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한국의 숲 ② 부산 기장 아홉산 숲
(* 한겨레-생명의 숲 공동기획)
(* 한겨레-생명의 숲 공동기획)
참나무 군락에 편백·소나무…정우규 박사 “보육림 본보기”
대나무 세력 커져 다른 종들 ‘질식’…지원 없어 관리 어려움
9대 산주 문백섭 대표 “행정·재정 지원받는 수목원 됐으면” 지난 15일 찾은 아홉산 숲은 층층나무 꽃이 흐드러진 아래로 맹종죽과 왕대나무에서 죽순이 한창 돋아나고 있었다. 9대째 산주 문백섭(54·생명공동체 아홉산 숲 대표)씨가 사는 ‘관미헌’이란 편액이 붙은 집 마당엔 1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산주의 할머니가 시집올 때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마당엔 마디가 거북 등껍질 모양인 구갑죽이 심겨 있다. 대나무는 이 산의 상징이지만, 최근엔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 메질 당하지 않은 미끈한 참나무 거목 눈길 서울 남산보다 조금 높은 아홉산(해발 360m) 아래 약 50만㎡에 걸쳐 있는 아홉산 숲에서는 아름드리 거목을 쉽게 만난다. 부산과 울산에 출퇴근할 수 있는 근교에 자리잡았으면서도 여느 도시 주변 야산과 구별되는 모습이다. 울진 금강송 모습을 빼닮은 200~300년생 소나무가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은 사람의 손길 덕분이다. 동행한 정우규 박사(울산 생활과학고 교사·울산 생명의 숲 공동대표)는 “그대로 내버려뒀으면 소나무 대신 참나무나 서어나무가 서 있을 자리”라며 “아홉산 숲은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오랜 기간 가장 모범적으로 가꾼 보육림의 본보기”라고 평가했다. 숲은 땔감 등 사람이 이용하면 좋은 나무부터 사라진다. 좋은 형질을 지닌 나무는 땔감으로도 좋다. 그래서 꼬불꼬불한 소나무 등 열등한 형질의 나무만 남는 것이다. 정 박사는 아홉산 숲에서 열등인자를 솎아내고 토양 유기물층을 꾸준히 유지해 온 결과 임목 육종에 필수적인 훌륭한 유전자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슴 높이 직경이 70㎝에 이르는 대형 상수리나무도 그런 예이다. 인가 근처에서 이렇게 전봇대처럼 곧고 상처 하나 없는 참나무 거목은 보기 힘들다. 대형 참나무를 사찰 주변에서 볼 수 있지만 예외 없이 도토리를 얻기 위해 메로 친 부위가 감염돼 혹이 나와 있다. 아홉산 숲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군락 외에도 편백나무, 삼나무, 맹종죽, 왕대, 서어나무가 무리지어 자란다. 정 박사가 2005년 발표한 정밀조사에서는 주왕산 국립공원과 비슷한 529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1950년대에 이미 우거진 숲을 관리하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임도 위로 대나무와 히말라야시더 등 거목이 터널을 이뤄 숲길을 걸으며 생태체험을 하기에 제격이다.
■ 대나무 수요 끊겨 숲 관리비 조달 막막 남평 문씨 일파가 미동마을에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400여년 전, 이들은 뒷산을 정성껏 가꾸고 활용했고 벌채를 하지 않고 이용하는 전통이 대대로 이어져 오늘의 아홉산 숲을 이뤘다. 9대 산주 문백섭 대표는 “어릴 때 숲은 지금보다 덜 울창했고 소나무가 많았으며 수박, 과수, 뽕나무도 길렀다”며 “지난 100년 동안 부친과 조부가 체계적인 조림의 틀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 울창해진 아홉산 숲은 역설적으로 ‘관리 부재’의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 숲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서 그런 징후가 드러난다. 무엇보다 대나무가 세력을 너무 뻗쳐 소나무 등 다른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 성장속도가 빠르고 햇빛 경쟁에서 압도적인 대나무가 땅속줄기를 확장해 나가면 어떤 나무도 견디지 못한다. 과거엔 김발 재료 등 해마다 대나무를 수확해 얻은 수확으로 숲을 관리했지만 요즘엔 “정월 대보름 행사 때 달집 만드느라 몇 대 나가는 게 수요의 전부”이다. 숲에서 나오는 소득은 거의 없지만 해마다 최소한 수천만원이 유지관리에 들어간다. 윤석 울산 생명의 숲 사무국장은 “숲 가꾸기 등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밀식한 나무들이 세력을 잃고 질병에 걸리거나 대나무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아홉산 숲이 상수원보호구역과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관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 것이 결정적이다. 문씨는 “대나무를 베었다고 검찰에서 조사받은 적도 있다”며 “연간 벨 수 있는 한도가 편백은 2.5그루, 소나무는 0.5그루인 상황에서 숲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환경보전 등 공적인 기능을 하면서도 사유림이란 이유로 최근까지도 숲 가꾸기 등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1999년엔 기장군이 이 숲에 테마 임도를 낸 뒤 산악자전거 동호인과 등산객이 지나치게 많이 몰려들어 산주가 울타리를 쳐 임도를 폐쇄하는 등 지방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현재도 훼손을 우려해 아홉산 숲은 일부 단체를 제외하고 일반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문씨는 “이 숲이 다른 숲을 보전하는 본보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며 “숲의 가치를 인정해 크게 손을 대지 않으면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이뤄지는 수목원 형태로 운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300년 이상 보전돼 왔는데 적어도 앞으로 그 정도는 이 숲이 유지돼야 하지 않겠어요?” 기장/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한겨레 인기기사> ■ 반값 등록금은 부실대학에 세금 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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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스포츠에 미치다
대나무 세력 커져 다른 종들 ‘질식’…지원 없어 관리 어려움
9대 산주 문백섭 대표 “행정·재정 지원받는 수목원 됐으면” 지난 15일 찾은 아홉산 숲은 층층나무 꽃이 흐드러진 아래로 맹종죽과 왕대나무에서 죽순이 한창 돋아나고 있었다. 9대째 산주 문백섭(54·생명공동체 아홉산 숲 대표)씨가 사는 ‘관미헌’이란 편액이 붙은 집 마당엔 1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산주의 할머니가 시집올 때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마당엔 마디가 거북 등껍질 모양인 구갑죽이 심겨 있다. 대나무는 이 산의 상징이지만, 최근엔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성장속도가 빠른 대나무가 세력을 너무 뻗쳐 소나무 등 다른 나무들이 햇빛을 못 보고 죽어가고 있다. 사진은 맹종죽 숲의 모습.
