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 경제부 정보통신전문기자
김재섭 기자의 @어바인 통신
유선전화는 오래 전부터 몰래 엿듣는 게 가능했다. 이제는 이동전화도 도청이나 감청(대통령의 승인이나 법원의 영장을 받아 엿듣는 것)이 가능해졌다. 미국은 이동전화 통신망 장비에 몰래 엿듣는 장치를 설치했고, 우리나라도 국가정보원이 이동전화를 도청해왔다고 실토한 바 있다. 그럼 최근 새로 등장한 인터넷 전화는?
인터넷 전화란 인터넷을 통해 통화를 하게 하는 서비스다.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은 어렵다. 기존 전화처럼 통화가 연결될 때 배정된 하나의 회선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통화 내용 데이터가 조각조각 나눠진 뒤 여러 회선을 경유해 보내진 다음 원래 모습으로 조합되는 과정을 거쳐 음성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 방식으로는 인터넷 전화를 도청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인터넷 전화가 몰래 엿듣는 행위로부터 자유로운 시기도 길지 않을 듯 싶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이 ‘칼레아법’을 개정해, 인터넷 전화도 몰래 엿들을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연방수사국은 이동전화 통신망에 도청장비 설치를 의무화할 때처럼, 인터넷 전화에 대해서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달고 있다. 미국의 칼레아법은 우리나라의 통신비밀보호법과 같은 구실을 한다. 공익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워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에 해당하는 ‘비밀 통신의 자유’을 제한한다.
미국의 <시-넷>이 입수해 보도한 미국연방수사국의 칼레아법 개정안 초안을 보면, 인터넷서비스업체(ISP)들은 인터넷 전화 이용자들의 통화 내용을 몰래 엿들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장치를 인터넷 통신망에 설치해야 한다. 또 인터넷 통신망에 설치되는 장비 공급업체들은 도청이 가능하도록 기술 지원을 해야 한다.
미국연방수사국이 마련한 칼레아법 개정안에는 이외에도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인터넷 메신저 내용까지도 몰래 엿볼 수 있고, 법 집행기관이 아이에스피들에게 좀더 편리하게 인터넷 전화를 엿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으며, 법무부가 해마다 도청 통계를 발표하도록 하고 있는 기존 법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모든 종류의 통신 내용을 누구도 눈치도 보지 않으면서 몰래 엿듣거나 엿보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인터넷은 국경이 없다. 또 인터넷 전화는 이동성을 보장한다.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나 전화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인터넷 전화 이용자들도 미국 수사기관의 도청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칼레아법이 미국연방수사국 개정안대로 바뀔 경우, 미국에서 수입되는 네트워크 장비에 도청 지원 기능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가능해진다. 도청 지원 기능을 미국에 공급하는 장비에는 넣고, 우리나라에 파는 것에서는 뺀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정보·수사기관들은 그동안 이동전화 통신망에 도청 장비를 설치해 쉽게 도청을 하고 있는 미국을 은근히 부러워해왔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더욱이 우리나라의 정보·수사기관들은 그동안 이동전화 통신망에 도청 장비를 설치해 쉽게 도청을 하고 있는 미국을 은근히 부러워해왔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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