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덕수궁 옆 ‘아빠하고 나하고’
<모스크바 일기>에서 발터 베냐민은 판매하는 상품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거나 명칭만 쓰여 있는 20세기 초 모스크바의 간판들을 주목했다. 간판이 그런 모습으로 존재했던 것은 당시 모스크바에서는 그것 이외의 이름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주변의 간판들에는 판매하는 상품의 명칭이나 이미지가 아닌 온갖 화려하고 매혹적인 이름들로 채워져 있다. 그 이름들은 해당 가게에서 파는 대상들을 지칭하지 않는다. 대상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차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판의 이름은 행인의 시선을 유혹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시선을 부여잡을 수 있을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정겨운 이름의 간판, 그 밝은 표정 뒤에는 치열한 삶의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오창섭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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