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음악·공연·전시

히트 댄스곡, 가사가 춤추는 까닭

등록 2015-09-03 12:14수정 2015-09-04 16:00

전자음 사운드가 먼저…방해 안되도록 맞춰
사운드에 중점 두면 표절 우려 주는 장점도
황광희, 태양, 지드래곤 방송화면 갈무리.
황광희, 태양, 지드래곤 방송화면 갈무리.

“Give Me That, Drop That
Give Me That 맙소사
I Love It Love It Love It 맙소사
You Love It Love It Love It
(Yeah I’m Ready) 맙소사
Since 88 태어날 때부터 Everyday가 우린 Birthday
I Go Hard 신이 날 땐 아무도 날 심판하지 못해 절대
양, 옆, 앞, 뒤 다 줄 맞춰 내가 지휘할 테니까
교양 없이 듣는 예능 Symphony 오늘은 토요일
무한대를 그려봐 Let’s Go
Boom Boom Boom 무슨 말이 필요해
Shut Up And
Drop Drop Drop The Bass
-‘무한도전 영동고속도로가요제’에서 황광희, 태양, 지드래곤이 노래한 ‘맙소사’ 중에서

요즘 노래들은 예전 노래들에 비해 덜 서정적이고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며, 특히 히트하고 있는 댄스곡 등의 대중음악들 상당수는 춤과 선율과 리듬에 종속된 채 공허한 단어와 단순한 영어로 가사가 채워지고 있다는 비판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위의 노래 ‘맙소사’ 또한 마찬가지의 비판을 피해갈 수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그 중 첫 번째는 요즘 음악에서는 다른 그 무엇보다 사운드가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사보다도, 어쩌면 멜로디보다도 사운드에 더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죠. 국내외를 막론하고 근래의 대중음악들이 전자음 등의 사운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우선 좀더 다양한 음색 등을 사용함으로써 표현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게다가 거의 모든 노래가 컴퓨터에 저장되고 인터넷으로 검색되는 디지털 시대에, 선율에 중심을 둔 음악들은 표절 위험과 그에 따른 파장이 큰 반면, 사운드에 중점을 둔 음악은 그 러한 표절 우려를 줄여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선율은 1옥타브를 평균률의 12개 반음으로 분할한 도, 도#, 레, 레#, 미, 파, 파#, 솔, 솔#, 라, 라#, 시의 12개 음만을 사용하여 만들어지지만, 신디사이저,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통해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1옥타브 안에서 이론적으로 무한대에 가까운 음들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표절의 위험이 적어지는 것이죠. 예를 들어, 피아노 건반 위에서 가온‘다’ 즉 4번째 높은 ‘도’ (C4. 아래 그래픽 참조)의 주파수는 261.63Hz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반음 높은 음인 ‘도#’의 주파수는 277.18Hz입니다. 여기서 사운드는 261.63Hz와 277.18Hz사이 주파수들, 즉 261.64~277.17Hz 사이의 무수한 음들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죠. 사운드는 여기에 더해 음색도 엄청나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표절 방지에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주파수(Hz)와와 진폭이 같아도 그 파형이 다르면 그 음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음색까지 다르게 조합하면 사운드의 종류는 더욱더 다양해지기 때문인 것이죠.

신디사이저가 나오기 전엔 비틀즈가 한 옥타브 안에서 22개의 슈루티(sruti) 즉 22개의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는 인도 악기 시타르의 음색을 절묘하게 사용해 ‘노르웨이지언 우드(Norwegian Wood)’라는 명곡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평균률의 12음 선율을 벗어나, 서양인 입장에서 볼 때 ‘새로운 소리’인 시타르의 독특한 사운드에 주목해 만든 결과물인 셈입니다.

싸이, 지드래곤, 캘빈 해리스, 모비 등 국내외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음악에서 큰 비중을 두고 있는 사운드는 신디사이저와 컴퓨터 음악의 발달에 따라 점점 더 형형색색의 소리 형태들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운드가 왜 점점 다양해질 수 있는지는 신디사이저의 원리를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신디사이저의 사운드 합성 방식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주파수 변조 방식인 FM(Frequency Modulation)방식이 있습니다. 주파수 발생장치인 오실레이터와 주파수 조절장치인 모듈레이터 등을 사용하여 주파수의 합성과 변조를 통해 다양한 전자음을 만드는 사운드 합성 방식입니다. 정현파(正弦波 sine wave 아래 그림 참조)라고 하는 순수하고 단조로운 톤의 사운드 주파수의 강약과 길이, 음량을 조절하여 기계적이면서도 다양하며 신비로운 음색을 잘 구현하는 사운드 합성 방식입니다. 야마하 DX 시리즈. TG시리지. MU80 등의 신디사이저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사인파 이미지
사인파 이미지

