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호의 교실 밖 국어여행
김철호의 교실밖 국어여행 / 난이도 수준-중2~고1
7. 품사의 세계 - 동사와 형용사 ①
8. 품사의 세계 ― 동사와 형용사 ②
9. 품사의 세계 - 동사와 형용사 ③
오늘은 문제부터 하나 풀어보자: ‘밝다’의 품사는 뭘까?
정답은 ‘동사이자 형용사’다. 먼저, ‘밝다’가 형용사로 쓰인 경우를 보자. ①‘밝은 세상’: 현재시제 관형형에 ‘-은’이 붙었다. ②‘표정이 밝다’: 바탕꼴이 서술형으로 쓰였다. 다음으로 ‘밝다’가 동사로 쓰인 경우를 보자. ①‘날이 밝는다’: 현재시제 서술형에 ‘-는다’가 붙었다. ②‘아침이 밝는구나’: 현재시제 감탄형에 ‘-는구나’가 붙었다.
방금 보았듯이, ‘밝다’는 동사와 형용사로 두루 쓰이는 낱말이다. 이런 낱말로는 ‘크다’도 있다. ‘목소리가 큰 사람’ ‘키가 아주 크구나’ 할 때는 분명히 형용사지만, ‘나날이 크는 사람이 되자’ ‘아이가 잘 크는구나’ 할 때는 오갈 데 없는 동사다. 이렇게 한국어에는 동사로도 쓰이고 형용사로도 쓰이는 낱말이 심심찮게 있다. ‘있다’와 ‘없다’를 들여다보면 동사와 형용사의 넘나듦이 얼마나 미묘한지 한층 더 실감할 수 있다. ‘있다’와 ‘없다’는 서로 완벽하게 대칭이 되는 상대어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두 낱말은 동사와 형용사의 성질을 다 지니고 있는데, 굳이 수치로 따진다면 ‘있다’는 동사 성향 60%에 형용사 성향이 40% 정도고, ‘없다’는 반대로 형용사 성향 60%에 동사 성향이 40%쯤 된다. 현재시제 서술형으로 쓰일 때에는 두 낱말이 각각 ‘있다’와 ‘없다’로 모두 형용사의 특징을 보이지만, ‘-아라/어라’를 붙이면 ‘있어라’는 명령형이 되어 동사로, ‘없어라’는 감탄형이 되어 형용사로 갈라진다. 또 감탄형 ‘있구나’ ‘없구나’를 보면 둘 다 형용사 같지만, 관형형은 ‘있은’이나 ‘없은’이 아니라 ‘있는’ ‘없는’이 되어 둘 다 동사로 돌변한다. 또 ‘있다’는 ‘딴 데 가지 여기 있자’처럼 청유형이 가능하지만, ‘없다’는 ‘없자’라는 청유형이 불가능하다. 두 낱말은 동사와 형용사 사이를 수시로 왔다갔다하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이다. 형용사 ‘못생기다/잘생기다’ ‘못나다/잘나다’의 쓰임새를 보면 동사와 형용사의 구별이 더욱 힘들어진다. 이 낱말들은 ‘못생긴/잘생긴’ ‘못난/잘난’에서 보듯이 분명히 형용사인데, 현재시제 서술형은 ‘못생겼다/잘생겼다’ ‘못났다/잘났다’가 되어 마치 동사처럼, 더 나아가 동사의 과거형처럼 쓰인다. ‘안되다’ ‘못되다’ 같은 형용사에서도 이와 똑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한국어에서 형용사는 동사 쪽에 가까이 가 있다. 그렇다면 영어의 경우는 어떨까. 다음 두 문장을 보자. This is a book. This is good. ‘book’은 명사고 ‘good’은 형용사다. 그런데 이 두 품사가 똑같이 ‘is’라는 be동사를 앞세우고 있다. 즉, 영어에서는 형용사를 명사처럼 활용한다. 다른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것은 영어가 명사 중심 언어라는 사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 반면에 한국어는 동사(또는 서술어) 중심 언어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형용사를 명사 쪽으로 끌어당기고, 한국어에서는 동사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동사는 움직임이고 형용사는 상태다. 