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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홍준 칼럼] 한국 문화의 글로벌 위상을 생각한다

등록 2018-04-19 18:15수정 2018-04-19 19:47

유홍준

한국 문화의 20세기와 21세기의 가장 큰 차이는 한마디로 문명 수입국에서 공급국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무역 규모가 세계 10위를 넘나들고 국민소득 3만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경제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무수한 한국 제품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고 케이(K)팝을 비롯한 대중문화가 한류를 이루며 자랑스럽게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해주는 나라로 그 위상이 바뀌었다.

오늘 자로 나의 기명 칼럼은 끝을 맺는다. 지난 5년간 고정 필자로 이 지면에 글을 써온 것은 큰 보람이자 영광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말할 수 없는 부담이었다. 무엇을 쓰든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실렸지만 신문의 칼럼이란 모름지기 생활인 또는 전문가의 시각에서 그때그때의 이슈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매번 ‘이번에는 무얼 쓰지’ 하고 고민하며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나도 모처럼 거대 담론으로 나의 마지막 칼럼을 마감하고자 한다. 그것은 내 가슴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문제의식이지만 내 능력 밖에 있는 우리 문화가 세계화의 길로 나아가 글로벌 위상을 드높이는 과제다.

한국 문화의 20세기와 21세기의 가장 큰 차이는 한마디로 문명 수입국에서 공급국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무역 규모가 세계 10위를 넘나들고 국민소득 3만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경제지표가 이를 말해준다. 무수한 한국 제품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고 케이(K)팝을 비롯한 대중문화가 한류를 이루며 자랑스럽게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해주는 나라로 그 위상이 바뀌었다.

그러나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 변화를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급작스러운 경제적 성장이 낳은 사회적 모순의 갈등과 후진적인 정치행태 때문에 단군 갑자 이래 처음 맞이하는 이 엄청난 성취를 어떻게 더 잘 이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뇌는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

20세기를 살아오면서 우리가 문화적으로 크게 마음 써온 것은 한국 문화의 정체성이었다. 한국인은 누구이고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무수히 많은 논의가 있었다. 그런 고뇌와 논의의 결과 우리는 한국 문화의 특질을 세심히 볼 수 있게 되었고 민족적 자존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중심부 문화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모든 문명수입국들이 겪는 문화적 고뇌로 대단히 방어적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자칫하면 폐쇄적인 보호막으로 둘러지고 심지어는 열등의식의 삐뚤어진 행태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고 끝내는 세계 속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데 오늘의 자랑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사실을 체감하지 못하고 여전히 지난날의 관성에 빠져 있는 면이 없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의식과 문화에 대한 시각을 아직도 민족적인 것의 굴레에 가두고 글로벌한 시각으로 전환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한 예로 우리는 한국의 역사라고 하면 으레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병자호란도 청나라가 쳐들어와 인조가 항복하였다는 사실 못지않게 왜 청나라가 명나라와 싸우다 말고 조선을 침공했는지, 임금을 무릎 꿇렸으면서도 지배하지 않고 인질만 데리고 철수하는 데 그쳤는지도 면밀히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조선왕조의 존재감이 살아난다.

역사책에서 고려왕조는 무수히 많은 침략을 받은 왕조로 기록되어 있다. 거란의 요나라, 만주족의 금나라, 몽골족의 원나라, 그리고 홍건적의 침입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 역사 전체에서 보면 중국 대륙이 북송, 요, 남송, 금, 원, 명 등 여섯 왕조가 뒤집어지는 와중에도 고려왕조는 475년간 이어간 대단히 슬기롭고 건강한 나라였다. 원나라의 사위 나라가 된 것도 불명예만은 아니다. 그 막강한 몽골의 27년간 일곱 차례 침공을 막아내고 결국 협상을 통해 ‘칸’의 지배를 받지 않고 대원제국의 사위 나라로 대접받는 것으로 전쟁을 마감하였다.

