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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현수야, 넌 내 마음 아니?

등록 2006-05-07 20:49수정 2006-05-09 13:45

두근두근 내마음 몰라주는 친구 심각하다가도 때론 귀여운 요즘 아이들의 풋풋한 '연애'
책꽂이

현수야, 넌 내 마음 아니?

제 이름은 경지예요. 초등학교 3학년이지요. 별명은 ‘까만 머리 앤’. <빨간 머리 앤> 주인공처럼 똑똑하고 착하고 정의감에 넘치고 야무져서 언니가 붙여줬죠. 그런데 요즘 전 마음이 아파요.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예요. 현수라는 애인데, 제 짝궁이예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다들 이성 친구가 있다고 해요. 그리고 대담하게 애정 행각을 벌인다는 말도 들었어요. 손을 잡고 뽀뽀도 한대요. 양쪽 집안에 서로 소개하고 공개적으로 데이트를 즐기는 아이들도 있대요. 하지만 전 그건 아니예요. 설레고 두근거릴 뿐이죠. 속앓이를 하느라 마음이 아픈 것도 처음으로 알았어요.

며칠 있으면 화이트데이예요. 발렌타인데이 때 초콜릿을 주지 못한 걸 핑계삼아 이번에는 사탕을 주고 싶어요. 문제는 돈이죠. 멋진 사탕바구니를 주고 싶어 가게에 가봤더니 눈이 뒤집혀요. 5만원~컥! 저금통엔 달랑 4530원밖에 없는데…. 엄마한테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그것도 물건너갔어요. 결국 난 현수한테 사탕바구니는커녕 사탕 한 알도 주지 못했어요. 물론 현수도 나한테 아무 것도 주지 않았지요.

낙지, 말미잘, 똥개, 멧돼지, 문어, 파리, 바퀴벌레, 늙은 호박, 수세미, 정말 나쁜 현수예요. 내가 좋아하는 마음은 모른다쳐도 그래도 짝꿍인데 정말 너무 해요. 그런데 현수가 갑자기 귀엣말을 걸어왔어요. 사탕을 못줘서 미안하다네요. 그리고는 “무슨 선물을 좋아하니?”고 묻기까지 했어요. 가슴이 콩닥콩닥 뜁니다.

오락가락한다고요?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좋아하는 마음이 저를 이렇게 만들어요. 엄마 말따나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게 여자 마음인가 봐요. 아니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감정이 생길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제 마음이 앞으로도 계속 요동칠 것 같다고요? 잘 보셨어요. 현수도 나에 대한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꿈에 나타난 달팽이 예언까지 믿어보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저를 다시 강타해요.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대요. 눈앞이 새하얘지고 귀가 멍해지고 입술이 파르르르 떨렸어요. 세상이 모두 다 무너져 내리는 기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 거예요.

알퐁세 도데의 <별>에서 주인공은 아가씨와 행복한 하루밤을 보내고,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소년은 소녀를 업고 개울을 건너며 애틋한 사랑을 자랑하는데 내겐 정말 사랑이 어려운 걸까요? 하지만 몸은 멀어져도 마음은 남는 게 아닐까요? 설사 현수와 영영 만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저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그리고 저도 그 때의 좋아했던 감정을 평생토록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행히 현수는 떠나기 전 제게 직접 선물을 건네줬어요. 형광등 불빛에 눈부시도록 빤짝거리는 파란 포장지를 벗겨내며 내는 소리들이 마치 나의 아름다운 미래를 축복해주는 작은 합창단의 노래처럼 방 안에 천천히 울려 퍼졌어요. <현수야, 넌 내 마음 아니?> 노경실 글, 오은영 그림. 아이앤북/8000원.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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