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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환, 꽃보다 아름다운 암투병

등록 2015-06-25 16:46수정 2015-06-25 16:46

1년만에 부부 사랑과 믿음 등 담은 앨범
‘낯설고 두려운 길’, 희망의 빛 찾아 동행
직장암을 극복하고 11집 앨범 ‘50’으로 돌아온 안치환. 한겨레 자료사진
직장암을 극복하고 11집 앨범 ‘50’으로 돌아온 안치환. 한겨레 자료사진

“당신과 내가 만나
운명처럼 사랑을 하고
눈부신 젊은 날은
꿈결처럼 지나가고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는 병상에
당신은 조그만 쇼파에 누워
낯설고 두려운 길을
서로 기대며 담담하게
새벽을 맞이하는 구나
어디 까지 온 걸까
당신과 나의 짧은 여행길은
어디 까지 온 걸까
우리의 이 먼 여행길은”
-안치환 11집 앨범 ‘50’ 수록곡 ‘병상에 누워’ 중에서

가수 안치환이 지난해 불의의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생활을 하며 1년 동안 만든 11집 앨범 ‘50’의 수록곡 ‘병상에 누워’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의 어둠 속에서 마치 빛의 방파제처럼 따뜻한 등을 내어주는 배우자의 모습이 잘 드러나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두렵고 떨리는, 그래서 더 따뜻한 그 등에 기대어 안치환은 암을 극복할 희망을 얻고 그 희망을 노래로 만들어 나갔을 테지요. “결혼 생활은 긴 대화이다”라고 한 니체의 말처럼, 둘 사이에는 수많은 대화들도 오갔을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부부의 목소리들은 마음속 두려움의 지층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믿음과 사랑을 아로새겨 두었겠지요.

안치환 11집 앨범 ‘50’ 표지.
안치환 11집 앨범 ‘50’ 표지.

그렇게 서로를 향해 퍼져나가는 부부의 목소리들은 서로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서로의 뇌 속에도 특이한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영국 퀸즈대학 심리학과 교수이자 인지신경과학자인 잉그리드 S. 존스루드 등의 ‘칵테일 파티에서의 흔들림; 경쟁하는 목소리들 속에서 목소리의 친숙함은 말소리를 지각하는데 도움을 준다’ 논문을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연구는 연령대가 44살~79살인 23쌍의 결혼한 남녀 46명을 대상으로 이뤄졌습니다. 배우자들 간의 목소리의 익숙함을 보증하기 위해 적어도 18년 이상 함께 살아온 부부들을 선택했다고 하죠. 그리고 나이와 익숙한 목소리를 인지하는 능력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60살 미만의 부부들과 60살 이상의 부부들을 나누어 실험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실험은 우선 다음 표에서와 같이 세 파트로 나누어 진행되었습니다.

세 파트 모두에서 실험 참여자들로 하여금 표적 문장 “레디 배런 고 투 그린 식스 나우”를 듣게 합니다. 또 동시에 그것을 방해하는 문장 “레디 이글 고 투 화이트 투 나우”도 듣게 합니다. 그리고 실험 참여자들이 방해 문장을 같이 들으면서도 표적 문장을 제대로 알아듣고 ‘그린 식스(녹색 6번)’을 클릭하는지 아닌지 살펴봅니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실험 참여자의 배우자가 익숙한 목소리로 표적 문장을 읽게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낯선 목소리가 방해 문장을 소리 내어 읽게 합니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낯선 목소리가 표적 문장을 읽게 합니다. 그리고 실험 참여자의 배우자가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로 방해 문장을 소리 내어 읽게 합니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낯선 목소리가 표적 문장을 읽게 하고 또 다른 낯선 목소리가 동시에 방해 문장을 읽게 합니다.

그랬더니 첫 번째 파트에서는 ‘당연히’ 귀에 익숙한 목소리의 배우자가 표적 문장을 읽는 내용을 쉽게 알아듣고 녹색 6번을 클릭하는 비율이 높았다고 합니다.

