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숫자와 음악 상징

등록 2015-08-17 14:40수정 2015-08-17 14:41

광복절 70돌을 앞둔 2015년 8월4일 오후 서울 시내 건물 바깥에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광복절 70돌을 앞둔 2015년 8월4일 오후 서울 시내 건물 바깥에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숫자의 상징성, 철학, 수학 등만 아니라 음악에도 영향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정인보 작사·윤용하 작곡 ‘광복절 노래’

지난해 8월15일은 광복 69돌이었고 올해 8월15일은 광복 70돌입니다. 광복절은 언제나 똑같이 기쁘고 또 한편으로 지나간 과거를 되돌아보게 하는 뜻깊은 날인데요. 특이하게도 69돌과 70돌의 느낌은 분명 또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건 아마도 70돌에서 7이라는 숫자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올 광복절을 휴일인 토요일에 맞이하게 되자 정부가 그 전 날인 14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한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한번 해봅니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도 행운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숫자 7은 서양에서 아주 오래된 유래를 가지고 있는데요.

“수(數)는 우주를 지배한다”고 말한 고대 그리스 수학, 철학자 피타고라스를 따르는 피타고라스 학파에선 완벽한 형태를 가진 삼각형의 ‘3’과 사각형의 ‘4’가 합쳐진 ‘7’이야말로 완벽한 숫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양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기독교에서는 유일신 ‘야훼’가 6일 동안 세상을 만들고 7일째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숫자 7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기독교와 뿌리가 같은 유대교에는 1년에 7번 신성한 날이 있구요. 유대인들이 사용한 히브리어로 숫자 ‘7’(seven)을 의미하는 ‘셰바(sheva)’는 완성과 완벽을 뜻하기도 합니다.

동양에서도 숫자 7이 두 번 겹치는 음력 7월7일에 은하수의 양쪽 둑에 있는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1년에 1번 만난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 등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죠.

또 숫자 7은 소수로서, 그 자신이 다른 수로 나뉘어지지 않고 다른 수의 약수도 되지 않아 강한 독립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독립운동가 출신 교육자 정인보가 가사를 쓰고, 가곡 ‘보리밭’으로 유명한 윤용하가 선율을 만든 ‘광복절 노래’ 또한 ‘7’개의 온음을 가진 장조 음계를 사용하여 만든 곡입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혼돈과도 같은 인과관계를 통해 태풍을 만든다는 ‘카오스 이론’에서 ‘나비효과’처럼, 작은 눈짓과도 같던 숫자 ‘7’의 상징성이 사방으로 퍼지며 커다란 ‘의미의 연결망’으로 번져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데요.

인간에게만 부여된 고도의 정신작용의 하나로서 상징은 집단적, 사회적으로 승인된 일정한 정신적 약속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한번 좋은 의미의 상징으로 굳어진 숫자 ‘7’이 여기저기 다양한 분야로 퍼져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가장 의미있는 것으로 여겨 그들의 수학과 역법체계의 기본으로 사용한 숫자 ‘60’이 계속 이어져 내려와 현재 1시간이 60분, 1분이 60초의 시간체계가 된 사례도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자에게 12개의 영역이 있다고 보아 특별한 숫자가 된 ‘12’가 1년 12개월, 1일 오전, 오후 12시간, 1인치의 12배인 1피트, 1펜스의 12배인 1실링, 대표적 음계인 장음계와 단음계 속 12개의 음(도, 도#, 레, 레#, 미, 파, 파#, 솔, 솔#, 라, 라#, 시) 등 현재의 날짜, 통화, 길이, 음악의 체계로 사용되는 사례 등을 보면 숫자상징을 비롯한 기호상징이 철학, 수학, 종교, 음악, 문화 등에 끼친 영향을 잘 살펴볼 수 있는데요.

