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베이커리
장애인 대안일터 ‘날개 베이커리’ 개업이야기
건강빵 날아라~ 일자리 부풀게~
건강빵 날아라~ 일자리 부풀게~
[생활·건강 섹션] 36.5˚
동네 사람들만 드문드문 다니는 좁은 골목에 빵냄새가 가득하다. 하모니카 소리도 흘러나온다. 빵냄새를 솔솔 풍기는 곳을 따라가보니 빵집 간판을 단 가게 안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여럿 눈에 띈다. 걸음이 자유롭지 못해 부축을 받는 이도 보인다. “‘빵집 한다, 한다’ 하더니 오늘 개업하네!” “사람들 많이 왔네. 우리도 좀 팔아줘야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한다는데 ….” 이 동네에 사는 임순희(58)씨와 장애자(54)씨가 등산복 차림으로 빵집 앞에서 “빵 많이 팔았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네며 서 있다.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하모니카 연주를 듣고 있고, 밖에서는 축하객들이 환하게 웃는 낯으로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빵집 안에 들어가지 않고 문 곁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고 선 아주머니가 눈에 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었다. 이 빵집 직원인 양병철(27)씨의 어머니 윤희옥(58)씨다. 윤씨에게 이날은 정신지체장애 3급인 아들이 정식으로 첫 직장을 얻은 날이다. “저기 키 큰 애가 우리 아들입니다. 어제 2시간도 못 자고 일어나서 나가는 모습을 보니까 빵집이 제발 잘돼서 매일 아침 저렇게 신나게 출근을 했으면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윤씨는 아들이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의 대안일터’를 내건 빵집에 취직이 된 게 고맙다. “대기업에 들어간 거 못잖게 좋다”고 했다. 그는 양복을 차려입고 바쁘게 움직이는 아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장애인 아들을 키우기에 녹록지 않은 사회에서 30년 가까이 아들 뒷바라지를 해 온 어머니는 잔칫날 주인공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대신 문밖에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아울러 70여명이 이날 빵집을 가득 채웠다.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 신용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이 축하 인사를 했다. 이지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씨가 노수환(서울풍물굿회 대표)씨의 반주에 맞춰 ‘복빌이 타령’으로 복을 불러들였다. 중학생 구동훈군은 하모니카로 ‘아빠의 청춘’을 맛깔스럽게 불어 흥을 돋운다. 지난 10일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골목에 문을 연 ‘날개 베이커리’ 풍경이다.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안일터를 준비해 온 ‘큰날개’가 드디어 날갯짓을 시작했다. ‘큰날개’ 사무실을 개조하고 모자란 돈은 넉넉한 인심으로 메웠지요. 화려한 빵은 없지만 내 몸을, 이 세상을 살리는 빵을 팝니다. 입소문 좀 팍팍 내주세요, 일자리 빵빵 찍어낼테니…
‘날개 베이커리’에는 사장이 따로 없다. 다섯 명 직원이 모두 종업원이고 주인이다. 사회적 기업이 그렇듯 빵을 많이 팔면 사장이 돈을 버는 대신 일자리가 더 생긴다. 월급은 스스로 정했다. 첫달 월급은 60만원. 그 가운데 절반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빵집 밑천에 보태기로 했다.
일도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각자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하나씩 맡았다. 빵은 김미영(26·사회복지사)씨가 굽고, 양병철(27)씨가 도와주기로 했다. 영업은 레스토랑을 운영해 본 적이 있는 서광호(33)씨가 하기로 했다. 다리가 좀 불편하지만 “거뜬히 해 낼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조재범(31)씨는 휠체어에 앉아서 하기에 무리가 없는 회계를 책임진다. 빵집 운영은 박정자(44) 큰날개 대표 몫이다.
여느 빵집처럼 가게 인테리어가 화려하지도 못하고, 빵 종류도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다양하지 않다. 유행하는 화려한 빵을 만드는 기술도 없지만, 골목 안에 들어앉은 빵집이라 그런 제품으로 손님의 발길을 끌기도 어렵다. 그래서 ‘정직하게 만든 건강한 빵’을 ‘주문생산’하는 쪽으로 영업 전략을 세웠다.
“빵은 부드러운 것보다 딱딱한 게 몸에 좋아요. 이스트를 적게 쓰고, 가장 좋은 재료로 빵을 만들겁니다.”
김미영씨는 건강한 빵을 만들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여섯달 넘게 유명 호텔 베이커 출신 독일인 미샤 리히터로부터 기술을 배웠다. 이태원에 있는 레스토랑 주인 정영미(44)씨는 기술을 가르쳐주면서 월급도 줬다. 적잖은 후원금을 내놓더니 빵집을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게 식탁이며 의자, 쟁반, 컵까지 선뜻 내놨다.
지난해 큰날개는 대안일터 마련을 위해 후원금을 모으고 후원 약정을 받았다. 그런데 막상 빵집을 열 준비를 시작하자 약속한 돈은 충분히 모이지 않고, 들어갈 돈은 예상보다 많았다. 빵집 문을 열 수 있었던 건 정씨와 같은 이들의 넉넉한 인심이 빵을 부풀리는 ‘파우더’ 같은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15평 남짓한 큰날개 사무실을 털어 빵공장으로 개조하고, 장애인들이 일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화장실을 고치는 큰 공사를 했다. 박정자 대표의 말을 따면 “남들 눈에는 초라하지만 우리에게는 대궐 같은 공간”은 그렇게 태어났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으로부터 설비 지원을 받아 중고 오븐을 들여놨다. 갖가지 빵틀은 오븐을 사면서 덤으로 얻었다. 공사 대금을 치르고 빵 재료를 사는 등 부족한 돈은 알음알음으로 대안일터를 응원하는 이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메웠다.
