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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썸’을 ‘사랑’으로 바꾸는 방법

등록 2015-06-12 17:19수정 2015-06-12 17:19

썸남 썸녀, 더 끌리면 서로 상대 목소리 톤 맞춰
말소리 속 발성, 말 내용보다 더 많은 정보 담아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소속 소유, 정기고가 부른 노래 ‘썸’의 스타쉽TV 공식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Y-FhDScM_2w
스타쉽 엔터테인먼트 소속 소유, 정기고가 부른 노래 ‘썸’의 스타쉽TV 공식 뮤직비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Y-FhDScM_2w

“(생략)
확실한 표현을 원하지만
너의 미소 띈 표정에 잊어버리지 난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순진한 척 웃지만 말고 그만 좀 해
너 솔직하게 좀 굴어봐
니 맘 속에 날 놔두고 한 눈 팔지 마
너야말로 다 알면서 딴청 피우지 마
피곤하게 힘 빼지 말고 어서 말해줘
사랑한단 말야”
-소유, 정기고가 부른 노래 ‘썸’ 중에서

연인이 되기 직전의 상태, 이른바 ‘썸’을 탄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호소하는 고충 중의 하나는 위의 ‘썸’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 바로 ‘희망고문’입니다. 말투나 표정, 행동으로 봐서는 분명히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정작 좋아한다는 그 말 한마디를 딱부러지게 해주지 않으니 긴가민가해서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것이지요. 그런 ‘썸’타는 사람들의 답답한 가슴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음향과학 등의 연구를 한번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주 올브라이트 칼리지의 심리학과 부교수인 진화심리학, 음성인지학자 수잔 휴즈 박사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랑에 빠진 것을 알아차린다: 연인과 친구들을 향한 음성샘플 차이의 증거’라는 논문에서 로맨틱한 감정을 느끼는 상대방에게 말을 걸 때 음정, 억양 등의 진화론적 의미의 변화가 있으며, 이러한 ‘썸남썸녀’들의 대화 녹음을 듣는 다른 사람들은 그야말로 귀신같이 그 ‘썸’ 타는 상태를 알아차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제 막 누군가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 24명이 각각 호감을 느끼는 이성과 혹은 동성의 친한 친구들과 통화한 내용을 녹음한 것을 80명의 감별자들에게 들려주었더니 아주 짧은 시간만 듣고도 그 통화를 한 사람이 이성적 호감을 느끼는지 아닌지를 상당히 정확한 비율로 맞췄다고 하는 것입니다. “잘 지내?”, “뭐해?” 등 간단한 통화 내용 속에서도 목소리의 음정이나 억양 등이 의미 있게 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는 얘기죠.

‘이성 간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초점을 맞춘 이 연구는 분석의 정확성을 위해 80명의 목소리 특징 감별자들 중에서 2명의 게이 남성과 2명의 레즈비언 여성, 성 정체성에 대해 말하지 않은 3명을 제외하고 진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동성의 친구에게 말할 때와 호감 가는 이성에게 말할 때 목소리가 달라지는 걸 금방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짤막한 통화내용만을 듣고도 통화를 나누는 사람이 얼마나 기쁜지, 성적으로 호감을 느끼는지, 연애감정이 얼마나 되는지, 관계의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쉽게 알아차렸다는 것이죠.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한 속담이 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 속담이라는 것도 사실 일반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며 접한 경험들 속에서 찾아낸 나름의 행동 법칙을 말로 표현한 것이란 점을 생각하면 그렇게 놀랄 만한 사실이 아닌 것도 같습니다.

휴즈 박사 연구진은 위의 음성녹음 샘플들을 스펙토그램(음파의 스펙트럼을 음파 분석기를 이용하여 사진으로 찍은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여성의 경우 이성적 호감을 느끼는 남성의 음정과 조성을 흉내 내거나 맞추려고 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 남성의 음정에 맞춰 자신의 음정을 조금 낮추는 것이지요. 반대로 남성은 호감을 느끼는 여성의 음정에 맞추기 위해 목소리 톤을 높인다고 합니다. “나는 너와 함께 한다”는 친근감과 유대감을 알리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 이탈리아 밀라노가톨릭대학 일반심리학과 R. 치체리 교수는 ‘유혹하는 남성의 음성형태 분석’ 논문에서 목소리를 많이 조절한 남성이 여성과의 두 번째 데이트 기회를 획득하는 성공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썸’을 부르는 소유(왼쪽)와 정기고. 한겨레 자료사진
‘썸’을 부르는 소유(왼쪽)와 정기고. 한겨레 자료사진