또 동양의 명리학에서 말하는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 10천간과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12지지를 음양에 맞게 배열한 60갑자가 위에서 본 숫자나 기호상징의 사례들과 모종의 아련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두정간구(頭頂間溝 intraparietal sulcus) 이미지. 오른쪽 윗부분 빨간 선 부분.출처 위키피디아
두정간구(頭頂間溝 intraparietal sulcus) 이미지. 오른쪽 윗부분 빨간 선 부분.출처 위키피디아

이러한 숫자, 기호상징은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토대는 물론 신경과학적인 기반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데요. 숫자, 기호상징과 같은 인간의 고도의 정신작용과 관련된 뇌 부위인 ‘두정간구(頭頂間溝 intraparietal sulcus)’가 바로 그것입니다.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 심리학과 I. D. 홀로웨이 교수팀의 ‘숫자상징의 의미론적이고 지각적인 처리과정: 자기공명영상을 통한 비교언어학적 연구’를 보면 그 사실을 잘 알수 있습니다.

홀로웨이 교수팀은 힌두-아랍숫자와 중국 숫자표의문자 모두를 읽을 줄 아는 중국인들과 힌두-아랍숫자만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의 그룹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두 개의 숫자상징을 보는 두 그룹의 뇌 활동을 살펴본 결과, 두그룹 통틀어 1, 2, 3, 4, 5, 6, 7, 8, 9, 0 같은 힌두-아랍 숫자를 보았을 때 왼쪽 두정간구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활성화 되었다고 합니다.

반면 중국인들이 一, 二, 三, 四, 五, 六, 七, 八, 九, 十 같은 중국 숫자표의문자를 보았을 때에는 오른쪽 두정간구가 활성화 되었다고 합니다.

힌두-아랍숫자와 중국 숫자상형문자의 시각적 유사성을 처리하는 과정은 왼쪽 방추상회 (fusiform gyrus, 후두엽과 측두엽에 걸쳐있는 내측 후두 측두회(medial occipitotemporal gyrus)의 다른 이름. 얼굴에 대한 정보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의 활성화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문화를 독립변수로 놓고 진행한 이번 연구를 통해 보면 두정간구와 방추상회에서 숫자상징의 의미론적이고 지각적인 처리과정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두정간구는 음표 등의 기호상징으로 이뤄진 음정 정보를 머리 속에서 변환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캐나다 맥길대학 신경심리학과 N. E. 포스터 교수팀의 ‘음악적 음정 정보를 변환하는 데 있어 두정간구(頭頂間溝 intraparietal sulcus)의 역할 연구’에 두정간구의 역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최소 7년 평균 15년 연주 경력이 있는 20~37살 평균 25살의 남성 8명과 여성 4명 총 12명의 오른손잡이 연주가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이 연구에서 연주자들은 온음계 ‘도 미 솔 파 솔’로 이뤄진 다장조의 짧은 멜로디를, 머리 속에서 사장조로 조옮김하거나 멜로디를 구성하는 음표들을 거꾸로 배열하여 연주했는데요. 이때 뇌의 두정간구 부위가 활성화되었다고 합니다.

기호상징인 음표를 옮기거나 순서를 바꾸는 등 고도의 추상적 두뇌행동을 할 때 또한 뇌의 두정간구 부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죠.

포스터 교수팀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연주하도록 한 원래 멜로디
포스터 교수팀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연주하도록 한 원래 멜로디

원래 멜로디를 사장조로 조옮김 한 것
원래 멜로디를 사장조로 조옮김 한 것

원래 멜로디의 음표들을 역순으로 배열한 것
원래 멜로디의 음표들을 역순으로 배열한 것

19세기 독일의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는 “수는 순전히 인간의 정신적 산물이다”라고 말했고, 영국의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수학은 문학적 상상력을 조직화하는 힘이다”라고 말했는데요. 광복 70돌을 맞아 더 강렬하게 들리는 ‘광복절 노래’ 속에서도 뇌 두정간구에서 처리되는 상징이라는 고리를 통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철학, 수학, 종교, 음악, 문화의 역동적인 모습이 눈에 선연히 보이는 듯 합니다.

김형찬 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