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 자라 어른이 돼서도 피터팬을 기억하는 이유는 꿈과 희망을 주는 이상향 속 피터팬의 판타지 때문이라기보다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맛본 후크 선장 모습에 담긴 현실의 그림자 때문이 아닐까. <한겨레> 자료사진
김용석의 고전으로 철학하기
제임스 배리의 <피터 팬>
봄이 성큼 다가왔다. 봄맞이 대청소(Spring Cleaning) 때면 요정이 진짜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아이들의 영혼을 데리고 저 멀리 네버랜드로 날아가는 아이가 있다.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 피터 팬(Peter Pan)이 바로 그다. 제임스 배리의 <피터 팬>은 1904년에 연극으로 초연되었고, 1906년과 1911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 뒤로 피터 팬 이야기는 그의 신기한 이름처럼(‘피터’라는 흔한 이름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양신 ‘팬’을 합친) ‘동신(童神)의 신화’가 되었다.
그러면 아이이자 신의 속성을 지닌 존재 피터 팬은 어떤 인물이며, 그의 삶은 어떠한가? 우선 피터는 이상향에 살고 있다. 일상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땅’(Never-land) 네버랜드는 ‘없는 장소’(u-topos)라는 유토피아(utopia)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곳에서 피터는 행복하다. 어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제 멋대로 살기 때문이다.
피터 팬에 투영된 이런 공간적 이상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적 이상성이다. 피터는 시간을 부정하는 삶을 산다. 그는 자라거나 늙지 않는다. 그는 ‘없는 시간’(u-chronos)의 삶, 즉 유크로니아(uchronia)의 삶을 산다. 따라서 피터는 지난 시간의 일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추억의 아픔이 없다. 심지어 그를 분신처럼 따라다녔던 요정 팅커 벨의 소식을 묻자, “요정은 수없이 많은 걸, 아마 죽었겠지 뭐”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한다. 사람들이 피터를 동경하는 것은 그가 시간의 지배로부터 오만하게 자유롭기 때문이다.
영원한 어린아이 피터는 욕망의 신화
냉혹한 후크는 현실의 반영
이상과 현실 교차하는
청소년과 어른 모두의 고전 그러나 배리의 작품이 피터 팬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판타지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에 못지 않게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 작품이 철학적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의 화두들이 풍부한 동화가 된 것이다.
배리는 특히 어른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 현실은 피터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 후크(Hook) 선장에 투영되어 있다. 후크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의 전형이다. 그는 현실을 잘 안다. 무엇이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냉혹하게 무시해 버리는 피터와 달리, 후크는 별의별 일에 다 신경을 쓰며 산다. 그는 매우 신중하며 때론 누구보다도 뜨거운 가슴을 가졌다는 걸 보여준다. 그는 고독을 느끼며 삶을 고뇌한다. 갈고리 달린 팔뚝이 주는 공포스런 해적의 모습 이면에는 유명한 공립학교에서 교육받은 교양인 후크의 모습이 있다. 그는 꽃과 감미로운 음악을 사랑하며 여인 앞에서 예의를 갖출 줄 안다. 그는 인정이 많아서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승리하는 피터와 달리, 후크는 수없는 좌절과 패배를 맛본다. 배리의 <피터 팬>은 청소년과 어른이 서로 교차하는 시각으로 읽을 수 있는 고전이다. 초등학생에겐 좀 무리겠지만, 사춘기에 있는 중고등학생들이라면 현실의 은유인 후크에 초점을 맞춰서 또 다른 독서의 깊이를 맛볼 수 있을 것이며, 어른들은 반대로 피터에 초점을 맞춰 읽음으로써 아이들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터 팬의 창조자인 배리는 어느 편에 자신을 투영해 놓았을까? 배리는 피터만큼이나 ‘자라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작위를 받아 배리 경(卿)이 되었어도 아이들과 놀기를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별로 자라지 않은 키(150㎝ 남짓)와는 달리 그는 사회 속에서 어른의 속성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으며, 자기와 같이 놀던 이웃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어쩌면 그는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인이었는지 모른다. 경계인의 이중성을 그는 ‘마음’과 ‘모습’이라는 분리된 선택으로 작품 속에 투영해 놓았다. 그의 마음은 환상 속 피터에 실어 놓았고, 그의 이름은 처연한 현실의 인물에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배리는 육필 작가들에게 자주 있는 서경(書痙)을 심하게 앓아 손목을 잘라낼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글을 쓸 때도 많았다. 피터에게 잘린 오른손 대신 갈고리를 한 후크 선장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의 이름은 제임스다.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래서 너무도 인간적인 제임스 후크 말이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냉혹한 후크는 현실의 반영
이상과 현실 교차하는
청소년과 어른 모두의 고전 그러나 배리의 작품이 피터 팬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판타지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에 못지 않게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 작품이 철학적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의 화두들이 풍부한 동화가 된 것이다.
배리는 특히 어른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 현실은 피터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 후크(Hook) 선장에 투영되어 있다. 후크는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의 전형이다. 그는 현실을 잘 안다. 무엇이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냉혹하게 무시해 버리는 피터와 달리, 후크는 별의별 일에 다 신경을 쓰며 산다. 그는 매우 신중하며 때론 누구보다도 뜨거운 가슴을 가졌다는 걸 보여준다. 그는 고독을 느끼며 삶을 고뇌한다. 갈고리 달린 팔뚝이 주는 공포스런 해적의 모습 이면에는 유명한 공립학교에서 교육받은 교양인 후크의 모습이 있다. 그는 꽃과 감미로운 음악을 사랑하며 여인 앞에서 예의를 갖출 줄 안다. 그는 인정이 많아서 일을 그르치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승리하는 피터와 달리, 후크는 수없는 좌절과 패배를 맛본다. 배리의 <피터 팬>은 청소년과 어른이 서로 교차하는 시각으로 읽을 수 있는 고전이다. 초등학생에겐 좀 무리겠지만, 사춘기에 있는 중고등학생들이라면 현실의 은유인 후크에 초점을 맞춰서 또 다른 독서의 깊이를 맛볼 수 있을 것이며, 어른들은 반대로 피터에 초점을 맞춰 읽음으로써 아이들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피터 팬의 창조자인 배리는 어느 편에 자신을 투영해 놓았을까? 배리는 피터만큼이나 ‘자라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작위를 받아 배리 경(卿)이 되었어도 아이들과 놀기를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별로 자라지 않은 키(150㎝ 남짓)와는 달리 그는 사회 속에서 어른의 속성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결혼을 하고 이혼을 했으며, 자기와 같이 놀던 이웃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어쩌면 그는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인이었는지 모른다. 경계인의 이중성을 그는 ‘마음’과 ‘모습’이라는 분리된 선택으로 작품 속에 투영해 놓았다. 그의 마음은 환상 속 피터에 실어 놓았고, 그의 이름은 처연한 현실의 인물에 남겨 두었기 때문이다. 제임스 배리는 육필 작가들에게 자주 있는 서경(書痙)을 심하게 앓아 손목을 잘라낼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글을 쓸 때도 많았다. 피터에게 잘린 오른손 대신 갈고리를 한 후크 선장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그의 이름은 제임스다. 현실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래서 너무도 인간적인 제임스 후크 말이다.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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