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5일 방북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1차 대북 특별사절대표단이 평양 조선노동당 본관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단(특사단)이 5일 저녁 평양에서 만찬을 했다. 이른 아침 경기 성남 서울공항을 떠날 땐 염두에 두지 않은 일정이다. 특사단은 애초 이날 오후 6시께 평양 순안공항을 떠나 귀환하는 일정을 내부적으로 세워둔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특사단의 평양 체류 시간과 대북 협의 시간이 길어진 셈이다. 무슨 신호일까? 협상 경험이 풍부한 정부 당국자는 “정보가 제한돼 단정할 수 없으나, 일단은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특사단이 평양에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얼마나 협의했는지 청와대가 공개한 정보는 매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평양의 상황을 가늠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사실은 공개됐다. 특사단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의견을 나눴다”(청와대 대변인)는 사실이다. 특사단 방북의 최소 목표치는 이뤄졌으리라 해석해도 무방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김 위원장 면담 성사를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했다.
“오전 10시22분 특사단 일행은 공식 면담을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는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의 브리핑 내용에 비춰, 특사단의 김 위원장 면담·협의는 점심 무렵에 이뤄진 듯하다. 다만 김 위원장이 특사단과 오찬을 함께하지는 않았다는 게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의 전언이다. 그리고 특사단은 예정에 없던 만찬에 참석했다. 만찬 주최자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게 청와대의 발표이지만, 여러 상황에 비춰 김 위원장이 만찬 자리를 마련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3월 특사단의 1차 방북 때도 김 위원장은 노동당사에서 만찬을 겸해 4시간 넘게 특사단과 함께했다.
정의용 국가안보 실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북 특사단이 5일 오전 성남공항을 통해 당일치기 방북길에 올랐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특사단과 김 위원장의 협의 내용, 특사단과 김영철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협의 내용은 알려진 게 전혀 없다. 앞서 청와대가 밝힌 특사단의 방북 목적은 세가지다. ①남북정상회담의 구체적 개최 일정 ②남북관계 발전 ③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협의다. ①과 ②는 사실상 한묶음이다. 특사단의 김 위원장 면담 사실에 비춰, ‘9월 남북정상회담’의 개최 일정과 의제 조율은 가닥을 잡았으리라 기대해도 무리가 아닌 분위기다.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심사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 협의’의 결과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지난달 24일 전격 취소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다시 성사시킬 환경을 마련할 수 있느냐다. 비핵화와 종전선언 등 상응조처를 둘러싼 북-미의 상당한 의견차를 좁힐 방안이 특사단과 김 위원장 등의 협의 과정에서 가닥을 잡았는지가 중요하다. 외교안보 분야 고위 인사는 “김 위원장 면담 성사와 예정에 없던 만찬 등 분위기는 좋은데 결국 중요한 것은 비핵화 관련 협의 결과물”이라며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을 실현시킬 환경을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다만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문제는 특사단과 김 위원장의 협의만으로 완결되는 사안이 아니다. 특사단이 평양에서 김 위원장과 협의한 결과를 가지고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동의를 얻어야 현실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애초부터 특사단의 귀환 직후 ‘정의용·서훈 특사’를 미국에 보낼 계획을 세운 이유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유엔 총회(9월18일~10월1일) 계기에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방안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문제와 관련한 특사단과 김 위원장의 협의 결과도 중요하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국내정치가 가열되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4·27 판문점 선언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다짐한 ‘연내 종전선언’의 성사 가능성이 낮아질 위험이 있어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4일 밤 전화 통화에서 유엔 총회 계기에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로 공감한 상태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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