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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시간에 지배당하는 자, 시간을 지배하는 자

등록 2007-10-21 15:12

권희정 교사의 삶, 사유, 논술
권희정 교사의 삶, 사유, 논술
권희정 교사의 삶 사유 논술 / [난이도 = 고등]

사각사각, 부스럭…. 고요 속에서 피부만이 감지하는 긴장과 무게가 있다. 지금은 바로 중간고사 기간. “선생님, 몇 분에 끝나요?” 학생들은 시간에 민감하다. 평소 수업때와는 다르게 시간이 더디 가기를 바라는 질문이다. 교실 뒷벽의 시계는 앞 칠판으로 옮겨지고, 학급 달력에도 빨간색 동그라미가 연달아 칠해져 있다. 팽팽하게 당겨진 스프링처럼 시험기간은 영혼도 떨게 하는 학창 시절의 나이테다.

하지만, 교사는 무료하다. 행여 부정행위라도 있으랴 눈에는 잔뜩 힘을 주지만 더디 가는 시계 바늘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말도 할 수 없고 우두커니 서서 매 시간을 보낸다. 저 시계가 혹시 늘어진 미역줄기는 아닐까.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기억의 고집’에서 표현한대로 물컹물컹 흐물거리며 녹아내리는 그 시계인 양 환각이 온다. 단단하고 냉정한 기계장치가 밀가루 반죽같이 변덕스럽게 느껴지는 순간, 시간은 일상 뒤에 숨어 있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또 하나의 화두이다.

시간에 대한 상념을 펼치다 보니, 20세기의 대표 천재 아인슈타인을 지나칠 수가 없다. “상냥한 여자와 함께 보내는 2시간은 2분처럼 느껴지고, 뜨거운 난로 위에서의 2분은 2시간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바로 상대성이다.” 그가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한 말이다. 시간이 관찰자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한 말이란다.

왜 시간은 경주마처럼 질주하다가도 어떤 때는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걸까. 슈테판 클라인에 의하면 인간의 ‘집중력 때문’이라 한다.(<시간의 놀라운 발견>) 우리는 의식이 다른 일에 몰두하면 시간에 별 관심이 없다가도, 일단 의식하면 시시각각을 확대한다. 연인을 기다리다 지친 사람은 무척 화가 난다. 교통체증으로 버스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무작정 기다리기에 고통스럽다. 분노의 원인은 바로 무기력감이며, 이 때의 지루함은 우리를 예민하게 만든다.

반면 기쁘고 활기찰 때는 세상이 빛나고 주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데이트에 한창인 연인들은 날아가는 새만 보아도, 떨어지는 나뭇잎만 보아도 즐겁다. 시간에 눈길을 줄 틈이 없는 이 때,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시간의 아이러니.’ 행복한 시간은 너무 짧고 불행한 시간은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 인간에게는 시각이나 청각처럼 시간을 인식하는 고유한 감각기관이 따로 없다. 시간을 인식하는 것은 내면의 이성이며, 두뇌를 통해 시간의 길이를 경험한다. 그러니 시간을 조절하는 자는 바로 나다. 어찌 시계를 원망하겠는가.

철학사를 보면, 인간의 시간 인식에 대한 통찰은 절대자에게까지 미쳤다. 바로 교부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다. 중세 초기 교부들은 예수님이 부활하던 때를 두고 ‘성스러운 그 순간의 길이’에 대해 집중 토론을 벌였다. 신을 위해서도 시간에 대한 이론이 필요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은 모호한 ‘순간’일 뿐이며, 인간의 시간이란 없는 셈으로 여겼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없으며, 현재는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없다.”

시계는 근대 이후 ‘기계론적 인간관’이 반영된 대표적 물건이다. 시계에 복종하는 인간의 삶은 숙명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은 장난감 연구가인 현태준씨가 만든 ‘거꾸로 가는 정각 시계’다. 한겨레 남종영 기자
시계는 근대 이후 ‘기계론적 인간관’이 반영된 대표적 물건이다. 시계에 복종하는 인간의 삶은 숙명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은 장난감 연구가인 현태준씨가 만든 ‘거꾸로 가는 정각 시계’다. 한겨레 남종영 기자
그러면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는 불완전한 우리가 어떻게 참된 진리를 알 수 있을지를 추적했다. “현재에 과거를 있게 하는 것은 ‘기억’이고, 현재를 파악하게 하는 것은 ‘직관’이며, 언젠가 미래가 있으리라 하는 것은 ‘기대’ 때문”이다. 그는 인간은 바로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순간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다고 보았다. 불완전함 때문에 영원성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인간은 시간을 볼 수 없지만 신만은 과거, 현재, 미래를 두루 보고 계신다. 그는 절대자의 ‘계심’을 ‘논리적 시간’을 통해 증명했다. 그의 독창성이 예사롭지 않다.

순간에 대한 통찰은 또 있다.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고 주장한 제논의 역설이다. 공중에 쏜 화살은 날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 순간 한 점에 위치해있을 뿐 운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증이다. 사물의 운동 과정에서 ‘시간의 흐름’을 빼어놓은 이 역설은 사람들의 통념을 논리적으로 비틀어버렸다. 그래서 오늘날 ‘생각하는 방법’을 배울 때마다 우리 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단골 메뉴이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시계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아침에 일어나라 명령하고, 출퇴근과 등하교를 허락한다. 언제 친구를 만나고 언제 은행에 가야 할 지, 언제 잠을 자고 밥을 먹을지를 하나하나 간섭한다. 시계뿐 아니라 달력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시계는 분초 단위로 하루를 명령하고, 달력은 하루 단위로 1년을 명령한다. 시간의 측정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약속’에 불과한데도, 어느덧 우리 삶을 지배하는 독재자가 되었다.

사실 시계에 대한 우리들의 복종은 근대의 산물이다. “자연은 진기한 시계와 같다.” 17세기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보일의 말이다. 근대인이 보기에 시계는 자연의 운행을 상징하는 모델이었다. 설계도에 의해 정교하게 만든 시계는 일단 제작하고 나면 내재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자동장치이다. 자연도 마찬가지로 신이 수학적으로 제작해 만든 작품이며, 우리는 이성으로 그 원리를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대인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바로 시계에서 나왔다.

그러나 인간의 생체시계는 사람마다 다르다. 얼마전 ‘아침형 인간’이 시간관리의 비법으로 떠오른 적이 있다. 슈테판 클라인이 한국에 있었다면, 종달새형 인간과 올빼미형 인간은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을 터다. 생체 시계를 조정하고 신체 프로그램을 만드는 개인 유전자의 명령에 맞는 삶이 더 효율적이란 뜻이기도 하다.

역사를 보아도 괴테는 새벽 5시 전에 일어났고, 토마스 만도 아침형 인간이었다. 반면 아인슈타인은 자칭 잠꾸러기였으며, 데카르트는 한낮이 되도록 침대위에 누워 비몽사몽 사색을 즐겨하기로 유명했다. 진정으로 생산성을 높이려면 자신의 리듬에 따라 살도록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예술가나 학자 정도를 제외하곤 그럴 여유들이 없다. 어찌보면 ‘근대 사회’야말로 우리들에게서 나를 위한 시간을 빼앗는 <모모>의 ‘시간도둑’인 셈이다.

시간은 내 삶 자체다. 과학이 측정한 시간의 흐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하지만 어떻게 머물렀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의 충고를 들어보자. “시간을 죽인다는 일 따위는 없다. ‘현재’를 관리하라.” 이제, 다음엔 무엇을 할 게지? 중간고사를 마친 어린 영혼들의 답변이 궁금하다.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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