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한 권의 책 / 흙으로 만든 귀
우리는 일본을 흔히 ‘이웃나라’라고 말한다. 이웃이란 어깨를 겯고 서로 도와야 하는 벗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곱지 않은 시선이 된다. 이유는 그들이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넘봐 왔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우리 문화와 얼을 빼앗으려 했고, 지금까지도 독도를 비롯한 영토와 영해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또 멀리 400여 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켜 소박하게 살고 있던 민초들의 삶을 여지없이 앗아가고 말았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어린아이들에게 전달할 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교과서처럼 전달한다면 어린이들은 그저 아득히 먼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그 역사적 사실을 완성도 높은 동화에 담아낸다면 받아들이는 느낌은 사뭇 다를 것이다.
동화작가 이규희는 요즘 들어 그 문제에 천착한다.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풀어 쓴 <두 할머니의 비밀>과, 일본 교토에 있는 ‘귀무덤’을 소재로 한 <흙으로 만든 귀>(바우솔)가 그것이다.
“귀를 찾아달라”는 소리따라
아빠와 일본 건너간 수영이
조상들 고통과 역사 알게돼
이 동화는 임진왜란 당시 왜구들이 전공을 인정받기 위해 조선인의 시체에서 귀를 잘라 본국으로 가져간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 동화로,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실을 저학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문학적 장치가 돋보인다.
초등학교 3학년인 주인공 수영이는 어느 날 귀울음(이명)을 듣는다. 귓병인 줄 알고 병원에 가고, 한약도 먹지만 이명은 점점 심해진다. 수영은 점점 또렷해지는 소리를 듣는데, 바로 “귀를 찾아 달라”는 말이었다. 결국 수영은 아빠와 함께 종갓집에 가서 임진왜란 당시 왜구와 싸웠던 김 진사와 하인 김개똥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아빠와 함께 일본으로 간다. 일본 교토에 있는 귀무덤 앞에서 자기 또래의 여자아이 시내를 만나는데, 시내의 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온 사람이었다. 낯선 일본에 터를 잡고 살아온 시내의 가족은 또 다른 전쟁의 희생자들인 셈이다. 서투나마 우리말을 하고, 귀무덤을 정성껏 돌보는 시내와 “내 귀를 찾아 달라”는 개똥이 할아버지의 속삭임을 듣게 된 수영은 단박에 친구가 된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현대를 아우르는, 수백 년 동안 되풀이된 아픈 역사를 한 맥으로 짚어볼 수 있는 장치가 완성된 것이다. 또한 이명을 듣는 수영에게 귀신이 씌었다는 점쟁이의 말처럼, 어른의 판단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작가는 참으로 기발한, 그야말로 어린이다운 발상으로 결말을 맺는다.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여 밤마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같은 반 친구 ‘유리’를 살짝 내세워, 간절히 원하는 영혼의 속삭임을 듣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은 귀무덤을 삼대 째 돌보고 있는 일본인 시미즈 영감이다. 시미즈 영감은 조상이 지은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무덤의 풀도 뽑고, 청소도 하고, 문을 열고 닫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일본인이 우리와 일본과 정다운 이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아직도 어느 정신 나간 일본 정치인은 “종군위안부는 그들의 부모가 생계를 위해 팔아버린 딸들”이라는 망언을 하고 있으니….
원유순/동화 작가 darium@hanmail.net
흙으로 만든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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