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신하들이 각기 말하고자 하는 것을 숨김없이 모두 아뢰니 혹 백성들의 고통과 답답한 사정이 있어도 환하게 들을 수 있었다.” … 요즘 불통(不通)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다산과 표암이 임금과 가졌던 한때를 증언한 글이 새삼 아름다운 이야기로 다가온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먹고사는 것이야 개인의 능력과 취향에 달린 것이지만 자연과 문화유산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공유물이다. 서울에 남산 낙산 인왕산 북악산 삼각산 도봉산 청계산이 있어 언제 어느 때라도 등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세계 어느 도시 사람도 누리지 못하는 서울 사람들의 복이다. 서울에 녹지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이 산을 모두 넣고 계산하면 녹지율이 25%에 달하여 밴쿠버에 버금간다. 또 서울엔 공원이 부족하다고들 곧잘 말하는데 그것은 근린시설로서 조성한 공원이 적다는 것이지 자연과 벗하며 한가한 한때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적은 것은 아니다. 서울엔 무엇보다 조선왕조의 5대 궁궐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있고 또 종묘, 문묘(성균관), 무묘(동묘)도 있다. 비싸야 커피 한잔 값만 내면 들어갈 수 있다. 문화재청에선 진작부터 한복 입은 사람은 무상출입을 할 수 있게 하여 왔는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고궁을 거니는 것이 큰 유행으로 되어 얼마나 보기에도 아름답고 흐뭇한지 모른다. 자연을 인공적으로 가꾸고 재현하여 일상 속에 끌어들인 공간을 정원이라고 한다. 동양의 아름다운 정원으로는 중국 쑤저우의 졸정원 등 9개의 사가(私家) 정원과 일본 교토의 용안사(료안지) 등 17개의 사찰 정원이 한꺼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이름 높은데 우리 창덕궁의 궁궐 정원 또한 당당한 세계유산으로 애국적 관점이 아니라 나의 미술사적 관점에서 말한다 해도 쑤저우의 9개 정원, 교토의 17개 정원을 다 합친 것과 맞상대해도 한치 꿀릴 것 없는 동양 정원의 백미이다.
그런데 창덕궁 후원을 다녀온 서울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창덕궁 후원이 일반에게 처음 개방된 것이 2004년 5월1일이니 불과 10여년밖에 안 된다. 창덕궁 관람인원은 연간 내국인 약 160만명, 외국인 약 40만명 정도다. 그중 후원 관람은 하루 15회(30분 간격), 1회 100명으로 제한하니 많아야 하루 1500명이다. 그런데 봄가을을 제외하고는 다 차지도 않고, 외국인이 30%를 차지하니 1년에 3만명 정도가 다녀갔다. 그러니까 후원 개방 후 현재까지 내국인 후원 관람객은 30만명이 안 되는데 그중 70%가 서울 사람이라고 치면 20만명 정도가 다녀간 셈이다. 안타깝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일이다.
창덕궁 후원은 약 10만평 규모로 궁궐 뒷산의 세 골짜기를 정원으로 경영한 것이다. 태종 때 창건되어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중건하면서 인조가 옥류천, 존덕정 영역을 닦았고, 숙종은 애련정, 영조는 영화당, 정조는 부용정, 효명세자는 연경당을 지으며 계속 그 영역을 넓혔다. 무엇 때문에 임금들이 정원을 꾸미는 데 이렇게 마음을 쓴 것인가. 숙종대왕은 애련정을 세운 뜻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꽃을 가까이함에는 몸이 나른하고 정신이 피로하면 호연건을 쓰고 학별의를 입고서 지팡이를 짚고 산보하며 이 정자에 올라 생각한다. 혹은 백성이 곤궁하면 보호할 것을 생각하고, 군자가 궁벽한 곳으로 숨으면 어떻게 불러들여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소인배가 조정에 있으면 어떻게 물리칠까를 생각하고, 언로가 막히면 반드시 크게 넓히고자 하고, 풍속이 무너지면 반드시 크게 변혁시킬 것을 생각한다… 임금의 마음이 바루어지면 조정이 바루어지고 나라가 바루게 될 것이다. 만일 풍경의 번화함만 구경하겠다는 즐거움이라면 나는 이를 취하지 않겠다.”
후원은 임금이 신하를 편하게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은 정조대왕이 부용정에서 베푼 즐거운 연회를 회상하며 이런 글을 남겼다.
“임금께서 등극한 지 19년째 되는 해(1795년) 봄에 꽃을 구경하고 고기를 낚는 잔치를 베풀었다. 당시 나는 규장각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때 참석한 신하는 모두 10명이었다.
때는 온갖 꽃이 활짝 피어 있었고 봄빛이 매우 화창하였다. 임금께서는 신하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곳에 여러분을 모신 것은 유희 삼아 즐겁게 놀려는 것이 아니다. 경들과 함께 즐기면서 마음을 서로 통하려는 것이다’라 하였다.
술을 마시자 임금의 얼굴은 희색이 넘쳤고 목소리도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부용정에서 배를 띄우게 하고 배 안에서 시를 지었는데 정해진 시간 안에 짓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연못 가운데 있는 조그만 섬에 유배시키기로 하였다. 과연 몇 사람이 섬 가운데로 귀양을 갔는데 곧 풀어 주셨다.”
