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카란디아 검문소 밖에서 주민들이 대기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허가증 없이 이 곳을 통과할 수 없다. 이동의 자유를 제한당하는 이들의 표정이 무겁고 지리해 보인다.
[팔레스타인에서 온 편지] ③ 평화롭던 팔레스타인 기독교인과 무슬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에서 동북쪽으로 30km 떨어진 인구 2500여명의 아부드 마을을 최근 다녀왔다. 전형적인 팔레스타인 시골 마을이었지만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 마을에서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으로 반반씩 나뉘어진 두 공동체가 수 세기를 평화로이 살아왔다.
20세기 초까지 팔레스타인에는 이런 마을이 여럿 있었다. 이후 토착 기독교인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 이제 기독교인이 다수로 구성된 마을은 몇 개 남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이라니! 무슬림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랍인과 무슬림을 동의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서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아랍 기독교인은 왠지 낯설다. 나 역시, 팔레스타인에 처음 도착해 아랍 복장을 한 사람들을 교회에서 만났을 때 몹시 당황스러웠다. 아랍 복장을 한 사람들은 모두 무슬림이라고 생각한 것도 우습지만,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2000년 전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자손들임을 잊고 있었던 사실 또한 놀라왔다. 이는 서구 기독교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동방 교회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랍 복장의 기독교인들 고대 교회건물서 예배
이슬람·기독교·유대교인 매주 함께 평화 기도 3~11세기에 지어진 고대 교회 건물과 유적들이 아부드 마을의 오랜 기독교 역사를 증거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오갈 때 아부드 마을을 지났을 것으로 믿고 있다. 따라서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시대로부터 전해져온 것이며, 자신들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집단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아부드 마을의 기독교인 서라지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전통을 갖고 있는 토착 기독교인들이지만 서구 기독교 안에서는 잊혀진 기독교인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조부모님들은 글자를 몰라 성경책을 읽지 못했지만 2000여년 동안 공동체로 이어져온 그리스도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사신 분들”이라며 “문자(논리) 중심의 서구 기독교 전통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 무슬림 공동체의 아부 아하마드는 “1929년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이전까지 우리들은 아랍 문화를 공유하는 팔레스타인이었을 뿐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팔레스타인 무슬림이라고 우리 자신을 구분해 부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두 공동체는 종교적 의식은 다르지만 보편적 ‘믿음’, 즉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 믿음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종교란 무엇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너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답한 것처럼, 또 예수 그리스도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 것처럼, 신앙은 모든 사람들을 정의롭게 대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스라엘 군사 점령이 시작된 1970년 전후, 아버지는 길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청년을 폭행하는 것을 보고 말리다가 이스라엘 군인들 총부리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 때 아버지의 첫 마디는 “그들은 유대인도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유대인 군인들이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다른 종교를 비난하려 하지 않았다. 말로 하는 관용이 아니라 몸에 배어있는 관용이 공동체를 화해와 평화로 이끌었다는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신분증에는 종교를 표시하도록 돼있다. 검문소를 지날 때 이스라엘 군인들이 의도적으로 기독교로 표시된 신분증에 특혜를 베푼다. 무슬림은 남게 하고 기독교인들을 먼저 지나가게 하는 등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를 특혜로 생각하는 기독교인은 없다. 두 집단을 분열시키려는 이들의 의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아부드 마을 역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다른 마을처럼 1967년 이후 많은 땅이 징발돼 유대인 정착촌을 짓는데 사용됐다. 분리장벽으로 농토가 몰수되고 수백년 된 올리브 나무들이 뽑히고 수자원 공급이 끊기는 등 군사점령으로 인한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군사점령 아래에 있는 팔레스타인이 겪는 고통은 기독교, 무슬림 어느 공동체도 예외일 수 없다.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을 지원하는 미국의 기독교 단체들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의 탄압과 위협 때문에 팔레스타인을 떠나는 것으로 선전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이민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군사점령으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다. 매주 금요일 아부드 마을에서는 기독교인, 무슬림, 그리고 유대인들이 함께 하는 기도모임이 열린다. 특히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참여가 인상적이다. 이 모임을 이끄는 피라스 아리다 신부는 “우리에게는 많은 이스라엘 유대인 친구들이 있다. 정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은 팔레스타인에서 군사점령이 끝나야 한다고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군사점령은 어떤 종교의 이름으로도 묵인되거나 합리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문제는 종교적 분쟁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임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종교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종교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천해 가는 사람들과 권력의 편에서 분리와 분열로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로 나뉠 뿐이다.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이 무서운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아부드 마을 사람들은 오늘 우리가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묻는다. 민중의 편에 서서 사랑과 정의로 사람을 대하고 있는지, 아니면 권력의 편에 서서 힘있는 자들을 지원하고 있는지.