상태는 움직임의 한 순간이다. 동사가 죽 이어져 있는 동영상 필름이라면, 형용사는 거기 속한 한 장면, 한 순간의 스틸 컷이다. 형용사는 그 태생부터가 동사의 한 종류, 동사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방금 보았듯이, ‘밝다’는 동사와 형용사로 두루 쓰이는 낱말이다. 이런 낱말로는 ‘크다’도 있다. ‘목소리가 큰 사람’ ‘키가 아주 크구나’ 할 때는 분명히 형용사지만, ‘나날이 크는 사람이 되자’ ‘아이가 잘 크는구나’ 할 때는 오갈 데 없는 동사다. 이렇게 한국어에는 동사로도 쓰이고 형용사로도 쓰이는 낱말이 심심찮게 있다. ‘있다’와 ‘없다’를 들여다보면 동사와 형용사의 넘나듦이 얼마나 미묘한지 한층 더 실감할 수 있다. ‘있다’와 ‘없다’는 서로 완벽하게 대칭이 되는 상대어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두 낱말은 동사와 형용사의 성질을 다 지니고 있는데, 굳이 수치로 따진다면 ‘있다’는 동사 성향 60%에 형용사 성향이 40% 정도고, ‘없다’는 반대로 형용사 성향 60%에 동사 성향이 40%쯤 된다. 현재시제 서술형으로 쓰일 때에는 두 낱말이 각각 ‘있다’와 ‘없다’로 모두 형용사의 특징을 보이지만, ‘-아라/어라’를 붙이면 ‘있어라’는 명령형이 되어 동사로, ‘없어라’는 감탄형이 되어 형용사로 갈라진다. 또 감탄형 ‘있구나’ ‘없구나’를 보면 둘 다 형용사 같지만, 관형형은 ‘있은’이나 ‘없은’이 아니라 ‘있는’ ‘없는’이 되어 둘 다 동사로 돌변한다. 또 ‘있다’는 ‘딴 데 가지 여기 있자’처럼 청유형이 가능하지만, ‘없다’는 ‘없자’라는 청유형이 불가능하다. 두 낱말은 동사와 형용사 사이를 수시로 왔다갔다하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들이다. 형용사 ‘못생기다/잘생기다’ ‘못나다/잘나다’의 쓰임새를 보면 동사와 형용사의 구별이 더욱 힘들어진다. 이 낱말들은 ‘못생긴/잘생긴’ ‘못난/잘난’에서 보듯이 분명히 형용사인데, 현재시제 서술형은 ‘못생겼다/잘생겼다’ ‘못났다/잘났다’가 되어 마치 동사처럼, 더 나아가 동사의 과거형처럼 쓰인다. ‘안되다’ ‘못되다’ 같은 형용사에서도 이와 똑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한국어에서 형용사는 동사 쪽에 가까이 가 있다. 그렇다면 영어의 경우는 어떨까. 다음 두 문장을 보자. This is a book. This is good. ‘book’은 명사고 ‘good’은 형용사다. 그런데 이 두 품사가 똑같이 ‘is’라는 be동사를 앞세우고 있다. 즉, 영어에서는 형용사를 명사처럼 활용한다. 다른 기회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것은 영어가 명사 중심 언어라는 사실과 깊은 관계가 있다. 반면에 한국어는 동사(또는 서술어) 중심 언어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형용사를 명사 쪽으로 끌어당기고, 한국어에서는 동사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동사는 움직임이고 형용사는 상태다. 상태는 움직임의 한 순간이다. 동사가 죽 이어져 있는 동영상 필름이라면, 형용사는 거기 속한 한 장면, 한 순간의 스틸 컷이다. 형용사는 그 태생부터가 동사의 한 종류, 동사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김철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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