‘주문생산’을 내걸고 개업은 했지만 아직 받아둔 주문은 없다. 우선 동네 관공서나 어린이집, 동네 모임을 찾아다니며 건강빵 홍보부터 해야 한다. 빵은 주문하는 대로 친절하게 만들어 준다는 게 원칙이다. 어린이들이 먹기 좋게 빵을 절반씩 잘라 포장해 주고, 어르신들의 입맛에 맞춘 빵도 만들 생각이다. 특별한 날 케이크를 주문하면 원하는 이에게 배달해 주는 서비스도 계획하고 있다. 서광호씨는 “근처 회사를 찾아다니며 직원들의 기념일날 케이크를 배달해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볼 생각”이라며 “정직하게 만들어서 바로 배달하니까 입소문만 나면 인기를 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날개베이커리는 건강빵을 만들어 북에 있는 노동자들과 나눌 꿈도 꾸고 있다. 큰날개 후원기업인 재영솔루텍의 개성공단 직원들에게 빵의 참맛을 보여줄 계획도 한다. 서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빵집 직원들에게는 같은 꿈이 있다. 빵을 많이 팔아 10명이든 20명이든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고 싶은 욕심이다. 그러면서도 빵을 많이 못팔아도 괜찮단다. 온 동네에 빵 냄새를 폴폴 풍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글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동네 사람들만 드문드문 다니는 좁은 골목에 빵냄새가 가득하다. 하모니카 소리도 흘러나온다. 빵냄새를 솔솔 풍기는 곳을 따라가보니 빵집 간판을 단 가게 안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여럿 눈에 띈다. 걸음이 자유롭지 못해 부축을 받는 이도 보인다. “‘빵집 한다, 한다’ 하더니 오늘 개업하네!” “사람들 많이 왔네. 우리도 좀 팔아줘야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한다는데 ….” 이 동네에 사는 임순희(58)씨와 장애자(54)씨가 등산복 차림으로 빵집 앞에서 “빵 많이 팔았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네며 서 있다.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하모니카 연주를 듣고 있고, 밖에서는 축하객들이 환하게 웃는 낯으로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빵집 안에 들어가지 않고 문 곁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고 선 아주머니가 눈에 띈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입었다. 이 빵집 직원인 양병철(27)씨의 어머니 윤희옥(58)씨다. 윤씨에게 이날은 정신지체장애 3급인 아들이 정식으로 첫 직장을 얻은 날이다. “저기 키 큰 애가 우리 아들입니다. 어제 2시간도 못 자고 일어나서 나가는 모습을 보니까 빵집이 제발 잘돼서 매일 아침 저렇게 신나게 출근을 했으면 바랄 게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윤씨는 아들이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의 대안일터’를 내건 빵집에 취직이 된 게 고맙다. “대기업에 들어간 거 못잖게 좋다”고 했다. 그는 양복을 차려입고 바쁘게 움직이는 아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장애인 아들을 키우기에 녹록지 않은 사회에서 30년 가까이 아들 뒷바라지를 해 온 어머니는 잔칫날 주인공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대신 문밖에 아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섰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아울러 70여명이 이날 빵집을 가득 채웠다.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현애자 민주노동당 의원, 신용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이 축하 인사를 했다. 이지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씨가 노수환(서울풍물굿회 대표)씨의 반주에 맞춰 ‘복빌이 타령’으로 복을 불러들였다. 중학생 구동훈군은 하모니카로 ‘아빠의 청춘’을 맛깔스럽게 불어 흥을 돋운다. 지난 10일 서울시 용산구 효창동 골목에 문을 연 ‘날개 베이커리’ 풍경이다.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안일터를 준비해 온 ‘큰날개’가 드디어 날갯짓을 시작했다. ‘큰날개’ 사무실을 개조하고 모자란 돈은 넉넉한 인심으로 메웠지요. 화려한 빵은 없지만 내 몸을, 이 세상을 살리는 빵을 팝니다. 입소문 좀 팍팍 내주세요, 일자리 빵빵 찍어낼테니…
날개 베이커리 개업식을 찾은 이들이 간판을 감싸고 있던 흰 천을 걷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날개 베이커리가 들어서 환해진 골목길에 축하객들과 마을 주민들이 둘러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주문생산’을 내걸고 개업은 했지만 아직 받아둔 주문은 없다. 우선 동네 관공서나 어린이집, 동네 모임을 찾아다니며 건강빵 홍보부터 해야 한다. 빵은 주문하는 대로 친절하게 만들어 준다는 게 원칙이다. 어린이들이 먹기 좋게 빵을 절반씩 잘라 포장해 주고, 어르신들의 입맛에 맞춘 빵도 만들 생각이다. 특별한 날 케이크를 주문하면 원하는 이에게 배달해 주는 서비스도 계획하고 있다. 서광호씨는 “근처 회사를 찾아다니며 직원들의 기념일날 케이크를 배달해주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 볼 생각”이라며 “정직하게 만들어서 바로 배달하니까 입소문만 나면 인기를 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날개베이커리는 건강빵을 만들어 북에 있는 노동자들과 나눌 꿈도 꾸고 있다. 큰날개 후원기업인 재영솔루텍의 개성공단 직원들에게 빵의 참맛을 보여줄 계획도 한다. 서로 하는 일은 다르지만 빵집 직원들에게는 같은 꿈이 있다. 빵을 많이 팔아 10명이든 20명이든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고 싶은 욕심이다. 그러면서도 빵을 많이 못팔아도 괜찮단다. 온 동네에 빵 냄새를 폴폴 풍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글 박주희 기자 hope@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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