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성 교사의 인문 사회 비타민 /
법은반드시준수되어야하는가
교과서 훑어보기
관습이나 도덕 및 종교 규범에 비하여, 법은 그 내용과 집행 및 제재의 방법을 명확하게 제도화시켜 놓은 규범이다. 특히 법은 국가에 의해 강제되며, 주로 인간의 외적인 행위를 규율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회 규범은 사회가 분화함에 따라 단순하던 내용이 복잡해졌으며, 사적인 제재에서 공적인 제재의 방향으로 변천해 왔다. 특히, 인구가 급증함으로써 사회가 복잡해지고 국가의 역할이 확대된 현대 사회에서는, 강제성을 지닌 법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법과 사회>(교학사) 9~10쪽
준법 정신이 필수적이다. 국민의 약속으로 성립된 법을 국민 스스로가 지키지 않는 것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존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준법 정신이 모든 법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정법에는 그릇된 법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악법으로 규정되어 국민의 저항에 의해 폐지 또는 개정되었거나, 그렇게 요구되고 있는 법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법의 준수와 함께 그릇된 법을 찾아내고, 이의 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올바른 법의식의 표현이다. ―<법과 사회>(교학사) 185쪽 논제 찾아 생각하기 “천사가 행진하는 데도 질서가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이 사는 사회는 일정한 규칙과 질서가 있어야 해. 이러한 규칙이나 질서는 우리 생활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해 주는 규범이며, 법은 이러한 규범 중의 하나로서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 강제적으로 작용하지. 특히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이해의 충돌과 분쟁의 해결을 위해 법이 수행하는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어. 자유주의적 사고에서 법은 효과적으로 구속력 있는 대응을 함으로써 범죄 기도를 무력화시키는 ‘사실성’의 측면을 강조하지. 반면 민주주의적 사고에서는 국민의 의지가 발현된 법의 ‘정당성’의 측면을 강조해. 사실, 이것은 법이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두 측면이야. 법은 실현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실적이어야 하며, 안정되기 위해서는 정당해야 하지. 독재 시대의 법은 강한 처벌로 인해 사실적이었으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해 무너졌고, 거꾸로 취지는 정당하더라도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지키지 않는 편이 더 유리한 경우 법은 무력해지지. 그렇다면 사실성과 정당성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 기관이 실정법에 따라 요구하는 사실성과 시민의 이성적 상식이 요구하는 정당성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말이야. 이 때 바로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의 문제가 제기되지. 이것은 실정법이 시민에게 정당성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해. 그래서 시민 불복종을 행하는 이는 ‘사실적이지만 정당하지 않은’ 규범을 고의로 위반함으로써 시민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사실성을 정당성 쪽으로 이끌고자 하지. 시민 불복종의 개념은 헨리 데이빗 소로의 <시민 불복종>에서 시작되었으며 1950년대부터 미국의 인종 차별 반대, 월남전 반대, 그리고 핵무장 반대에 시민 불복종이 사용되면서 정치 사상의 주제로 본격적으로 떠오르게 되었어. 오늘날 시민 불복종의 이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 낸 롤스에 따르면, 시민 불복종은 “보통 법률이나 정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공적이며 비폭력적인, 양심에 의해 결정되었지만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말해. 하지만 시민 불복종은 그 자체로 완벽하게 규정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야. 법규범에도 그리고 불복종자에게도 오류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 따라서 시민 불복종을 행하려는 사람은 우선 ‘법에 대한 복종 의무를 각 개인의 가치관으로만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해야 해. 그런데도 어떤 법률이 보편적 개인의 기본권을 해치는 경우라고 판단되면, 법 체계 안에서 그 개선 방법을 끈질기게 찾아보아야 하고, 그런데도 도저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해야 해. 하지만 엄연히 그러한 행위는 ‘불법’이므로 자신의 행위에 법적 책임을 감수해야 하지. 실정법을 어김으로써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모범을 세우고자 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은 이처럼 철저히 도덕적 우위에 서야 하거든. 민주주의는 법률에 따라 통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법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 돼. 소크라테스를 빙자해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지만―은 언제나 지배자이거나, 악법을 통해 얻은 이득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자들이야. ‘악법’이라는 말은 이미 그 법이 정당하지 못한 규범임을 내포하고 있으며, ‘법이다’라는 말을 통해 부정한 규범을 강제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어. 따라서 악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아야 하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시민 불복종은 오늘날의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도덕적 노력이지.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법 준수’라는 교육은 있지만 ‘법 위반’이라는 교육은 없어. 법 준수를 통한 사회 질서 확립과 부당한 법질서에 대항하는 불복종은 민주주의 운영에 모두 필요한 요소들인데도 말이야. 독일은 군대에서조차 반인륜적 범죄 행위에는 명령에 대해 거부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해. 반인륜적 전쟁 범죄에 대한 자기 통찰로 빚어낸 성과이지.