■ 메질 당하지 않은 미끈한 참나무 거목 눈길 서울 남산보다 조금 높은 아홉산(해발 360m) 아래 약 50만㎡에 걸쳐 있는 아홉산 숲에서는 아름드리 거목을 쉽게 만난다. 부산과 울산에 출퇴근할 수 있는 근교에 자리잡았으면서도 여느 도시 주변 야산과 구별되는 모습이다. 울진 금강송 모습을 빼닮은 200~300년생 소나무가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은 사람의 손길 덕분이다. 동행한 정우규 박사(울산 생활과학고 교사·울산 생명의 숲 공동대표)는 “그대로 내버려뒀으면 소나무 대신 참나무나 서어나무가 서 있을 자리”라며 “아홉산 숲은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오랜 기간 가장 모범적으로 가꾼 보육림의 본보기”라고 평가했다. 숲은 땔감 등 사람이 이용하면 좋은 나무부터 사라진다. 좋은 형질을 지닌 나무는 땔감으로도 좋다. 그래서 꼬불꼬불한 소나무 등 열등한 형질의 나무만 남는 것이다. 정 박사는 아홉산 숲에서 열등인자를 솎아내고 토양 유기물층을 꾸준히 유지해 온 결과 임목 육종에 필수적인 훌륭한 유전자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슴 높이 직경이 70㎝에 이르는 대형 상수리나무도 그런 예이다. 인가 근처에서 이렇게 전봇대처럼 곧고 상처 하나 없는 참나무 거목은 보기 힘들다. 대형 참나무를 사찰 주변에서 볼 수 있지만 예외 없이 도토리를 얻기 위해 메로 친 부위가 감염돼 혹이 나와 있다. 아홉산 숲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군락 외에도 편백나무, 삼나무, 맹종죽, 왕대, 서어나무가 무리지어 자란다. 정 박사가 2005년 발표한 정밀조사에서는 주왕산 국립공원과 비슷한 529종의 식물이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1950년대에 이미 우거진 숲을 관리하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임도 위로 대나무와 히말라야시더 등 거목이 터널을 이뤄 숲길을 걸으며 생태체험을 하기에 제격이다.
활짝 핀 층층나무 꽃.
■ 대나무 수요 끊겨 숲 관리비 조달 막막 남평 문씨 일파가 미동마을에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은 400여년 전, 이들은 뒷산을 정성껏 가꾸고 활용했고 벌채를 하지 않고 이용하는 전통이 대대로 이어져 오늘의 아홉산 숲을 이뤘다. 9대 산주 문백섭 대표는 “어릴 때 숲은 지금보다 덜 울창했고 소나무가 많았으며 수박, 과수, 뽕나무도 길렀다”며 “지난 100년 동안 부친과 조부가 체계적인 조림의 틀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 울창해진 아홉산 숲은 역설적으로 ‘관리 부재’의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 숲을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서 그런 징후가 드러난다. 무엇보다 대나무가 세력을 너무 뻗쳐 소나무 등 다른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다. 성장속도가 빠르고 햇빛 경쟁에서 압도적인 대나무가 땅속줄기를 확장해 나가면 어떤 나무도 견디지 못한다. 과거엔 김발 재료 등 해마다 대나무를 수확해 얻은 수확으로 숲을 관리했지만 요즘엔 “정월 대보름 행사 때 달집 만드느라 몇 대 나가는 게 수요의 전부”이다. 숲에서 나오는 소득은 거의 없지만 해마다 최소한 수천만원이 유지관리에 들어간다. 윤석 울산 생명의 숲 사무국장은 “숲 가꾸기 등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밀식한 나무들이 세력을 잃고 질병에 걸리거나 대나무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아홉산 숲이 상수원보호구역과 그린벨트로 묶이면서 관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 것이 결정적이다. 문씨는 “대나무를 베었다고 검찰에서 조사받은 적도 있다”며 “연간 벨 수 있는 한도가 편백은 2.5그루, 소나무는 0.5그루인 상황에서 숲 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환경보전 등 공적인 기능을 하면서도 사유림이란 이유로 최근까지도 숲 가꾸기 등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1999년엔 기장군이 이 숲에 테마 임도를 낸 뒤 산악자전거 동호인과 등산객이 지나치게 많이 몰려들어 산주가 울타리를 쳐 임도를 폐쇄하는 등 지방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현재도 훼손을 우려해 아홉산 숲은 일부 단체를 제외하고 일반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문씨는 “이 숲이 다른 숲을 보전하는 본보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며 “숲의 가치를 인정해 크게 손을 대지 않으면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이뤄지는 수목원 형태로 운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300년 이상 보전돼 왔는데 적어도 앞으로 그 정도는 이 숲이 유지돼야 하지 않겠어요?” 기장/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한겨레 인기기사> ■ 반값 등록금은 부실대학에 세금 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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