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백악관 블루스 파티에서 ‘스위트 홈 시카고’를 부르는 오바마. 한겨레 자료사진
“놀라운 은총은 이 얼마나 감미롭게 들리는지
그 소리는 나와 같은 몹쓸 사람도 구원하였습니다.
나는 볼수 없었지만 이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은총은 나의 마음에 두려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의 모든 두려움을 걷어내 주었죠”
-영국 성공회 사제 존 뉴턴이 과거 흑인 노예 학대를 참회하며 가사를 쓴 것으로 알려진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 중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에서 희생된 클레멘타 핑크니 목사 장례식에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큰 소리로 외쳐 부르며 추모의 뜻을 표했죠.
그 찬송가는 바로 미국인들의 또 다른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였습니다.
대통령의 입에서 뜻밖에 터져나온 노래 소리에 참석자들은 신선한 감동을 느끼고 그 뜻에 공감하며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죠. 그 노래를 부르며 인종주의라는 몹쓸 행태에 대한 증오를 넘어,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인간의 선하고도 강한 의지와 그러한 아름다운 뜻을 하나로 묶는 노래의 힘이 감동적으로 어울린 장면이었는 데요.
이렇게 노래가 가진 힘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적으로는 물론 음악학, 심리학, 인지과학, 뇌과학적으로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음악 인지 뇌과학 센터의 D. 휴런 교수는 ‘음악은 진화론적으로 적응된 것인가’라는 논문에서 음악이 사회적 관계와 개인 간의 신뢰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합니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노래들은 사회적인 기능을 가진다는 것인 데요. 생일축하곡, 민속노래, 걸 스카우트 노래, 스포츠 경기에서의 응원가, 군가 등은 집단적 정체성을 환기시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강화시킨다는 것이죠.
그에 따르면 인간의 음악은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처럼 후천적으로 획득된 형질이,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진화생물학자 R.도킨스가 주장하는 ‘밈(Meme)’처럼 문화적인 유전자로서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는 것입니다.
1700년대부터 지금까지 세대를 초월하여 입에서 입을 통해 계속 불리우고 있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처럼 말이죠.
호르몬 등의 생리학적 연구를 통해 음악의 사회적인 힘을 밝히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일본 나라교육대학 내분비, 유전, 생물학 교수 하지메 푸쿠이는 ‘음악과 시각적 긴장이 남녀의 테스토스테론과 코티솔에 끼치는 영향’ 연구에서 음악을 들으면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줄어드는 데,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줄어들면 공격성과 갈등, 성적인 대립, 성적인 경쟁이 감소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집단의 단결력이 강화된다고 말합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신경생리학자 W. J. 프리먼 교수는 ‘뇌의 사회; 사랑과 증오의 신경과학’에서 산모들로 하여금 모유를 나오게 하는 호르몬이자, 남녀 간의 성관계 때 분비되어 둘 사이의 유대감을 높이는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최면상태와 음악을 들을 때에도 분비된다고 합니다. 신생아와 엄마의 유대감을 높이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친밀감을 향상시키는 옥시토신이 음악을 들을 때에도 흘러나오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뭉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노조원들이 집회 때 노래를 부르거나 종교단체에서 노래를 만들거나 함께 부르는 등의 음악활동을 하고, 대학에서 동창들끼리 교가를 부르거나 하면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교 심리학과 M. 샌드그렌 교수 등의 논문 ‘노래 부르기는 삶을 더 행복하게 할까? 노래 부르기 레슨을 받는 프로, 아마츄어 가수들에 관한 경험적 연구’에서는 노래 레슨을 30분 정도만 받아도 사회적 소속감에 영향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인 옥시토신 수치를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죠
음악은 이성 간의 친밀감도 향상시켜 준다고 합니다.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교 심리학과 수미 시게노 교수 연구진의 ‘배경음악이 일본 성인 남녀의 대화 상대방의 인상에 끼치는 영향’ 연구에 따르면, 배경음악을 깔고 하는 이성 간의 대화가 그렇지 않은 쪽보다 상대방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만들어준다고 하는 것이죠. 10대, 20대의 데이트 상대를 찾는 일본 남녀 32명을 대상으로 20분간의 대화를 하는 동안 록, 랩, 클래식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들려주었더니, 배경음악을 들으며 대화한 16쌍이 배경음악을 듣지 않고 대화한 16쌍에 비해 상대방에 대한 매력이나 친밀감을 느낀 비율이 더 높았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음악은 사회학적인 차원을 넘어 심리학, 생리학적으로도 사람과 집단 간의 유대감을 높이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유력해 보입니다.
이렇게 음악 등을 통해 향상된 사회적 유대감은 그냥 기분이 좋거나 마음이 든든하다는 등의 정신적인 만족도를 높이는 선에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유대감은 개인들의 심신 건강을 증진시키는 등 실제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가족, 이웃과 친구 등 사회적 유대감을 가진 관계망을 통해 정서적인 면 등에서 여러 가지 사회적 도움을 주고받는 경우 심혈관, 신경내분비, 면역기능 강화 등에서 긍정적 영향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발견된다는 것이죠.