그 다음으로는 전기진동부호변조 즉 PCM(Pulse code modulation) 방식이 있습니다. 피아노 기타 등 실제 악기를 사운드 그대로 디지털화 해서 컴퓨터에 저장하여 음악 시퀀서 프로그램을 통해 불러서 쓰는 방식입니다. 그만큼 악기의 원음 재현 능력이 뛰어납니다. 필요에 따라 약간의 변형만을 가해서 사용하기도 하죠. 롤랜드의 SC 시리즈. JV시리즈. 야마하 AWM (Advanced Wave memory) 신디사이저에서 채택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AI 방식은 위의 FM 방식과 PCM 방식을 함께 쓰는 방식인데요. 실제 악기음을 내는 PCM 방식에 주파수를 변조하는 FM 방식을 섞어서 다양한 음색의 사운드를 만드는 음 합성 방식입니다. 코르그 신디사이저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여러 형태의 샘플링 음원들의 조합을 통해 다양한 사운드를 만듭니다. 피아노 등 실제 악기의 원음 재현뿐만 아니라 음색의 다채로운 편집을 통해 다양한 전자음을 만들어내 여러 음악장르에 이용이 가능합니다.

여기에 더해 컴퓨터에서 큐베이스, 로직 등의 음악시퀀서 프로그램을 통해 사운드를 만들기도 합니다. 큐베이스 등의 음악 시퀀서 프로그램에 플러그인 형태로 ‘가상악기(VSTi)’들을 불러내어 사운드를 만듭니다. 또 스펙트라소닉의 ‘옴니스피어’ 프로그램(아래 이미지)을 불러내어 전자 사운드에 “싸~”하는 소리의 백색잡음을 넣는 등 다양한 사운드를 합성할 수도 있습니다. 네이티브 인스트루먼츠의 ‘콘탁트’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지구상의 모든 사운드를 샘플로 불러들여 마음대로 오리고 자르고 붙이는 등의 편집을 통해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사운드 합성 소프트웨어 ‘옴니스피어’
사운드 합성 소프트웨어 ‘옴니스피어’

신디사이저, 컴퓨터를 이용한 사운드 합성을 통해 바람 소리, 물방울 소리, 파도 소리 등등 자연의 사운드들도 음악 속으로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운드의 발전은 “바흐가 평균율을 만들어 한 옥타브 안에 12개음들만 사용하게 되는 바람에, 동양 음계의 다양한 소리들은 물론 인간의 삶과 자연 속 여러가지 음들이 음악 속에서 쫓겨나게 되었다”고 푸념하던 사람들의 찌푸린 얼굴 주름살 마저 웃음의 오선줄로 바꿔버렸죠.

생생한 물방울 사운드를 편집해 넣어 만든 일본 시부야계 밴드 코넬리우스의 음악 ‘드롭’ 동영상 출처 <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penAy3JrXws" target="_blank">www.youtube.com/watch?v=penAy3JrXws</a>
생생한 물방울 사운드를 편집해 넣어 만든 일본 시부야계 밴드 코넬리우스의 음악 ‘드롭’ 동영상 출처 www.youtube.com/watch?v=penAy3JrXws

사실 일상과 자연 속 사운드를 이용한 음악의 역사는 녹음 기술과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무지 꽁끄레떼’(콘크리트뮤직)라고 하는 ‘구체 음악’은 악기가 떨어지는 소리, 발 구르는 소리, 사람의 고함 소리 등 일상의 모든 사운드를 자유롭게 녹음하여, 이를 다시 기계적, 전기적으로 변형하고 합성시켜 음악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1948년 프랑스의 방송국 기사였던 피에르 셰페르, 같은 프랑스의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 독일의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이 대표적인 구체 음악가이죠. 그에 앞선 1944년에는 이집트 작곡가 하림 엘 답이 녹음한 사운드를 활용하여 음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구체 음악가’ 샤페르 동영상 출처 Pierre Schaeffer & Pierre Henry: Orphee 53 (1953) <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XJq3jItducg" target="_blank">www.youtube.com/watch?v=XJq3jItducg</a><br>Halim El-Dabh - “Wire Recorder Piece” (1944) <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j_kbNSdRvgo" target="_blank">www.youtube.com/watch?v=j_kbNSdRvgo</a>
‘구체 음악가’ 샤페르 동영상 출처 Pierre Schaeffer & Pierre Henry: Orphee 53 (1953) www.youtube.com/watch?v=XJq3jItducg
Halim El-Dabh - “Wire Recorder Piece” (1944) www.youtube.com/watch?v=j_kbNSdRvgo

