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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홍준 칼럼]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등록 2017-06-29 18:18수정 2017-06-29 20:57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어떤 세상이 좋은 세상이냐고 물으면 태평성대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데 역사상 그런 시대는 없었다. 까마득한 옛날, 증명되지도 않는 요순시절이라고 상상할 뿐이다. 그래서 문화사가들은 태평성대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한 시대의 치세를 칭송하는 최대의 찬사는 문예부흥기이다. 서양 역사에서 16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동양 역사에서는 18세기 청나라 강희·옹정·건륭 연간이 그 명예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8세기 3/4분기 석굴암·불국사·에밀레종으로 상징되는 신라 경덕왕 때, 12세기 2/4분기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고려 인종 때, 15세기 2/4분기 한글을 창제하고 종묘제례악을 정비한 세종대왕 때, 그리고 18세기 후반기 영·정조 시대가 문예부흥기였다.

영·정조 시대의 문화적 성취는 영조 시대에 일어난 문화적 변혁이 정조 시대에 그 결실을 맺었기 때문에 반세기라는 긴 세월을 하나로 묶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사로 압축해 말하면 이 시기엔 종래의 중국화풍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매몰되어 있던 그림의 세계를 벗어나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그린 진경산수, 현실 생활상을 나타낸 풍속화가 탄생했고 회화미의 진수를 담아낸 문인화풍이 안착됨으로써 미술사의 꽃을 피웠다.

문예부흥기의 국정철학은 경국제민(經國濟民), 문화보국(文化保國) 여덟 글자로 요약된다. 즉 나라를 다스리면서 백성을 구제하고 문화로써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문예부흥기의 절대적인 후원자(patron)는 우리가 계몽군주라고 칭송하는 임금이었다. 세종대왕이 계몽군주였음을 모르는 이 없을 것인데 정조 또한 명군이었다. 두 분 모두 자기 자신이 학문이 깊었고 학자를 존중했다. 세종은 집현전, 정조는 규장각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 학자를 곁에 두고 국가를 경영하였다. 두 분 모두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과 사람을 쓸 줄 아는 용인술의 명수였다.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에는 정조가 지은 ‘만천명월 주인옹 자서’(萬川明月 主人翁 自序)라는 장문의 글이 잔글씨로 빼곡히 새겨져 있다. 이 글은 정조가 갖고 있던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만천명월 주인옹’이란 냇물은 만 개여도 거기에 비치는 달은 하나인 것처럼 임금은 만백성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정조 22년(1798), 나이 47세 때인지라 늙은이 옹 자를 썼는데 이 글은 제목만 보면 군주의 초월적 위상을 강조한 글로 생각되기 쉽지만 그렇지가 않다.

“만천명월주인옹은 말한다. 내가 많은 사람을 겪어 보았는데, 아침에 들어왔다가 저녁에 나가는 것이 오는 것인지 가는 것인지 모르는 자도 있고, 하는 일이 얼굴빛과 다르고 눈이 마음과 틀린 자가 있는가 하면, 트인 자, 막힌 자, 강한 자, 유한 자, 어리석은 자, 소견이 좁고 얕은 자, 용감한 자, 겁이 많은 자, 현명한 자, 교활한 자,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 생각은 부족하나 고집스럽게 자기주장만 하는 자, 모난 자, 원만한 자, 활달한 자, 대범하고 무게가 있는 자, 말을 아끼는 자, 말재주를 부리는 자, 엄하고 드센 자, 멀리 밖으로만 빙빙 도는 자, 명예를 좋아하는 자, 실속에만 주력하는 자 등등 그 유형을 나누자면 냇물처럼 천 가지 만 가지일 것이다.”

