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원들이 한나라당의 방송관련법 등 각종 법안의 단독처리를 막기 위해 26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점거해 단상에 현수막을 걸고 농성을 하고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입법전쟁’ 국회 본회의장서 공성전
민주당, 출입문마다 체인·철사로 외부접근 막아
‘직권상정 저지’ 수적열세 극복수단 선택 성탄절 밤 10시께 민주당 의원들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떴다. ‘26일 오전 8시30분 국회의장실 의원총회.’ 언론에 알려진 ‘오전 9시 본회의장 앞 의총’과 내용을 달리한 통보였다. 그렇게 26일 소리소문없이 모인 민주당 의원들은 원혜영 원내대표한테서 뜻밖의 작전명령을 들었다. “중대결심을 했다. 지금부터 최후의 수단인 본회의장을 점거한다.” 민주당 의원 54명은 오전 8시49분 의장실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이윤성 국회 부의장실 306호 앞 출입문을 통해 본회의장 진입에 성공했다. 신학용, 김재균 민주당 원내부대표들은 전날 밤 본회의장에 미리 들어가 밤을 지새운 뒤 작전개시에 맞춰 국회의장단만 사용하는 이 문을 열어줬다. 민주당은 국회 사무처가 2층 속기사 출입문, 3층 본회의장 출입구, 4층 방청객 입구 등 곳곳을 잠갔는데도, 두 의원이 어떻게 ‘사전잠입’해 ‘출입동선’을 확보했는지에 대해선 “산타클로스가 안내해준 길로 들어갔다”며 입을 닫았다. 이처럼 민주당 작전은 철저한 보안 속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민주당은 25일 전략회의를 열어 점거계획을 세운 뒤 지도부에 보고했고, 정세균 대표는 “책임은 내가 지겠다. 사즉생의 각오로 ‘엠비 악법’을 저지하자”며 승인을 해줬다고 한다. 민주당은 본회의장을 접수한 뒤 출입문마다 자건거 체인과 철사로 묶어 외부접근을 막았다. 본회의장 유리문엔 ‘엠비(MB) 악법 날치기 포기’, ‘마스크처벌법 안돼’ 등의 종이를 붙였다. 한나라당의 ‘옆구리’를 찌른 민주당의 선제공격은 의석수가 한나라당의 반도 안 되는 상황에서 쟁점법안 저지의 최후 보루인 본회의장을 틀어막아 수적 열세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특히 2002년 개정된 국회법은 110조와 113조에서 표결 안건의 제목과 표결 결과를 의장석에서만 선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여당의 강행처리를 막기 위해선 의장석을 선점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다. 또 한나라당이 뚫고 들어와 민주당 의원들을 들어내고 법안처리를 할 경우, 여론이 여당에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는 반면 민주당은 시민사회가 비판하는 법안들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획득의 기대감도 담겨 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앞에서 성명서를 내고 “여야대화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국회의장의 존재마저도 의미가 없는 정치실종의 상황에서 두려워했던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본회의장 사수에 집중하는 한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행정안전위, 정무위 등 쟁점 상임위 점거도 이어가기로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한나라당 “도둑놈들 하는짓”…법안처리 앞당길 태세
일부 “이념법안 미뤄야” 속도조절론 제기도
“저런 식으로 점거할지는 몰랐다.”(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26일 아침 민주당의 국회 본회의장 점거 사실이 알려지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심 ‘선제적 본회의장 진입 → 국회의장 직권상정 → 법안 전격 처리’ 차례로 야당과의 물리적 충돌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을 해온 한나라당으로선 선수를 뺏긴 셈이 됐다. 당장 본회의장 진입이란 난제를 하나 더 떠안게 된 것이다. 소식을 들은 홍 원내대표는 다급히 본회의장으로 올라가 주변을 돌아보곤 “(본회의장 점거는) 도둑x들이나 하는 짓으로 직권상정 명분만 높여주고 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의원총회에선 “국회 사무총장에게 일주일 전부터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경비해 달라고 요구했는데”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한 초선의원은 “상황이 아주 갑갑하게 됐다”고 했다. ‘허를 찔린’ 지도부는 더욱 강경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본회의 점거 탓에 의외로 (법안 처리) 시기가 며칠 좀더 당겨질 수밖에 없다. 속도를 조절할 시간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박희태 대표도 “지도부에서 경제 살리기를 주축으로 선별할 법안에 확신을 가지시라”고 말했다. 지도부는 이날 의총 토론 과정도 없앤 채 국회 본회의장 앞 계단에서 민주당을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당내에선 지도부의 전략 부재와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 수도권 중진의원은 “지도부가 급하지도 않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단독 상정하면서 야당을 강경투쟁하게 만들었고 의장이 직권상정할 명분과 여지도 좁혀버렸다”며 “다수 의석을 갖고 너무 밀어붙이기만 해 국민들로부터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도부의 전략을 질타했다. 정의화 의원도 지난 24일 일부 기자들과 만나 “한나라당이 172석을 갖고 다 먹자고 하면 저쪽(민주당)이 악을 쓰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 한나라당이 전략적으로 미숙하다”고 비판했다. 속도 조절론도 계속 제기된다. 이날 긴급 소집된 3선 이상 중진의원 긴급회의에서 원희룡·권영세 의원 등은 “지도부가 모든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려 하지 말고 처리 법안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이념 관련 법안은 여야간 논의로 타협점을 찾은 뒤 처리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 21’은 홍 원내대표에게 “경제 살리기 법안이나 일부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법안 등은 우선 처리하되 쟁점이 되는 방송법, 집시법, 사이버 모욕죄 신설 등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건의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직권상정 저지’ 수적열세 극복수단 선택 성탄절 밤 10시께 민주당 의원들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떴다. ‘26일 오전 8시30분 국회의장실 의원총회.’ 