이러한 ‘구체 음악’의 뿌리가 면면히 이어져 신디사이저, 컴퓨터 음악 등의 사운드 기술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 보듯 녹음기, 신디사이저, 컴퓨터 사운드 카드, 음악 소프트웨어 등 오랜 음향기술의 축적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근래의 사운드 중심 음악들은 말 그대로 사운드의 참신성과 대중성에 승부를 겁니다. 가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운드인 것이죠. 그래서 가사를 쓰더라도 공들여 합성하고 만들어낸 사운드에 맞게 가사를 씁니다. 가사가 뿜어내는 자음과 모음의 사운드가 새롭게 만들어낸 전자음 사운드에 방해가 안되도록 하는 것이죠. ‘브아걸’ ‘비’ 등의 음반 작업에 참여한 작곡가 겸 편곡자 이근우 음악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요즘엔 아예 사운드 중심으로 편곡부터 먼저하고 가사나 노래를 나중에 만들어 녹음한다”는 것이죠.

진짜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랩에 담으면 됩니다. 랩은 그 가사가 가진 메시지와 별도로 단어 자체가 가진 사운드가 전자 사운드에 쉽게 녹아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사운드 위주의 음악에서 자주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여기에 더해 음악의 장르에 따라 가사의 비중과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가사가 반드시 서정적이거나 깊은 의미를 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댄스곡이나 일렉트로닉 같은 음악에서는 더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일례로 누구나 명곡으로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스웨덴 그룹 아바의 ‘댄싱퀸’을 들어봐도 그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춤출 수 있죠. 자이브를 출 수 있어요
당신의 인생에서 멋진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저 소녀를 봐요 저 모습을
춤추는 여왕에 빠져 보세요
금요일 밤 불빛은 낮게 비추는데
갈 곳을 찾아봐요
누군가 신나는 음악을 틀고 있는 곳
스윙춤을 추는 곳
당신은 왕을 찾으려 들어옵니다.
누구라도 왕이 될 수 있어요
(하략)”
- 아바 ‘댄싱 퀸’ 중에서

누구나 걸작으로 여기며 들을 때마다 어깨를 들썩거리는 아바의 ‘댄싱 퀸’의 가사는 선율과 리듬에 비해 별 다를 게 없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멜로디와 그 선율을 눈부시게 뒷받침 해주는 편곡과 사운드에 누구나 감탄을 금치 못하죠. 댄스곡에서는 아무래도 가사 보다는 선율이나 리듬, 사운드가 중요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핀란드 헬싱키대학에서 실험심리학, 청각인지신경학, 음악신경미학 연구를 하고 있는 엘비라 브라티코 박사팀은 뇌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즐거운 음악을 듣는 청취자들에게는 가사보다 소리의 요소들이 더 큰 영향을 끼치고, 슬픈 노래의 경우 가사가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죠. 즐거운 음악의 경우 밝은 음색과 빠른 템포, 신나는 리듬의 악기 사운드가 들어간 음악들이 감정과 관련된 뇌의 변연계의 활동을 촉발시켰다는 것입니다.( 관련 글 참조: 슬픈 노래는 가사, 즐거운 노래는 멜로디에 끌린다)

이러한 여러가지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댄스곡과 일렉트로닉과 발라드와 포크송과 록 등 음악에는 저마다 다른 작사 기법과 의미의 자리매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지금까지만 말입니다. 앞으로 더 가사에 비중을 둔 댄스 음악이나 일렉트로닉 히트곡이 나오지 말란 법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예상을 깨고 더욱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가사보다도 선율보다도 사운드보다도 더 중요한 ‘음악의 절대 원소’이기 때문입니다.

김형찬 기자 chan@hani.co.kr
▶김형찬의 앱으로 여는 음악세상 http://plug.hani.co.kr/appsong/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