다산은 그때의 연회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삼가 생각하건대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높은 하늘과 낮은 땅과의 사이 같다고 하겠는데… 음식을 내려주고 즐거운 낯빛으로 대해 주어서 그 친근함이 마치 한집안의 아버지와 아들 사이와 같았으며, 엄하고 강한 위풍을 짓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러 신하들이 각기 말하고자 하는 것을 숨김없이 모두 아뢰니 혹 백성들의 고통과 답답한 사정이 있어도 환하게 들을 수 있었다. 어찌 이런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널리 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이 글을 쓴다.”
정조대왕의 이런 모습에 대한 또 하나의 증언으로 표암 강세황이 정조의 안내를 받아 후원 안쪽을 두루 관람하고 쓴 글이 있다. 정조 5년(1781년) 9월4일, 69세의 표암 강세황은 정조의 부름을 받고 창덕궁 희우정으로 들어갔다. 임금이 비단폭을 내주며 병풍을 쓰라고 하여 막 붓을 잡는데 이렇게 물었단다.
“이곳에 구경할 만한 좋은 곳이 있소. 글씨를 먼저 쓴 뒤에 놀러 가겠는가, 아니면 먼저 놀고 난 뒤에 쓰겠는가?”
표암은 임금께서 뜻밖에도 이처럼 친숙하게 제안해 온 것에 당황하여 감히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어물하고 있으니 정조가 말을 꺼냈단다.
“바로 대답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아마 먼저 놀고 싶은 뜻이겠지요.”
이리하여 표암은 승지나 사관의 길 안내를 받는 줄 알았는데 임금이 영화당 아래에 대령한 태평거(말이 끄는 수레) 대신 가마를 가져오라고 명하고는 직접 인도하는 것이었단다. 대제학 등 신하 5명과 화원 김응환을 동행케 하여 족히 5리 길 되는 옥류천, 존덕정을 두루 구경시켜 주면서 늙은 신하들의 갈증을 염려하여 배를 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희우정으로 돌아오니 궁중의 음식을 내려 주어 각신들과 함께 취하고 배부르게 먹었다고 한다.
표암은 그날의 감회를 이렇게 적었다.
“생각건대 명나라 양사기라는 사람이 황제가 후원을 유람케 한 것에 감사하여 글을 남겼는데 그것은 내시들을 시켜서 안내하여 놀게 한 것일 뿐이었다. 어찌 우리 임금께서 몸소 신하들을 거느리고 좋은 경치와 명승지를 낱낱이 일러주면서 온화한 얼굴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한집안 식구나 다름없이 대해준 것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옛 기록을 두루 찾아보아도 전에 없던 일이었다. 이에 대강을 적어 나의 자손에게 전하여 보이노라.”
요즘 불통(不通)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고 있자면 다산과 표암이 임금과 가졌던 한때를 증언한 글이 새삼 아름다운 이야기로 다가온다.
명지대 석좌교수 먹고사는 것이야 개인의 능력과 취향에 달린 것이지만 자연과 문화유산은 거기 사는 사람들의 공유물이다. 서울에 남산 낙산 인왕산 북악산 삼각산 도봉산 청계산이 있어 언제 어느 때라도 등산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세계 어느 도시 사람도 누리지 못하는 서울 사람들의 복이다. 서울에 녹지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이 산을 모두 넣고 계산하면 녹지율이 25%에 달하여 밴쿠버에 버금간다. 또 서울엔 공원이 부족하다고들 곧잘 말하는데 그것은 근린시설로서 조성한 공원이 적다는 것이지 자연과 벗하며 한가한 한때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적은 것은 아니다. 서울엔 무엇보다 조선왕조의 5대 궁궐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이 있고 또 종묘, 문묘(성균관), 무묘(동묘)도 있다. 비싸야 커피 한잔 값만 내면 들어갈 수 있다. 문화재청에선 진작부터 한복 입은 사람은 무상출입을 할 수 있게 하여 왔는데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복을 차려입고 고궁을 거니는 것이 큰 유행으로 되어 얼마나 보기에도 아름답고 흐뭇한지 모른다. 자연을 인공적으로 가꾸고 재현하여 일상 속에 끌어들인 공간을 정원이라고 한다. 동양의 아름다운 정원으로는 중국 쑤저우의 졸정원 등 9개의 사가(私家) 정원과 일본 교토의 용안사(료안지) 등 17개의 사찰 정원이 한꺼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이름 높은데 우리 창덕궁의 궁궐 정원 또한 당당한 세계유산으로 애국적 관점이 아니라 나의 미술사적 관점에서 말한다 해도 쑤저우의 9개 정원, 교토의 17개 정원을 다 합친 것과 맞상대해도 한치 꿀릴 것 없는 동양 정원의 백미이다.
어머니와 딸이 18일 오후 서울 창덕궁의 부용정과 부용지 옆을 걷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child/2024/0116/53_17053980971276_2024011650343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00/32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76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807.jpg)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original/2025/0212/20250212500150.webp)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original/2025/0211/20250211502715.webp)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original/2025/0211/20250211503664.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