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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의자’에 담긴 수많은 상징들

등록 2007-08-05 15:42

태화강국제설치 미술제에 출품된 의자 작품.
태화강국제설치 미술제에 출품된 의자 작품.
권희정 교사의 삶 사유 논술 /

[난이도 = 고등]

“빨리 자리에 앉자!” 수업종이 울리면 교실마다 교사의 목청이 높아진다. 왁자지껄 소란을 뚫고 교사가 던지는 최초의 인사다. 들리지도 않고 앉지도 않은 채 여전히 서서 떠드는 학생들은 교사를 앵무새로 만든다.

“어서, 의자에 앉으랬지!”

학교에서 내 자리는 곧 내 의자다. 의자는 옷 다음으로 내 몸과 가장 밀착된 물건이다. 그리고 가장 오래 내 몸과 접촉하는 가구이다. 우리들의 일상은 거의 의자와 함께 한다. 어릴 적에는 유모차에, 집에서는 소파와 식탁 의자에, 학교에서는 책상 의자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밖에 나가도 마찬가지. 지하철, 식당, 도서관, 극장 등 어느 곳에서건 의자에 앉는다. 내 삶뿐 아니라 세상도 온통 의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의자는 몸을 받쳐주는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 액션 영화에서는 분노를 표현할 때 의자를 집어던지곤 한다. 의자는 격정에 휩싸인 마음을 표현하는 나의 대리물이다. 학급에서 자리를 바꿀 때에도 맘에 들었던 의자를 질질 끌고 가는 경우가 많다. 똑같아 보이지만 내 몸을 아는 의자는 쉽게 버리기가 어렵다.

의자는 사람들의 관계도 결정해 준다. 수업에서 강의식과 토론식은 의자 배열이 달라진다. 원형으로 놓인 의자는 의사소통을 더욱 원활하게 해준다. 인간 관계를 형성할 때도 의자를 내어주는 행위는 상대방을 맞아들이는 뜻이다. 반면 의자를 내어주지 않으면 서로 사귀고 싶지 않다는 공감대 거부의 의사 표현이다.

그래서 의자는 발생하게 될 사건을 미리 조정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그 호수가에서 생활할 때 의자를 세 개만 구비했다고 한다. 하나는 고독을 위해, 하나는 친구를 위해, 다른 하나는 사교를 위한 것이다. 패스트푸드점의 의자는 매우 불편하다. 고객이 오래 앉아 있지 않게 하려는 경영전략 때문이다.

의자는 우리 삶에 차지하는 비중만큼 그 안에 담긴 상징성이 매우 크다. 역사를 보면 의자는 신분과 권력을 표시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신석기 유물로 발굴된 진흙인형에서는 여성들만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정착을 한 후 곡물을 관리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2중 생산자였기에 모권이 강했던 탓이다.

반면, 로마의 가정에서는 정반대의 모습이 펼쳐졌다. 같은 식탁이지만 아버지는 소파에, 어머니는 등받이 의자에, 그리고 자녀들은 걸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권력의 서열과 의자는 정확히 일치했다. 의자에 앉은 자, 의장(chairman)이라는 용어는 의자로부터 나오는 권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의자의 사용은 직업을 가르는 기준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를 보면, 왕족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의자에 앉아 있다. 반면 회계처리와 기록을 담당하는 서기관은 바닥에 앉아 업무를 보았다. 의자가 책상 때문에 생겼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살짝 뒤집어 준다.

그러고 보니 서양 중세의 일반인들은 의자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나무 상자에 앉거나 가대 위에 널빤지를 얹어 식탁을 만드는 식이었다. 이 모습이 ‘상을 차리다(setting the table)’의 어원이라고 한다. 한편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바닥에 몸을 붙이고 앉아서 생활했다. 한국의 온돌, 일본의 다다미, 아랍의 양탄자 방들은 모두 의자를 두지 않는 건물 양식이다.

그러면 의자는 언제부터 이렇게 깊숙이 파고들었을까. 갤런 크런츠의 <의자>를 보면, 미국에서 산업혁명 이후 앉아서 하는 노동이 증가했던 데서 원인을 찾는다. 사무실의 노동자들은 의자에 앉아 작업 환경에 맞게 몸을 길들이며 일을 한다. 꾸준히 앉아 집중적으로 일을 처리할 것! 표준화된 사무실의 풍경들은 민주성 보다는 생산성을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직급의 차이는 의자의 크기와 안락한 등받이의 여부로 구별되었다.

의자의 일반화가 산업혁명과 함께 했던 탓에 의자는 근대화의 상징이 되었다. 구한말 지도층 인사들의 실내를 떠올려 보라. 한옥인데도 소파와 식탁, 책걸상이 화려하다. 그러나 서구화를 동경했던 동양인과는 반대로 서양인들은 신발을 벗고 앉아 있는 동양의 방 문화를 경멸했다. 지금도 유럽인들은 쪼그리고 앉는 화장실 변기를 ‘이탈리아식’이라 부르고, 이탈리아 인들은 ‘터키식’이라 부른다. 근대화는 우리가 앉는 행위에도 가치의 차등을 두었다. 의자에 앉지 않는 문화, 그것은 원시적이며 열등하다는 의미였다.

단순한 의자이지만, 그 안에는 이중 삼중의 암호가 들어 있다. 인도의 간디는 의자에 숨은 제국주의의 칼날을 읽었다. 몸을 낮추어 바닥에 앉아 물레를 돌리는 행위, 그것은 곧 영국식 근대화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반면, 사도신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자리도 의미심장하다.

‘하느님의 오른쪽 자리’, 의자는 성스러운 영혼의 위치와 존재감을 직접적으로 상징한다. 프로이트가 사용한 카우치 소파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의자에 대한 발상 전환으로 새로운 정신분석의 기법을 고안했다. 환자의 자유로운 연상을 이끌어내는 방법, 그것은 의자의 관념을 바꾼 덕분이다.

그러나 다시 교실로 돌아와 보자. 프로이트가 간파했듯 의자는 앉는 사람의 몸을 규제하여 마음을 통제하는 은밀한 훈육주임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조용하라, 움직이지 마라, 집중해라, 공부해라’는 재촉의 소리를 끊임없이 듣는다. 그 모든 행동은 의자에 앉음으로써 가능해진다. 의자는 실용적이어서가 아니라 몸을 길들이는 데 유리했기에 널리 확산된 것이다.

의자에 앉아 꼼짝 말고 하는 공부는 과연 인간적인가. 미국의 인류학자 고든 휴스의 주장처럼 인간의 자세는 무려 1,000가지가 넘는다. 인간의 몸은 본래 움직이도록 창조된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앉고 눕고 서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을 배운다. 중세의 수도사들은 산책을 하면서 경구를 암송했다. 또한 조선의 선비들도 몸을 좌우로 흔들며 소리 내어 책을 읽었다. 의자는 우리가 원하는 인간이 누구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교실 뒤에서 학생들을 바라보라. 책상 밑에서 펼쳐지는 다채로운 ‘다리 떨기’는 리듬도 다양한 한 편의 군무다. ‘엉덩이로 하는 공부’에 맞서는 17세들의 저항 전략, 서글프게도 그대들이 살아있음을 이런 순간에야 느껴본다.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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