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은 생각의 구조입니다. 우리 두뇌 속에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뇌 속 신경회로가 프레임의 구조이며, 거기에는 프레임을 규정하는 다양한 언어 의미적 규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면, 음식, 서비스, 웨이터, 계산서 등 한 묶음으로 짜여진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 구조가 프레임을 이룹니다. 야자수나 버스 등은 그 식당 프레임에 들어올 수 없죠. 프레임 속에는 특정한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언어 속에 있는 단어는 어떤 프레임의 범위 속에서 의미가 규정됩니다. 두뇌 속에는 물리적으로 경험이 만들어낸 수만 가지 프레임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해한다는 것은 뇌 속에 있는 어떤 프레임 속으로 맞춰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프레임은 각각의 단어가 아니라, 단어가 활성화시키는 사고입니다”
-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도덕, 정치를 말하다’ ‘프레임 전쟁’을 쓴 세계적 베스트셀러 저자로서 ‘프레임(frame)' 이론의 권위자 조지 레이코프 UC 버클리대 교수의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 중에서
몸과 마음, 기분까지 푹푹 찌는 무더위, 땀 한방울 흘릴 때마다 휴가 생각이 절실해지는 한여름인데요. 휴가들 어디로 떠날 계획들이신가요? 바다? 숲? 계곡? 워터파크? 위에서 언급한 레이코프 교수의 말을 응용하자면, 휴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렇게 머리 속에 바다, 산, 계곡, 워터파크 같은 것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바로 ‘휴가 프레임’입니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상대방의 정치 프레임에 말려들게 되면 선거에서 지게 된다”는 문구에서 보듯,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정치적인 의미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레이코프 교수가 지칭한 ‘프레임’이란 말의 뜻은 인문학의 하나인 언어학과 심리학의 한 종류인 인지과학에서 비롯된 것이죠. 레이코프 자신이 언어학 박사로서, UC 버클리 인지과학과 언어학 교수로 재직하며 뇌신경과학과 접목하고 정치학적으로 융합하여 사용함으로써 엄청난 흥행을 불러일으킨 말이 바로 ‘프레임’인 것입니다. 기초 학문이자 필수(!) 학문으로서의 인문학, 그 인문학적 소양에다 다른 학문들과의 융합 시도가 자유로운 학문적 풍토가 없었다면 이토록 유행하기 힘들었을 말이 바로 이 ‘프레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곧 있으면 떠날 휴가, 그 ‘휴가 프레임’ 속의 숲과 바다 등은 어떤 경험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들로 비춰질 텐데요. 그렇다면 과학과 음악적 감성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여름 휴가지로서의 바다와 숲은 어떻게 들리게 될까요?
국립산림과학원이 올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숲의 소리, ‘산의 음악’은 안정감과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산림과학원은 2007년부터 숲에서 나는 시냇물, 폭포, 낙엽 등의 소리를 수집하여 그 주파수 특성을 분석했는데요. 숲의 소리는 20데시벨(dB)로 도심과 비하면 아예 소리가 없는 수준으로 작아, 청각에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데다가 전 주파수별로 고른 분포를 띠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숲 소리 중에서도 시냇물의 소리는 신체 이완과 수면 중 뇌에서 발생되어 ‘수면파’라고 불리는 세타파(4~7.99Hz의 주파수를 갖는 뇌파)의 발생량이 평균 숲 소리보다 10%정도 높았다고 하는데요. 한마디로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입니다. 또 폭포소리와 낙엽 밟는 소리는 숲 평균 소리보다 SMR파(sensorimotor rhythm ; 감각운동리듬. 12~15Hz의 주파수를 갖는 방추형 뇌파)의 발생량이 16% 높았다고 합니다. SMR파는 알파파(8~12.99Hz의 주파수를 갖는 뇌파,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나오는 안정파)와 베타파(13~30Hz의 주파수를 갖는 뇌파, 스트레스파라고도 불리우며, 긴장, 불안시에 다량으로 발생) 사이의 주파수를 갖는 뇌파로 주의력이 최고조로 달한 상태, 업무나 스포츠, 학습의 최고조 상태에서 발생되기 때문에 집중력 훈련을 할 때 활용되기도 합니다. 콕집어서 얘기하자면 폭포 소리, 낙엽 소리를 들으면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파도 소리, 즉 ‘바다의 음악’ 또한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가져다 준다고 합니다.
