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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다름’은 ‘틀림’인가

등록 2007-05-06 15:32

박용성 교사의 인문 사회 비타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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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가치의 다양성이 허용되고 존중되는 다원주의 사회이다. 원래 다원주의라는 말은, 대중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권력 엘리트가 사회의 권력을 독점한다고 보는 엘리트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다원주의에 의하면, 사회는 여러 이익 집단이나 결사체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기보다는 다양한 집단들 간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민주적으로 운영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다원주의가 생활의 곳곳에 스며들어 다원화라는 특징을 만들고 있다. ― <도덕>(교육인적자원부) 15쪽

시민 사회는 서로 다른 가치와 욕망의 공존을 상호간에 인정하기 때문에 관용의 원칙에 입각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시민 사회에서는 비록 타인의 가치와 욕망이 나의 것과 달라 서로 갈등한다 하더라도 상호간에 존중한다. 나의 가치와 욕망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그것도 동등하게 중요하고 타인의 것을 존중할 때에 나의 것도 존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민 사회에서는 서로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 <시민 윤리>(교육인적자원부) 18쪽

논제 찾아 생각하기

지난 세기까지 존속되어 온 전통 사회는 실재의 다원성을 용납하지 않는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사회였지. 거기에서는 하나의 지배적인 세계관과 인생관, 그리고 가치관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였어. 하지만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달로 말미암아 일일 생활권으로 변모한 현대 세계에서, 어느 누구도 외래 문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고도(孤島)와 같은 폐쇄된 사회에서 오래 머물러 있을 수는 없게 되었어.

그런데 지구가 한 마을처럼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이중적인 체험을 하게 되었지. 그 하나는 세계가 ‘하나’가 되고 있다는 체험이야. 우리는 안방에서도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사상 등 수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이를 통해 우리는 먼 나라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어, 마치 한 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 이와 함께 우리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사상이 얼마나 ‘여럿’인지도 동시에 알게 되었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다양하고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독특한지를 실감하게 되었다는 말이지. 이처럼 ‘지구촌’이라는 말에는 대립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는 ‘하나’와 ‘여럿’이란 개념이 함께 들어 있어. 지구가 ‘하나’의 마을처럼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나말고도 ‘여럿’이 더불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닫게 된 거야. 이러한 생각이 바로 다원주의야.

오늘날 지구상의 어떠한 개별 문화권에도 모든 구성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상적 목표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아. 단일하고 폐쇄적인 사회 질서는 급격하게 해체되고 있으며, 바로 그 자리에 고유한 이해 관계와 확신, 그리고 행동 양식을 지닌 문화의 다원주의와 정치의 다원주의가 들어서고 있어. 이러한 의미에서 다원주의는 과거의 정적이고 폐쇄적인 사회 질서를 탈피해 역동적이고 개방적인 질서를 이룩한 현대 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우선, 문화적 다원주의는 하나의 사회 안에 둘 이상의 문화의 존재를 포함하거나, 하나의 주도적인 문화 안에 둘 이상의 하위 문화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해. 문화적 다원주의의 중심 문제는, 서로 다른 문화 집단이 그들의 특유한 생활 양식을 보전할 수 있는 권리에 있지. 오늘날 하나의 사회는 문화적으로 반드시 단일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으며, 서로 문화의 상이성을 허용하고 격려해야 한다는 입장이 보편화되고 있어.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문화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거야. 이처럼 문화적 다원주의는, 모든 문화는 각자 독특하고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지.

이에 비해서, 정치적 다원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녀. 문화는 이해 관계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비교적 드문 ‘사적 영역’의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면 그만인데, 정치는 이와는 달리 ‘공적 영역’인 측면이 강해 단일한 정치적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기 때문에 충돌의 가능성이 훨씬 높아. 곧,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가지는 개인이나 사회 집단의 다수성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를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갈등의 요인이기도 해.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정치적 집단에, 제도화된 결정 과정에 이르기 위해 기본 합의를 요구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어.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다원주의는 두 가지 전제에 의해 현실적으로 가능해져. 하나는, 모든 정치적 집단이 공적 토론과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거야. 다른 하나는, 공동선이 동등한 여러 집단의 이해 관계의 조정을 통하여 실현되어야 한다는 거고.

 박용성 여수여고 교사<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박용성 여수여고 교사<교과서와 함께 구술·논술 뛰어넘기> 저자
지금까지 사상이나 문화, 예술 등 인간 역사의 중심은 ‘나’였어. ‘나’의 사상과 문화가 유일한 기준이었고, ‘나’가 예술적 아름다움의 유일한 척도였지. 이것만이 전부였어. ‘하나’만 있고 ‘여럿’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어. 역사적으로 볼 때, 절대 권력을 휘두른 중세의 종교 권력과 근대의 정치 권력이 그 정점에 서 있었지. 그러나 눈을 뜨고 보니 ‘여럿’이 실제로 존재해 왔고, 그것들이 유일한 것으로 믿어 왔던 ‘하나’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에워싸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어. 드디어 유아독존(唯我獨尊)의 시대가 끝난 거지. 이제 세계의 중심은 ‘나’가 아니야. 따라서 우리는 ‘또 다른 나’가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해. “나는 실재의 여러 극(極)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라는 폴 니터의 말은 그래서 의미가 깊어. 세계의 중심은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여럿이야. 이렇게 하나가 아닌 여럿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다원주의이자 민주주의의 요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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