언론에 알려진 ‘오전 9시 본회의장 앞 의총’과 내용을 달리한 통보였다. 그렇게 26일 소리소문없이 모인 민주당 의원들은 원혜영 원내대표한테서 뜻밖의 작전명령을 들었다. “중대결심을 했다. 지금부터 최후의 수단인 본회의장을 점거한다.” 민주당 의원 54명은 오전 8시49분 의장실에서 불과 30여m 떨어진 이윤성 국회 부의장실 306호 앞 출입문을 통해 본회의장 진입에 성공했다. 신학용, 김재균 민주당 원내부대표들은 전날 밤 본회의장에 미리 들어가 밤을 지새운 뒤 작전개시에 맞춰 국회의장단만 사용하는 이 문을 열어줬다. 민주당은 국회 사무처가 2층 속기사 출입문, 3층 본회의장 출입구, 4층 방청객 입구 등 곳곳을 잠갔는데도, 두 의원이 어떻게 ‘사전잠입’해 ‘출입동선’을 확보했는지에 대해선 “산타클로스가 안내해준 길로 들어갔다”며 입을 닫았다. 이처럼 민주당 작전은 철저한 보안 속에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민주당은 25일 전략회의를 열어 점거계획을 세운 뒤 지도부에 보고했고, 정세균 대표는 “책임은 내가 지겠다. 사즉생의 각오로 ‘엠비 악법’을 저지하자”며 승인을 해줬다고 한다. 민주당은 본회의장을 접수한 뒤 출입문마다 자건거 체인과 철사로 묶어 외부접근을 막았다. 본회의장 유리문엔 ‘엠비(MB) 악법 날치기 포기’, ‘마스크처벌법 안돼’ 등의 종이를 붙였다. 한나라당의 ‘옆구리’를 찌른 민주당의 선제공격은 의석수가 한나라당의 반도 안 되는 상황에서 쟁점법안 저지의 최후 보루인 본회의장을 틀어막아 수적 열세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특히 2002년 개정된 국회법은 110조와 113조에서 표결 안건의 제목과 표결 결과를 의장석에서만 선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여당의 강행처리를 막기 위해선 의장석을 선점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다. 또 한나라당이 뚫고 들어와 민주당 의원들을 들어내고 법안처리를 할 경우, 여론이 여당에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는 반면 민주당은 시민사회가 비판하는 법안들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명분획득의 기대감도 담겨 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앞에서 성명서를 내고 “여야대화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국회의장의 존재마저도 의미가 없는 정치실종의 상황에서 두려워했던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본회의장 사수에 집중하는 한편,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행정안전위, 정무위 등 쟁점 상임위 점거도 이어가기로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한나라당 “도둑놈들 하는짓”…법안처리 앞당길 태세
일부 “이념법안 미뤄야” 속도조절론 제기도
국회 사무처의 수사 의뢰를 받은 서울 영등포경찰서 과학수사요원들이 26일 오전 본회의장 출입문에 대한 지문감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저런 식으로 점거할지는 몰랐다.”(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26일 아침 민주당의 국회 본회의장 점거 사실이 알려지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심 ‘선제적 본회의장 진입 → 국회의장 직권상정 → 법안 전격 처리’ 차례로 야당과의 물리적 충돌을 최소화하려는 계산을 해온 한나라당으로선 선수를 뺏긴 셈이 됐다. 당장 본회의장 진입이란 난제를 하나 더 떠안게 된 것이다. 소식을 들은 홍 원내대표는 다급히 본회의장으로 올라가 주변을 돌아보곤 “(본회의장 점거는) 도둑x들이나 하는 짓으로 직권상정 명분만 높여주고 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의원총회에선 “국회 사무총장에게 일주일 전부터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경비해 달라고 요구했는데”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한 초선의원은 “상황이 아주 갑갑하게 됐다”고 했다. ‘허를 찔린’ 지도부는 더욱 강경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본회의 점거 탓에 의외로 (법안 처리) 시기가 며칠 좀더 당겨질 수밖에 없다. 속도를 조절할 시간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박희태 대표도 “지도부에서 경제 살리기를 주축으로 선별할 법안에 확신을 가지시라”고 말했다. 지도부는 이날 의총 토론 과정도 없앤 채 국회 본회의장 앞 계단에서 민주당을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당내에선 지도부의 전략 부재와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 수도권 중진의원은 “지도부가 급하지도 않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단독 상정하면서 야당을 강경투쟁하게 만들었고 의장이 직권상정할 명분과 여지도 좁혀버렸다”며 “다수 의석을 갖고 너무 밀어붙이기만 해 국민들로부터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도부의 전략을 질타했다. 정의화 의원도 지난 24일 일부 기자들과 만나 “한나라당이 172석을 갖고 다 먹자고 하면 저쪽(민주당)이 악을 쓰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 한나라당이 전략적으로 미숙하다”고 비판했다. 속도 조절론도 계속 제기된다. 이날 긴급 소집된 3선 이상 중진의원 긴급회의에서 원희룡·권영세 의원 등은 “지도부가 모든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려 하지 말고 처리 법안을 최소화해야 한다. 특히 이념 관련 법안은 여야간 논의로 타협점을 찾은 뒤 처리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초선 의원 모임인 ‘민본 21’은 홍 원내대표에게 “경제 살리기 법안이나 일부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은 법안 등은 우선 처리하되 쟁점이 되는 방송법, 집시법, 사이버 모욕죄 신설 등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고 건의했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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