일본 교토대 의대 쓰토무 오오하시 교수 연구팀의 ‘들리지 않는 고주파음이 뇌 활동에 미치는 영향 : 극초음파 효과’는 파도 소리가 집중도 향상과 긴장이완 효과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28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파도 소리 등을 들려주고 EEG(수면뇌파, 睡眠腦波, sleep electroencephalogram)를 측정하는 등의 실험을 한 결과 심리적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나오는 안정파인 알파파가 증가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긴장돼 있거나 불안할 때 나타나는 스트레스파인 베타파는 줄어들었다고 하죠.
이와 관련된 연구들을 살펴보면 눈을 감고 이완된 상황에서 이뤄지는 각성상태, 머리가 맑은 느낌이 날 때 발생하여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알파파는 파도 소리를 녹음하여 들었을 때에도 생겨난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파도소리 효과를 이용하여 심리, 재활치료, 학습에 활용하려는 연구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일본에서는 휴양지인 오키나와 해변의 파도 소리를 씨디에 담아 판매하기도 한답니다.
바다와 산이 노래하는 ‘자연 음악’들은 말 그대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기분과 안정된 감정을 가지게 하여 여러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얘기인데요. 여기서 감정과 그에 관한 ‘뇌과학의 프레임’으로 살펴봐도 비슷한 내용들이 발견됩니다. ‘데카르트의 오류’라는 책을 쓴 미국 남가주 대학 신경과학과 교수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사회적 인식과 의사결정에서 감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다마지오 교수는 뇌 전전두엽에 생긴 종양을 제거한 뒤 감정을 잃어버린 환자의 사례를 연구했는데요. 그 환자는 다른 기능은 멀쩡한데도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같은 간단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하더란 것입니다. 어떤 옷이 좋고 어떤 옷이 싫은지 감정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죠. 감정이 의외로 행동을 결정하는 생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감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요. 감정을 느끼는 뇌 부위인 복내측 전전두엽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볼 때 냉혹한 판단을 한다고 하죠.
여기에 더해 감정이 이성적 판단에 영향을 끼친다는 뇌 과학적 뒷받침도 있는데요. 이탈리아 가브리엘 다눈치오 대학 첨단생물의학기술센터의 M. 브루네티 교수 등의 ‘감정적 콘텐츠에 대한 연역적 이성판단의 프레임 짜기; 자기공명영상 연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브루네티 교수팀은 자기공명영상 장치 속 실험 참가자들에게 감정적으로 부정적인 시각 자극과 중립적인 시각 자극을 보여주고, 그 뒤에 각각 감정적으로 부정적인 삼단논법 명제들과 중립적인 명제들을 제시한 뒤 그 삼단논법들의 타당성을 평가하도록 하였는데요. 그랬더니 부정적인 시각 자극 뒤에 제시된 삼단논법 명제들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상황 판단, 감정조절 등과 연결된 내측 전전두엽(medial prefrontal cortex)은 비활성화 되고, 배외측 전전두엽(DLPFC: 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외측 전두엽(lateral frontal cortex)은 활성화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니 이성적 판단이 방해를 받더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프레임’으로 살펴볼 때, 중요한 결정을 앞둔 정치인이 인적이 드문 산이나 바다로 가서 며칠씩 칩거하는 행동이 이해가 가는 대목인 것이죠.
‘예술적 프레임’으로 보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많은 문학가나 미술가, 특히 음악가들은 뭔가 새로운 작업을 시도할 때 흔히들 여행을 떠나 외국의 산이나 바다 같은 개인적으로 새로운 자연 풍경들을 접하며 감정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긍정적 영향들을 받아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무더위의 한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휴가 프레임’으로 봐도 산과 바다 등의 자연 풍경들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번 여름에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휴가를 떠나시겠습니까? 이도 저도 다 귀찮으면 아무것도 없는 텅빈 프레임을 가지고 떠나, 있는 그대로 대자연의 소리들을 가득 채워 돌아오는 것은 어떨까요?
비틀스의 '머더 네이처스 선'(어머니 대자연의 아들)처럼 말입니다.
나는 어머니 대자연의 아들
시골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하루종일 이곳에 앉아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네
계곡 옆에서 물이 솟구쳐오르는 걸 바라보고
그녀들이 날아가며 만드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를 듣는다네
나는 어머니 대자연의 아들
나의 푸른 초원에 앉아 나 자신을 발견하지
한들거리는 데이지 꽃들은 태양 아래에서 나른한 노래를 불러준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