정조는 처음에는 그들 모두를 자신의 마음으로 미루어도 보고, 일부러 믿어도 보고, 또 그의 재능을 시험해 보기도 하고, 일을 맡겨 단련도 시켜 보고, 혹은 북돋워주고, 혹은 밀고 나가게 하고, 굽은 자는 교정하여 바로잡아주는 숱한 과정에 피곤함을 느껴왔다고 한다. 그런지 어언 20여 년이 지나면서 다행히 태극과 음양의 이치를 사람에게 적용해 보고 나서 사람은 각자 생김새대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치를 터득했다며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대들보감은 대들보로, 기둥감은 기둥으로 쓰고, 오리는 오리대로 학은 학대로 살게 하여 그 천태만상을 나는 그에 맞추어 필요한 데 쓴 것이다. 그의 단점은 버리고 장점을 취하고, 선한 점은 드러내주고 나쁜 점은 숨겨주며, 잘한 것은 안착시키고, 잘못한 것은 뒤로 돌려주고, 규모가 큰 자는 진출시키고 협소한 자는 포용하면서 재주보다 뜻을 더 중히 여겼다.”

그리고 이어서 사람을 등용하여 일을 시킬 때도 각인에 따라 다르게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트인 자를 대할 때는 규모가 크면서도 주밀한 방법을 이용하고, 막힌 자는 여유를 두고 너그럽게 대하며, 강한 자는 유하게, 유한 자는 강하게 대하고, 바보 같은 자는 밝게, 어리석은 자는 조리 있게 대하며, 소견이 좁은 자는 넓게, 얕은 자는 깊게 대한다. 용감한 자에게는 방패와 도끼를 쓰고, 겁이 많은 자에게는 창과 갑옷을 주었고, 총명한 자는 차분하게, 교활한 자는 강직하게 대했다.

뜻만 높고 실행이 따르지 않는 자는 취하도록 마시면서 대하였고, 활달한 자에게는 나의 깊이 있는 면을 보여주고, 대범한 자에게는 나의 온화한 면을 보여주고, 말을 아끼는 자는 실천에 더욱 노력하도록 하고, 말재주를 부리는 자는 되도록 종적을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를 주며, 엄하고 드센 자는 산과 호수처럼 포용성 있게 제어하고, 멀리 밖으로만 도는 자는 포근하게 감싸주고, 명예를 좋아하는 자는 내실을 기하도록 권하고, 실속만 차리는 자는 인생을 달관하도록 면려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유하자면 물이 흐르면 달도 함께 흐르고, 물이 멎으면 달도 함께 멎고, 물이 거슬러 올라가면 달도 함께 거슬러 올라가고, 물이 소용돌이치면 달도 함께 소용돌이치며 달은 각기 그 형태에 따라 비추듯이 사람들은 각자의 얼굴과 기량에 맞게 대하는 것이 군주의 자세라는 뜻에서 정조는 자신이 머무는 처소에 ‘만천명월 주인옹’이라고 써놓고 호로 삼았다는 것이다.

정조 자신이 이처럼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시대엔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면서 문예부흥을 이루었다. 정치에서 번암 채제공, 문학에서 연암 박지원, 사상에선 다산 정약용, 미술에선 단원 김홍도가 나왔다. 번암과 연암과 다산과 단원이 위대하다면 이들을 낳은 정조 시대도 위대한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 역사상 네 차례 나타난 문예부흥기는 영정조 시대 이후 217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한 민주화 산업화를 이루어냈다. 그것을 어떻게 문예부흥기로 승화시킬 것이냐가 우리 시대의 과제인데 나는 영조 시대의 예술적 성취를 정조 시대가 이어간 모습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읽어본다.

영정조 시대 회화에 등장한 진경산수·풍속화·문인화라는 새로운 3대 장르는 영조 시대에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 능호관 이인상 등 양반 출신의 지식인 화가들이 선구적으로 개척한 것을 정조 시대에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고송 이인문 등 도화서 화원 출신의 전문화가들이 발전시킨 것이다. 그래서 영조 시대 그림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예술적 고뇌가 서려 있는 내용상의 깊이가 있고 정조 시대 그림엔 정교한 테크닉이 두드러지는 형식상의 완결미가 돋보인다.

이를 비약해서 말하자면 의식있는 지식인들이 제시한 진보적 내용을 능력있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들이 형식적으로 구현해낸 것이었다. 지난 세월 우리가 쌓아온 값진 경험을 이제 능력있는 진정한 엑스퍼트(전문가)들이 경국제민과 문화보국의 자세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게 된다면 혹 후세 사람들이 우리가 살던 이 시기를 문예부흥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영광과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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