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김재섭 기자의 @어바인 통신
스콧 맥닐리(51)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창업자가 지난 4월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난 데 이어 빌 게이츠(52)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겸 기술고문도 오는 2008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1980년대 이전에 설립돼 수십년 동안 세계 정보기술(IT) 시장과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온 미국 업체들의 창업자들이 모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 아이비엠과 휴렛패커드 등은 이미 오래 전에 물러났다.
게이츠는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해, ‘도스’와 ‘윈도’ 운영체제 및 ‘워드’ 같은 응용소프트웨어 등을 공급해 개인용컴퓨터(PC) 시대를 열었다. 맥닐리는 1982년 썬을 설립해 유닉스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중형 컴퓨터를 공급하며, ‘네트워크 컴퓨팅’ 시대를 예견하고 이끌어왔다.
둘은 이제 쉰을 갓 넘겼다. 한창 일할 나이다. 하지만 맥닐리는 최고경영자 자리를 내줬고, 게이츠는 2년 뒤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둘 모두 깔끔하게 결단을 내렸고, 실행에 옮겼다.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뽑아 키우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물론 이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엠에스와 썬 모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애써 쌓은 성을 스스로 허무는 결정까지 감수해야 한다. 엠에스는 오픈소스(소프트웨어의 설계도를 공개하는) 흐름과 구글의 등장 이후 급격하게 바뀌는 정보기술 시장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실패하면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 썬 역시 ‘자바’의 세력을 키워 컴퓨터 공급업체에서 소프트웨어 공급업체로 변신해야 한다.
이런 변신을 하는데 있어서 창업자를 포함한 기존 경영진은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기존 사업에 대한 미련을 떨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지털이퀴프먼트란 컴퓨터 공급업체의 경우, ‘알타비스타’란 황금알 기술을 개발하고도 사업화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이퀴프먼트가 알타비스타를 제대로 키웠다면 구글이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컴퓨터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경영진 탓에 투자를 받지 못해 사장됐다. 이후 이 업체는 사업부가 해체돼 각각 팔리는 처지로 몰렸다.
우리나라의 대기업 가운데 아직 괜찮은 실적을 내고 있는 곳의 쉰 안팎 되는 창업자에게 “시장 환경의 변화로 예상되는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하니 물러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이씨, 최씨, 정씨, 방씨, 김씨가 주인 행세를 하는 우리나라의 대기업 가운데 이런 조언을 하고, 논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가진 곳이 있을까.
더욱이 아들이 아니라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라고 한다면? 그리고 게이츠처럼 그동안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업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하면?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더욱이 아들이 아니라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라고 한다면? 그리고 게이츠처럼 그동안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업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면 어떻겠느냐고 하면?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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