미국 유타대학 심리학과 B.N.우치노의 ‘사회적 도움과 건강 : 질병 발생과 잠재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생리학적 과정에 대한 고찰’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유대감을 통해 느끼는 소속감은 인간이 성공적으로 생존하는 데 있어 기본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건강에 기여하는 호르몬 분비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심장질환을 가진 환자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는 혈류역학적인 변화에 기인한 혈관의 수축으로 국소 빈혈을 촉발시킬 수 있는 데, 사회적 유대감을 통해 얻어지는 사회적 도움은 이러한 스트레스를 완충시키는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샬럿 캠퍼스의 정신과 교수 K.M. 그루언의 ‘파트너와의 따뜻한 교류가 옥시토신, 코티솔, 노르에피네프린, 혈압에 미치는 영향’ 연구와 미국 스탠포드 의대 정신행동과학과 J.M. 터너-코브 교수 등의 ‘사회적 도움과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침 속 코티솔’ 연구에 따르면 유대감을 통한 사회적 도움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 분비되는 코티솔 분비에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카롤린스카 연구소 생리 약물학과 K 우브나스-모베르그 교수 등의 ‘옥시토신이 긍정적인 사회적 상호작용과 감정의 이점을 매개할 가능성’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도움은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시킨다고 합니다. 옥시토신은 뇌나 주변부 생리학적 시스템에서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는 데 유대감 있는 사회적 교류는 옥시토신 분비를 자극하고 그 옥시토신은 혈압과 코티솔 분비를 낮추는 한편 부교감신경 활동을 촉진시킨다고 하는 것이죠. 코티솔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인슐린 작용을 방해해 혈당이 더욱 더 증가하게 되는 등 당뇨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데 사회적 도움은 그러한 코티솔의 분비를 줄이기도 한다는 얘기입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 심리학과 S.K. 루트겐도르프 교수 등의 ‘자궁경부암, 난소암 환자에게 있어 인터류킨-6와 사회적 도움의 활용’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도움은 말초 혈관계에서 자연살생세포(natural killer cell)의 활동을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이 자연살생세포는 선천적인 면역을 담당하는 혈액 속 백혈구의 일종으로, 간과 골수에서 성숙하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면역세포이기 때문에 결국 가족, 이웃, 친구 등의 정서적 교류를 통한 사회적 도움이 암 치료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콜롬버스 캠퍼스 정신과 교수 J. K. 키콜트-글레이저 등은 ‘적대적 군사 상호작용, 염증 전 사이토카인 생성, 그리고 상처 치료’ 연구에서 유대감 있는 사회적 도움은 수포 등의 상처에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강하고 급격한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생리활성물질인 사이토 카인의 종류에는 인터류킨-1, 인터류킨-6, 종양 괴사 인자(tumor necrosis factor-α) 등이 있는 데, 사회적 도움은 이들 면역계를 자극하는 단백질들을 증가시켜 상처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하는 것이죠.
왕따, 이지메 등 사회적 격리를 당하면 활성화 되는 전두엽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이 부위는 사람이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 역시 활성화 되는 곳이다. 위키피디아
반면 이러한 유대감 있는 사회적 도움은커녕 사회로부터 격리 당하는 왕따, 이지메 피해자들의 경우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미국 퍼듀 대학 심리학과 교수 K.D. 윌리암스의 ‘도편추방제’ 연구와 N.I. 아이젠버거 등의 ‘배척은 상처를 입히는가? 사회적 배제에 대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속감과 존재의 의미, 통제감각을 잃게 만들고 분노와 슬픔을 키웁니다. 왕따, 이지메를 당하면 전두엽에서도 특히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활성화되는데 이 부위는 사람이 신체적 고통을 느낄 때 역시 활성화되는 곳입니다. 몸이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의 통증을 마음으로 느끼며 괴로워하다가 여러 가지 정신질환을 앓게 되는 것이죠.
사회적 유대감을 고양시키는 힘을 가진 음악은 이러한 사회적 배제의 아픔을 완화시키는 힘 또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페인 자베리아나 의과대학 마취과 M.S. 세페다 교수는 ‘통증완화를 위한 음악’ 연구에서 음악이 왕따 후유증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말합니다. 음악을 들으면 뇌 속에서 통증을 완화시켜 주는 아편양 펩티드(opioid peptides)와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자극한다고 하는 것이죠. 음악을 들을 때 나오는 아편양 펩티드의 대표 물질 엔케팔린, 엔도르핀 등은 외과수술 뒤 통증완화용 약물을 덜 써도 될 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음악의 여러 가지 힘을 잘 알고 있기라도 하듯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여러 장소에서 여러 노래들을 부르는 모습을 보입니다.
선거자금 마련 행사에서 팝 가수 알 그린의 “렛츠 스테이 투게더(Let‘s Stay Together)”를 부르고, 백악관에선 폴 메카트니와 ‘헤이 쥬드(Hey, Jude)’, 비비 킹 등과 ’스윗 홈 시카고(Sweet Home Chicago)’를 노래 했습니다. 또 PBS 방송을 통해서 컨트리 가수 윌리 넬슨의 ‘온 더 로드 어게인(On the Road Again’을 함께 부르기도 했죠.
그리고 이번 핑크니 목사 장례식에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며 그의 ‘노래 인생’에 정점을 찍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공감은 멋진 것이다. 다른 사람의 탁월함을 우리에게 속한 것으로 만들어준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오바마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다시금 들으면 비록 우리나라와 이익을 달리하기도 하는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같은 지구인으로서 볼테르가 말한 ‘공감’이란 것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 오바마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모습
http://www.nytimes.com/video/us/politics/100000003766749/obama-delivers-eulogy-for-slain-pastor.html?playlistId=100000002797598
▷ 폴 매카트니와 함께 ‘헤이 쥬드’를 부르는 모습
https://www.youtube.com/watch?v=Vvorqcgcdtw
▷ 알 그린의 ‘렛츠 스테이 투게더’를 부르는 모습
https://www.youtube.com/watch?v=y6uHR90Sq6k
▷ ‘리프트 에브리 보이스 앤드 싱’을 부르는 모습
https://www.youtube.com/watch?v=O4vR0I8AO1E
▷ 윌리 넬슨의 ‘온 더 로드 어게인’을 부르는 모습
https://www.youtube.com/watch?v=yBEouCVWpyc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295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