만약 지금 ‘썸’ 타고 계신 분들이시라면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 보거나 해서 사랑이 확실하다 싶으면 용기 있게 고백하는 것도 ‘썸’을 ‘사랑’으로 바꾸는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와 같은 인간의 발성에서 비롯된 시김새나 바이브레이션 창법이 들어간 노래들을 부르면서 사랑 고백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또 다른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말소리 속 억양이나 음정 같은 인간의 발성은 다른 비언어적 행동들과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감, 유대감을 소통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러한 연인관계를 다른 사람들한테 드러내 보이기 위한 신호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미국 애리조나 대학 가족인간개발 커뮤니케이션학과 J.K 버군 교수는 ‘비언어적 의사소통’ 논문에서 그렇게 주장합니다. 이러한 인간 발성 신호를 해독하는 능력은 진화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이성 간의 대화, 그 말소리의 억양과 음정 등을 분석해 이미 짝을 이룬 상태인지 아닌지 알아내고 또 상대방이 나에 대해 이성적으로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어 쓸데없이 상대방을 향해 들이대는 등의 행동을 자제하게 하여 생존과 번식을 위한 에너지의 소모를 줄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썸’타는 사람들의 발성을 포함한 인간의 발성은 말을 통한 의미론적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는 효과적인 소통수단으로도 진화해 왔습니다. 뉴욕주립대 알바니 캠퍼스의 심리학과 교수 G.G. 갤럽 등의 논문 ‘은유와 상징 행위’에 따르면 말소리의 억양과 음정, 속삭임 등 인간이 내는 말소리 속 발성은 말의 내용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합니다.

또 미국 미시간대학 인류학 언어학 명예교수인 R. 벌링의 논문 ‘영장류의 발성, 인간의 언어 그리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 따르면 인간은 적어도 두 가지 다른 종류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언어, 신호와 밀접하게 관련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언어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인간의 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방법보다는 오히려 다른 영장류들의 커뮤니케이션 체계와 더 닮아있다는 것이죠.

인간의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과 닮은 영장류들의 발성 커뮤니케이션 체계를 살펴보니, 독일 괴팅겐 대학 영장류센터의 진화생물학, 동물학, 생태학자 C. 피치텔 박사 등의 연구진이 ‘흰 머리 카푸친 원숭이의 경고 발성에 대한 음향학적 분석’ 논문에서 영장류의 발성 신호가 가진 진화론적 의미를 다룬 내용이 보입니다. 카푸친 원숭이는 지상이나 나무 위의 포식자들을 만나면 ‘경고 발성’을 하는데, 나무 위 등 공중의 포식자와 인간, 그리고 다른 카푸친 원숭이들의 움직임을 감지했을 때 내는 경고발성과 지상의 포식자들과 뱀, 카이먼 악어 등의 모습을 포착하고 내는 경고 발성은 서로 다른 구조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포식자와 인간, 다른 원숭이들을 보고 소리 내는 경고 발성은 여러 가지 음향적 변형이 있었고 그래서 어떤 종류의 위험이 대두된 것인지에 관한 맥락 의존적인 정보를 전달한 반면, 지상의 포식자와 뱀, 카이만 악어 등을 보았을 때에 내는 경고 발성은 포식자의 종류나 위협의 종류를 특정해서 전달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는 것이죠. 주로 나무에서 생활하는 카푸친 원숭이의 특성상 공중 포식자보다는 지상 포식자에 대한 위협 의식이 조금 덜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메르스 위험 시기에는 부부의 성관계도 피하라’는 믿거나 말거나 영상이 SNS에 떠돌아 쓴웃음을 짓게 했습니다. 부부간의 사랑을 넘어 남녀 간의 ‘썸’마저도 위축시켜 버리는 메르스 사태를 보는 심경이 참으로 착잡합니다. 메르스라는 위협에 대해 내린 정부의 첫 ‘경고 발성’이 제대로 빨리 이뤄졌더라면 피끓는 청춘남녀들의 ‘썸’마저 마스크에 가려 훼방 당하는 지경까진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망이 더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268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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