이 실험의 압권은 바로 두 번째와 세 번째 파트의 비교입니다. 두 번째 파트에서 실험 참여자는 익숙한 배우자의 목소리가 방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목소리가 방해를 한 세 번째 파트에서보다 더 높은 비율로 표적 문장을 알아듣고 녹색 6번을 눌렀다는 것입니다. 구체적 수치로 살펴보면, 배우자가 표적 문장을 읽고 낯선 사람이 방해 문장을 읽었을 때, 실험 참여자가 표적 문장이 지시한 대로 녹색 6번을 누른 비율은 74%~95% 가량이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표적 문장을 읽고 배우자가 방해 문장을 읽었을 때, 실험 참여자가 표적 문장이 지시한 대로 녹색 6번을 누른 비율은 67%~83%가량이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표적 문장을 읽고 또 다른 낯선 사람이 방해 문장을 읽었을 때, 실험 참여자가 표적 문장이 지시한 대로 녹색 6번을 누른 비율은 61%~82%가량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실험 참여자는 배우자의 익숙한 목소리는 지각하고 싶으면 지각하고, 배제하고 싶으면 배제하는 ‘신기한’ 결과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이 신기한 결과를 보고 처음엔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배우자가 애교 가득한 말을 하면 빙긋 웃으며 귀에 새겨듣고, 반대로 바가지를 긁을 때면 한 귀로 흘려들어버리는 평범한 사람들의 부부생활을 떠올리면 금방 또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아무리 사랑하는 부부 사이라고 해도 어떻게 항상 좋은 말만 하고 좋은 말만 들으며 살겠습니까? 그러나 싫은 소리를 하더라도 그래서 순간적으로 싫은 마음이 들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하는 감정까지는 지우지 못하는 것이기에, 싫은 소리는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싫은 순간을 슬쩍 지나쳐가려는 부부들의 습성이 이러한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게다가 남녀는 언어를 사용하는 뇌 구조와 기능 자체가 달라서 오해로 인한 말다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처지에 오해가 있을 때마다 늘 싸우자고 달려든다면 그거 참 곤란할 일일 테니 싫은 소리는 아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서 싸움을 피하는 것이 상책인 것이죠. 아니면 니체의 말마따나 많은 대화를 나누며 결혼생활이라는 먼 길을 함께 걸어나가는 방법을 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예일대학교 의대 학습집중 센터의 샐리 셰이위츠 박사 등의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를 사용한 남자와 여자의 뇌 연구를 살펴보면, 언어와 관련된 일을 할 때 남자는 왼쪽 뇌만을 사용하지만 여자는 양쪽 뇌를 다 사용한다고 합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은 혈액의 자기적 성질을 이용하는 데, 혈액이 활성화되는 뇌 부위로 몰려가기 때문에 그때 증가한 혈액의 자기량을 통해 활동하는 뇌 부분의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보니 언어와 관련된 일을 할 때 남자와 여자는 모두 말하기와 관련된 영역인 브로카 영역 근처의 하측 전두회(inferior frontal gyrus)를 사용하지만 남자는 왼쪽 하측 전두회 만을 사용하지만, 여자는 양쪽 하측 전두회를 다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뇌를 비대칭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셰이위츠 박사는 여자가 뇌졸중에서 회복하는 비율이 더 높은 이유가 여자들이 이렇게 양쪽 뇌를 다 쓰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오른쪽 왼쪽 대 뇌반구를 이어주는 뇌량 혹은 뇌들보(빨강 부분). 위키피디아
오른쪽 왼쪽 대 뇌반구를 이어주는 뇌량 혹은 뇌들보(빨강 부분). 위키피디아

여자의 경우 오른쪽과 왼쪽 대뇌반구 사이에 위치해 두 반구를 연결하는 활 모양의의 신경다발인 ‘뇌량’ 혹은 뇌들보 [corpus callosum, 腦梁]가 남자의 것보다 크기 때문에 여자들이 양쪽 뇌를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는 추정을 뒷받침해주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렇게 남녀는 뇌 구조나 뇌의 기능이 달라서 아무리 오래 같이 산 부부라고 할지라도 말소리의 영향이 그때그때 다르고 또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다툼이 있을 수 있고 그 다툼을 슬기롭게 풀기 위하여 많은 대화가 필요한 것이죠.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누어 서로의 목소리가 귀에 익숙해진 부부들의 뇌는 또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보통 나이 든 사람들은 여러 사람들의 말소리 속에서 특정인 목소리의 물리적, 음향적 특징인 음정, 음색, 위치 등을 젊은 사람들보다 잘 구별해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는데, 목소리의 익숙함이 그러한 나이 들어감에 따른 지각 인지능력의 감퇴를 상당 부분 상쇄해주는 것 같다는 것이죠..

앞의 연구에서 영국 큄즈대학 존스루드 박사 등의 연구진은 44살~59살의 실험 참여자들과 60~79살 실험 참여자들의 차이 또한 살펴봤는데, 여러 사람들의 방해 목소리 속에서 배우자의 목소리를 지각하거나 배제하는 데 있어 44살~59살의 실험 참여자들과 60~79살 실험 참여자들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기사 개인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 등등 도대체 대화가 중요치 않은 구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과학계 안은 물론이거니와 과학계와 언론계를 비롯한 비과학계 사이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죠.

가수 안치환이 앓았던 암과 같은 개인적 질병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는 환자와 의사의 대화가 중요한 것이고, 암 치료의 혁신을 위해서는 의학과학계 안에서의 활발한 대화가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의학과학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제, 정치, 사회 등 의학과학계 바깥과의 대화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메르스처럼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질병 같은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 같습니다.

2012년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올해 6월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대회에서 한 아래와 같은 말은 그런 의미에서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과학과 기술이 항상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꼬투리를 잡는 것은 과학기자다. 그들은 다른 의견들을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과학과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고,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안다. 과학기술은 늘 진보한다. 거기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과학 기자들은 태클을 건다. 나는 줄기세포와 생명과학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이다. 세상은 태클을 거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285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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