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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에 케첩 좀 쳐달라구요?

등록 2015-06-18 17:14수정 2015-06-18 17:14

비틀즈 보컬 존 레논도 자기 노래소리에 불만
자신 목소리에 더 매력 느낀다는 연구 성과도
부모의 이혼, 어머니가 경찰차에 치여 숨지는 비극적 가족사와 함께 우울증을 앓았지만, 음악활동 등을 통해 극복해 내고 전설적 뮤지션으로 우뚝 선 존 레논. 한겨레 자료사진
부모의 이혼, 어머니가 경찰차에 치여 숨지는 비극적 가족사와 함께 우울증을 앓았지만, 음악활동 등을 통해 극복해 내고 전설적 뮤지션으로 우뚝 선 존 레논. 한겨레 자료사진

“내 녹음된 목소리에 토마토 케첩이나 뭘 좀 발라주면 안될까?”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밴드 보컬 중의 한 명은 음악 프로듀서에게 위와 같이 말하며 레코딩 된 자기 노래 소리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기색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고 합니다. 이름 앞 글자만 들어도 누구나 알 만한 그 보컬은 그래서 두 개의 트랙으로 노래를 녹음하길 즐겨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정말 어이없게도 전설적 밴드 비틀즈의 보컬 존 레논이었습니다. 있는 사람이 더한다고 하더니 그렇게 기가 막힌 목소리를 가진 존 레논은 도대체 얼마나 더 노래를 잘하고 싶어서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 것이었을까요?

그러나 한번이라도 노래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 본 적이 있다면 혹시 조금이라도 존 레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우리 머리뼈와 공기의 울림을 통해 듣지만,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공기의 울림 하나만을 통해 듣기 때문에 애초부터 우리가 듣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와 다른 사람이 듣는 우리 자신의 목소리는 다르게 들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미국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P.S. 홀츠만 등의 ‘지각 대상으로서의 목소리’ 연구에서 보듯 우리가 녹음기를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때 자기의 목소리 같지 않다고 느끼고 심지어 이런 자신의 목소리가 싫다고 느끼기까지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죠.

하지만 마리사 해리슨 박사의 연구를 살펴보면 얘기가 좀 달라집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 해리스버그 캠퍼스 심리학과 조교수이자 진화심리학자이며 한때 펑크록 뮤지션을 꿈꾸었던 해리슨 박사 연구팀은 ‘나는 내 목소리를 더 좋아한다: 목소리 매력을 지각하는 데 있어서의 자기 중시 성향’ 연구를 보면 통설과는 조금 다른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해리슨 교수 연구진은 80명의 남녀 참가자에게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 녹음을 듣고 그 매력도를 평가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80명의 남녀 자신들의 목소리 녹음 또한 몰래 포함시켜 그 매력도를 평가하게 했습니다. 연구에 참가한 80명 남녀들은 각각 자기 자신의 목소리인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의 녹음된 목소리의 매력도를 평가했는데, 다른 평가자들이 평가한 자기 목소리 녹음의 매력도보다 더 높은 점수를 자기 목소리 녹음에 부여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해리슨 교수 등이 내린 판단은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보다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더 선호한다는 것인 데요. 이러한 경향은 자신감을 키우고 우울감에 저항하려는 심리 메카니즘으로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선호’ 성향은 더 확대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뉴욕주립대 알바니 캠퍼스의 심리학과 교수 D. 버니의 ‘매력의 패러다임’이나 영국 글래스고 대학 신경과학 심리학 센터 L. M. 디브루인 박사의 ‘얼굴의 유사성은 신뢰도를 높인다’ 등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자기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나 신체적 특성을 가진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또 뉴욕주립대 버팔로 캠퍼스의 B.W. 펠럼 박사 등의 ‘나는 어떻게 너를 사랑할까?-암시된 자기중심주의와 대인관계에서의 매력’ 연구에 따르면 자신과 이름이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거나, 자신의 생일과 관련된 숫자, 자기 운동경기용 셔츠의 백넘버와 유사한 숫자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더 끌리는 성향이 있다고 하는 것이죠. 자기와 비슷한, 자신의 중요한 표상과 관련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자기와 연결시켜 자신감을 키워 비관적이거나 우울한 생각을 멀리하고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진화해온 본능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이 우울한 내적 외적 상황을 이겨내려는 방법, 그 중에서도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 중의 하나인 인지행동 치료라는 것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인지행동치료법은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여 객체로서의 자신의 노래 소리를 들어 보듯, 우울증을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과 행동이 우울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들여다보도록 도와주는 치료방법입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내 앞날은 암울하기만 해”, “난 정말로 쓸모없는 사람이야” 같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사회적 관계를 기피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분과 생각을 체크해보도록 하여 문제가 되는 생각이나 감정을 수정해 자존감을 높이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과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도움을 주는 것이죠.

무드짐 웹사이트 https://moodgym.anu.edu.au/welcome
무드짐 웹사이트 https://moodgym.anu.edu.au/welcome

이러한 인지행동치료법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호주의 ‘무드짐(MoodGym: mood(기분)+gym(체력단력장))’이라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입니다. 무드짐의 교과과정은 ‘1. 왜 당신은 그런 감정을 느끼는가, 2.당신이 생각하는 방법 바꾸기, 3. 비뚤어진 생각 고치기, 4. 무엇이 당신을 괴롭게 만드는지 알기, 5. 관계와 문제 해결법’과 같이 5단계로 이뤄져 있고 그 중 4번째 교과과정인 ‘무엇이 당신을 괴롭게 만드는지 알기’ 과정에서는 상상요법, 심상유도요법, 점진적 근육 이완요법 등과 함께 우울증 완화에 도움이 되는 음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호주국립대학에서는 500명의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1년간 무드짐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하는 등 인터넷 치료를 실행해 의미있는 수준의 치료효과를 얻었다고 밝히기도 했죠.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서울시정신보건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마인드스파’ 프로그램 중 ‘마음터치(http://mindspa.kr/)’라는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상황 돌아보기(1단계), 자동적 사고 파악하기(2단계), 인지적 오류 점검하기(3단계), 생각과 감정 바꾸기(4단계), 문제 해결하기(5단계), 정신건강 지키기(6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울시정신보건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마음터치( http://mindspa.kr/ )’ 프로그램
서울시정신보건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마음터치( http://mindspa.kr/ )’ 프로그램

호주국립대학 연구진은 이러한 인터넷을 통한 우울증의 인지행동치료가 전문적인 치료를 원하지 않는 이에게 도움이 될 것이며 의사와의 전화 또는 대면 상담 등 전문 치료를 받기 전에 교량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요즘처럼 메르스 사태 때문에 찾아오는 속수무책의 불안감과 무기력감과 우울감은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여 그것을 객관적으로 들어보듯, 또 인지행동치료처럼 자신이 왜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지 객관화하여 들여다보게 하듯, 우리의 메르스에 대한 생각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보를 더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제공하는 정부의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늦었지만, 처음부터 그랬어야 했지만, 지금도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276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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