라말라/이승정 전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청소년사업부장 seungjunglee@hotmail.com
이슬람·기독교·유대교인 매주 함께 평화 기도 3~11세기에 지어진 고대 교회 건물과 유적들이 아부드 마을의 오랜 기독교 역사를 증거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오갈 때 아부드 마을을 지났을 것으로 믿고 있다. 따라서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시대로부터 전해져온 것이며, 자신들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집단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아부드 마을의 기독교인 서라지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전통을 갖고 있는 토착 기독교인들이지만 서구 기독교 안에서는 잊혀진 기독교인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조부모님들은 글자를 몰라 성경책을 읽지 못했지만 2000여년 동안 공동체로 이어져온 그리스도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사신 분들”이라며 “문자(논리) 중심의 서구 기독교 전통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 무슬림 공동체의 아부 아하마드는 “1929년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이전까지 우리들은 아랍 문화를 공유하는 팔레스타인이었을 뿐 팔레스타인 기독교인, 팔레스타인 무슬림이라고 우리 자신을 구분해 부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두 공동체는 종교적 의식은 다르지만 보편적 ‘믿음’, 즉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 믿음을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무함마드(마호메트)가 종교란 무엇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너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답한 것처럼, 또 예수 그리스도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 것처럼, 신앙은 모든 사람들을 정의롭게 대하는 것이다.”
그는 이어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스라엘 군사 점령이 시작된 1970년 전후, 아버지는 길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청년을 폭행하는 것을 보고 말리다가 이스라엘 군인들 총부리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이 때 아버지의 첫 마디는 “그들은 유대인도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유대인 군인들이었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다른 종교를 비난하려 하지 않았다. 말로 하는 관용이 아니라 몸에 배어있는 관용이 공동체를 화해와 평화로 이끌었다는 이야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신분증에는 종교를 표시하도록 돼있다. 검문소를 지날 때 이스라엘 군인들이 의도적으로 기독교로 표시된 신분증에 특혜를 베푼다. 무슬림은 남게 하고 기독교인들을 먼저 지나가게 하는 등의 방법이다. 그러나 이를 특혜로 생각하는 기독교인은 없다. 두 집단을 분열시키려는 이들의 의도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아부드 마을 역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다른 마을처럼 1967년 이후 많은 땅이 징발돼 유대인 정착촌을 짓는데 사용됐다. 분리장벽으로 농토가 몰수되고 수백년 된 올리브 나무들이 뽑히고 수자원 공급이 끊기는 등 군사점령으로 인한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군사점령 아래에 있는 팔레스타인이 겪는 고통은 기독교, 무슬림 어느 공동체도 예외일 수 없다.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을 지원하는 미국의 기독교 단체들은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의 탄압과 위협 때문에 팔레스타인을 떠나는 것으로 선전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이민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군사점령으로 인한 불확실한 미래다. 매주 금요일 아부드 마을에서는 기독교인, 무슬림, 그리고 유대인들이 함께 하는 기도모임이 열린다. 특히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참여가 인상적이다. 이 모임을 이끄는 피라스 아리다 신부는 “우리에게는 많은 이스라엘 유대인 친구들이 있다. 정의와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은 팔레스타인에서 군사점령이 끝나야 한다고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군사점령은 어떤 종교의 이름으로도 묵인되거나 합리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의 문제는 종교적 분쟁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임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종교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종교 안에서 정의와 평화를 실천해 가는 사람들과 권력의 편에서 분리와 분열로 이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로 나뉠 뿐이다.
이승정씨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