제2차 세계 대전 후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은 일정한 상황에서는 개인이 자국의 법률을 위반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역사적인 자리였어. 그 이후 시민 불복종의 원리는 국제법에서도 일정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지. 이제 시민 불복종은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야.
<교과서 함께 구술 논술 뛰어넘기> 저자, 여수여고 교사
위 논제와 관련된 기출문제(1997학년도 고려대 정시 논술 문제)는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준법 정신이 필수적이다. 국민의 약속으로 성립된 법을 국민 스스로가 지키지 않는 것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존립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준법 정신이 모든 법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정법에는 그릇된 법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악법으로 규정되어 국민의 저항에 의해 폐지 또는 개정되었거나, 그렇게 요구되고 있는 법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법의 준수와 함께 그릇된 법을 찾아내고, 이의 시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올바른 법의식의 표현이다. ―<법과 사회>(교학사) 185쪽 논제 찾아 생각하기 “천사가 행진하는 데도 질서가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이 사는 사회는 일정한 규칙과 질서가 있어야 해. 이러한 규칙이나 질서는 우리 생활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해 주는 규범이며, 법은 이러한 규범 중의 하나로서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 강제적으로 작용하지. 특히 사회가 점차 복잡해지고 다양해짐에 따라 이해의 충돌과 분쟁의 해결을 위해 법이 수행하는 역할은 더 커질 수밖에 없어. 자유주의적 사고에서 법은 효과적으로 구속력 있는 대응을 함으로써 범죄 기도를 무력화시키는 ‘사실성’의 측면을 강조하지. 반면 민주주의적 사고에서는 국민의 의지가 발현된 법의 ‘정당성’의 측면을 강조해. 사실, 이것은 법이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 두 측면이야. 법은 실현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실적이어야 하며, 안정되기 위해서는 정당해야 하지. 독재 시대의 법은 강한 처벌로 인해 사실적이었으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해 무너졌고, 거꾸로 취지는 정당하더라도 지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지키지 않는 편이 더 유리한 경우 법은 무력해지지. 그렇다면 사실성과 정당성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일어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 기관이 실정법에 따라 요구하는 사실성과 시민의 이성적 상식이 요구하는 정당성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말이야. 이 때 바로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의 문제가 제기되지. 이것은 실정법이 시민에게 정당성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해. 그래서 시민 불복종을 행하는 이는 ‘사실적이지만 정당하지 않은’ 규범을 고의로 위반함으로써 시민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사실성을 정당성 쪽으로 이끌고자 하지. 시민 불복종의 개념은 헨리 데이빗 소로의 <시민 불복종>에서 시작되었으며 1950년대부터 미국의 인종 차별 반대, 월남전 반대, 그리고 핵무장 반대에 시민 불복종이 사용되면서 정치 사상의 주제로 본격적으로 떠오르게 되었어. 오늘날 시민 불복종의 이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 낸 롤스에 따르면, 시민 불복종은 “보통 법률이나 정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공적이며 비폭력적인, 양심에 의해 결정되었지만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말해. 하지만 시민 불복종은 그 자체로 완벽하게 규정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야. 법규범에도 그리고 불복종자에게도 오류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 따라서 시민 불복종을 행하려는 사람은 우선 ‘법에 대한 복종 의무를 각 개인의 가치관으로만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해야 해. 그런데도 어떤 법률이 보편적 개인의 기본권을 해치는 경우라고 판단되면, 법 체계 안에서 그 개선 방법을 끈질기게 찾아보아야 하고, 그런데도 도저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해야 해. 하지만 엄연히 그러한 행위는 ‘불법’이므로 자신의 행위에 법적 책임을 감수해야 하지. 실정법을 어김으로써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모범을 세우고자 하는 시민 불복종 운동은 이처럼 철저히 도덕적 우위에 서야 하거든. 민주주의는 법률에 따라 통치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법률과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 돼. 소크라테스를 빙자해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는 자들―소크라테스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지만―은 언제나 지배자이거나, 악법을 통해 얻은 이득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자들이야. ‘악법’이라는 말은 이미 그 법이 정당하지 못한 규범임을 내포하고 있으며, ‘법이다’라는 말을 통해 부정한 규범을 강제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어. 따라서 악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아야 하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시민 불복종은 오늘날의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도덕적 노력이지.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법 준수’라는 교육은 있지만 ‘법 위반’이라는 교육은 없어. 법 준수를 통한 사회 질서 확립과 부당한 법질서에 대항하는 불복종은 민주주의 운영에 모두 필요한 요소들인데도 말이야. 독일은 군대에서조차 반인륜적 범죄 행위에는 명령에 대해 거부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고 해. 반인륜적 전쟁 범죄에 대한 자기 통찰로 빚어낸 성과이지.
박용성 〈교과서와 함께 구술 논술 뛰어넘기〉저자, 여수여고 교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child/2024/0116/53_17053980971276_2024011650343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00/32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76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80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