인간이 만든 밥그릇 중 자기를 능가하는 것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중국 자기의 역사는 4세기 초보적 청자인 고월자로부터 시작되어 10세기에는 퍼펙트한 청자를 만들어냈다. 이는 중국 문화의 위대한 발명이었다. 고려는 이 중국의 청자를 벤치마킹하여 11세기가 되면 아름다운 고려청자를 만들어냈다. 이후 어느 나라도 청자를 만들지 못했다. 고려마저 청자를 만들지 못했다면 세계 청자의 역사는 중국의 문화로 국한되고 말았을 것이다. 고려는 더 나아가 12세기가 되면 상감기법을 개발하여 청자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구현하였다.

그럼에도 소더비와 크리스티 옥션에서 송나라 청자는 고려청자보다 몇십배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질로 따져서 한 치 꿀릴 것이 없고 희소성을 따지자면 고려청자가 더 귀한데 왜 국제시장에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런던의 브리티시 뮤지엄, 파리의 기메 뮤지엄에서 중국실, 일본실에 비해 한국실의 비중은 비참할 정도로 초라하다. 실로 억울하기 그지없다. 중국은 그렇다고 치고 왜 한국 문화가 일본의 반의반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일본은 일찍이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있던 선구적 노력이 있었다. 무려 100년 전에 니토베 이나조는 일본의 정신을 말한 <사무라이의 정신>(武士道·무사도)을, 오카쿠라 덴신은 일본의 미학을 논한 <차(茶)의 책(冊)>을 영어로 펴내 지금도 영어권에서 동양학 연구의 기본서가 되어 있다.

또 일본은 중요문화재를 제외한 일반문화재는 해외 반출이 자유로워 많은 미술품들이 서구의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나라의 미술품을 글로벌한 시각에서 보면 그 나라의 문화 외교관 역할을 한다.

가야 토기를 영국 사람이 사가면 영국 토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인에 의해 가야 토기가 사랑받고 칭송되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몇백년 된 리모주 도자기를 맘껏 살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인사동 고미술상 진열장에 나와 있는 흔한 미술품도 외국 반출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경매에 한국 미술 파트는 일찍이 폐쇄됐다. 더욱 답답한 것은 브리티시 뮤지엄 관계자가 한국 미술품을 구입하기 위해 왔다가 되돌아간 것이다. 이러고서 어떻게 한국 전시실이 보완되어 대접받기를 바라겠는가.

이제 우리는 국외에 있는 중요문화재는 환수하되 일반문화재는 외국에서 우리 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 무작정 국외 반출을 금지하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지난 18일 뉴욕 크리스티 일본 미술품 경매에는 한국 미술품 몇점이 곁다리로 출품되었다. 여기에서 313만여달러(한화 약 33억원)에 낙찰되어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분청사기 물고기무늬 편병’이라는 명품은 일본인 소장가가 출품한 것이었고 그 낙찰자는 한국인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외국 경매에서 중요한 유물은 우리가 사들여오는 문화능력이 있다.

서구에는 서양인 중국문화 전문가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서양인이 볼 수 없는 중국 문화의 진수를 알기 쉽게 가르쳐준 것은 중국인 임어당(林語堂·린위탕)이었다. <생활의 발견>이라는 명저의 저자인 임어당은 중국 사람들에게는 서양을 알려주고, 서양 사람들에게는 중국을 가르쳐주고 싶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 다리로는 서양, 한 다리로는 중국을 딛고 한마음으로 우주를 향해 글을 썼다.”

우리에게도 그런 능력과 기백을 갖고 있는 학자·문필가가 나와야 한국 문화는 비로소 세계화되어 국제적 위상을 드높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외국에 유학한 적도 없고,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다. 그래서 내게 비록 글로벌한 마인드가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나의 글쓰기란 그저 내수용일 뿐 수출용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제는 외국을 경험한 젊고 능력 있는 글로벌한 필자가 나와서 우리 문화가 진정 세계화의 길로 갈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기를 바라며 이 지면을 떠난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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