 생겼고 특히 전두엽 인지기능과 언어관련 기능에 의미 있는 향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2011년 추계예술대학교 이보미씨의 석사논문은 국악을 통한 치매 치료 연구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치매노인 8명을 대상으로 2분박 또는 3분박 호흡법을 통해 손뼉 장단 치기를 하고, 민요를 따라 부르거나 들으면서 음악에 맞춰 소고로 정확한 장단을 연주하며, 치료사와 치료 대상자가 각각의 악기를 가지고 함께 합주하는 등의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활동에 대해 미소, 눈 맞춤, 언어적 표현이 전혀 없었거나 5번 미만 이었던 대상자가 후반에는 8명 모두 미소, 눈 맞춤, 언어적 표현이 5번 이상 되었고, 미소만 짓던 대상자는 미소에서 웃음소리를 내거나 짧은 단답형 또는 단어의 표현에서 문장으로까지 확대된 표현을 하였다고 합니다.
폴 매카트니의 ‘퀴니 아이’ 공식 뮤직 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5CfLUmVso30
2030년 65살 이상 노인 중 치매환자 100만 명 넘을 듯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46만9000여 명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약 8.8%였고, 이 수치는 점차 늘어 오는 2030년에는 치매노인이 100만 명을 넘어서고 비율도 9.6%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고 합니다. 폴 매카트니의 모국인 영국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알츠하이머 소사이어티’ 통계에 의하면 2014년 영국의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77만여 명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약 7.1%였다고 합니다. 2015년에는 치매 인구가 85만6700여명에 이를 전망이라고 하는 데, 이는 인구 노령화에 따른 결과라고 합니다.
이번에 내한공연을 하는 폴 매카트니의 공연을 보시는 분들이나 보진 않아도 관심이 많으신 분들 중 상당수는 젊은 시절 비틀즈의 음악을 듣고 열광했던 기억을 가진 중장년층, 노년층일 겁니다.
“은퇴 안하냐고? 집에 앉아서 티브이나 보라고? 고맙지만 됐네. 차라리 밖에 나가 연주를 하겠네”라고 말한 폴 매카트니처럼 나이 들어서도 남 부럽지 않은 ‘뇌섹남’을 꿈꾸며, 틈날 때마다 한 번씩 기타로든 피아노로든 입으로든 음악을 연주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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