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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음악·공연·전시

아리랑을 계속 리메이크해야 하는 이유

등록 2015-07-24 17:42수정 2015-07-24 17:42

60여종 3600여곡 전승…삶에 스며들어 흥에 따라 변주
오늘의 감성 입혀 재해석·재창조하면 음악 유산 대물림
2013년 4월 문경 옛길박물관 기획전에 전시된 아리랑 악보. 미국인 선교사  H. B. 헐버트가 1896년 채보한 이 아리랑 악보는 그의 책 에 실려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3년 4월 문경 옛길박물관 기획전에 전시된 아리랑 악보. 미국인 선교사 H. B. 헐버트가 1896년 채보한 이 아리랑 악보는 그의 책 에 실려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조선인들에게 아리랑은 쌀과 같은 것입니다. 다른 노래들은 이 노래에 비하면 드물게 불리는 편이죠. 그렇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이 아리랑을 들을 수 있습니다…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입니다. 완성된 곡이나 음계 없이도 노래를 아주 잘합니다”

-1896년 ‘한국의 목소리 음악’이란 논문에 아리랑의 한 종류인 ‘문경새재아리랑’을 서양식 악보로 처음 채보해 실은 미국인 선교사 H. B. 헐버트 박사의 말 중에서

 문화재청은 2015년 7월14일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을 비롯해 향토민요 또는 통속민요로 불리는 모든 아리랑 계통의 악곡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이는 특정 재능 보유자가 있어야만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었던 문화재 보호법을 2014년 개정하여, 무형유산 자체로서의 아리랑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입니다.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지 3년만의 일이죠. 이는 전통 민요 아리랑뿐만 아니라 근대 통속 민요로서의 아리랑까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뜻입니다. 현재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전승되는 민요는 약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예고대로 아리랑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면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남북합동 응원가로 쓰이기도 한 민족음악으로서의 아리랑의 보존 및 전승이 제도적으로 보장받게 되는 셈입니다.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조선을 침략하자 이를 온 세계에 알리려고 고종의 밀서를 받아 헤이그 평화회의를 거쳐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하려 했던 미국 선교사 H.B. 헐버트. 한겨레 자료사진
1905년 일제가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조선을 침략하자 이를 온 세계에 알리려고 고종의 밀서를 받아 헤이그 평화회의를 거쳐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하려 했던 미국 선교사 H.B. 헐버트. 한겨레 자료사진
하지만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 속에 아리랑이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일일 겁니다. 2015년 현재 실제 생활 속에서 아리랑을 접하기란 쉽지가 않기 때문이죠.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 곳곳의 전수자들이 그 지역 아리랑 전승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방송 등의 매체에서 아주 간혹 아리랑을 틀어주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지 않는 이상 1년에 한두 번 들어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3600여 곡에 이른다고 하는 아리랑 중에 실제로 들어본 것은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손꼽아볼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죠.

고종의 외교고문을 지내고 ‘대한제국사’ 등의 책을 펴내며 애정을 쏟은 바로 그 한국 땅에 묻힌 ‘푸른 눈의 독립투사’ 헐버트 박사가 살아있다면 골백 번은 격세지감을 느낄만한 아리랑의 현재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 코넬 대학 심리학과 C.L.크러먼슬 교수팀의 ‘대중음악의 계승되는 기억의 돌출부’ 연구는 모종의 희망과 숙제를 동시에 안겨주는 것 같습니다. 크러먼슬 교수팀에 따르면 젊은 사람들은 부모들이 듣는 음악에 감정적인 연결감을 느끼며 또 그 음악들을 즐긴다고 합니다. 10~20대 시절에 듣는 음악들은 생애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데 심지어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 즉 부모와 조부모가 10~20대 시절 한창 인기 있었던 음악들에게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개개인의 음악적 유산이 세대를 넘어 대물림 되는 것이죠.(‘기억의 돌출부’ 관련 ‘기억 소환해 한판 벌인 뇌 불꽃놀이, 음악과학으로 본 ‘토토가’의 열광’ 참조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672711.html )

크러먼슬 교수팀은 20대의 실험 참가자 62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음악적 배경과 그들 부모가 태어난 연도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1955년~2009년 연도별로 빌보드 차트 1,2위를 차지했던 노래들을 들려주었죠.

1955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허트브레이크 호텔’ ‘돈트 비 크루얼’ 1963년 비치 보이스의‘서핀 유에스에이’ 1964년 비틀즈의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 1970년 사이먼 앤 가펑클의 ‘브릿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 1973년 토니 올란도의 ‘타이 어 옐로우 리본 라운드 디 올 오크 트리’ 1979년 낵의 ‘마이 샤로나’ 1981년 다이애나 로스와 라이오넬 리치의 ‘엔들리스 러브’ 1983년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 1988년 죠지 마이클의 ‘페이쓰’ 1993년 휘트니 휴스턴의 ‘아이 윌 얼웨이스 러브 유’ 1994년 에이스 오브 베이스의 ‘더 사인’ 2000년 산타나의 ‘스무쓰’ 2004년 어셔의 ‘번’ 2009년 레이디 가가의 ‘포커 페이스’ 등의 노래들이 바로 그 노래들입니다.

그리고 그들 노래 중에서 어떤 노래들을 알고 있는지, 또 그 노래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적어내도록 하였습니다. 또 그 노래들에 대한 개인적 기억이 있는지 묻고, 만약 그렇다면 그 기억들이 부모와 함께 들은 기억인지, 혼자 들은 기억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와 함께 들은 기억인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짐작대로 최근의 음악일수록 기억은 더욱 강렬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들은 1960~1969년, 1980~1984년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들에 대해 ‘기억의 돌출부’ 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부모, 조부모가 10~20대에 들었던 히트곡들에 대해 지금 10~20대인 젊은이들이 개인적이고 향수 어린 감정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이때 향수 어린 감정은 행복감과 슬픔, 다정함이 섞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크러먼슬 교수팀은 이를 두고 음악 취향의 대물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음악 취향의 대물림은 바로 부모와 자식들 간의 음악적 소통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음악은 아이들을 키울 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공식적으로 유치원 등에서 노래와 율동을 통해 신체적 지각 능력을 키우죠. 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부모들이 자장가를 불러주거나 노래를 가르치거나, 들려주면서 아이들을 양육합니다. 아이들이 선율의 높낮이 구조와 리듬, 그리고 음악의 구절 나누기 등등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 모든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며 빠르게 학습하고 인지능력을 형성해가는 바로 그 시기에 부모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문화적 가치를 자식들에게 전달하고 또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가족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죠.

부모들이 클래식 음악을 주로 들으면 듣는대로, 대중음악을 주로 들으면 듣는대로 아이들은 그에 관한 개인적인 기억과 취향을 가지게 되고 그 음악들을 다시 들으면서 감정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다 함께 휴가를 떠나면서 부모나 조부모들이 차에서 틀어놓은 음악을 듣거나, 음악인들에 대해 얘기를 꺼내놓는 걸 들은 영향 또한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노래는 부모를 통해 문화적으로 감성적으로 중요하게 전승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를 통해 들려지지 않는 노래들은 후대에 들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방송 등의 매체도 찾는 사람이 있어야 그 노래를 틀어주고 또 그렇게 틀어진 음악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과정을 통해 계속 전파해야 그 노래의 생명력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음악 확산의 기초 토대로서 부모와 자식 간의 ‘음악 유산 대물림’은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죠. 아리랑 또한 널리 불리고 사랑받게 되려면 이러한 ‘음악 유산 대물림’이 필수적 과정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과 함께 부모들이 아리랑을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후대에 아리랑이 전승되어 사랑 받을 확률 또한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선아리랑을 재즈풍으로 편곡해 부른 재즈가수 나윤선. 나윤선은 자유롭다는 점에서 재즈와 아리랑은 통한다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선아리랑을 재즈풍으로 편곡해 부른 재즈가수 나윤선. 나윤선은 자유롭다는 점에서 재즈와 아리랑은 통한다고 말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윤도현밴드가 2002년 9월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아리랑’을 부르던 윤씨가 눈물을 보이자, 평양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정을 나눴다. 한겨레 자료사진
윤도현밴드가 2002년 9월 평양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아리랑’을 부르던 윤씨가 눈물을 보이자, 평양 시민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정을 나눴다. 한겨레 자료사진

아리랑의 리메이크 활동 또한 이러한 ‘음악 유산 대물림’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의 감성을 입혀 아리랑을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면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더 쉽기 때문이죠. 리메이크 된 아리랑을 듣다보면 아리랑의 원형에 대한 관심도 커지게 되고 그렇게 아리랑에 대한 관심의 저변이 넓어지는 과정을 통해 전승 또한 자연스럽게 이뤄지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신해철, 윤도현 등에 의한 아리랑의 리메이크는 적지않은 대중의 관심을 모았습니다. 보통 세마치 장단으로 3/4박자, 9/8박자의 3박 계통인 전통민요 아리랑을 대중음악에서 주로 쓰이는 4박 계통의 음악으로 풀어낸 리메이크들이었습니다. 신해철이 2006년 독일월드컵 응원가로 발표한 ‘돌격 아리랑’은 16비트의 빠르고 강렬한 록 스타일의 노래였고, 윤도현의 ‘아리랑’은 4박 계통의 리듬으로 바꿔 부른 그루브감이 통통 튀는 것이었죠. 또 나윤선이 부른 ‘정선아리랑’은 3박을 11박으로 바꾸고 재즈에서 많이 쓰이는 텐션코드를 가미하여 편곡한 것이었습니다.

120여년 전 헐버트 박사가 본 아리랑, 우리의 조상들이 자기 흥에 따라 즉흥적으로 리듬과 선율과 가사를 변형해가며 목청껏 불렀던 바로 그 아리랑의 정신을 생각해 보면 아리랑의 리메이크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형찬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233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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