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몬’의 한 장면.
우리말 논술 / (27) 미디어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은?
관련 논제 해결하기 / 난이도 수준-고2~고3
<논제> 제시문 (가), (나), (다), (라)를 참고해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보여지는 이미지와 현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이러한 영상을 수용하는 태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700~800자)
(가) 피와 살을 가진 살아 있는 배우에 환멸을 느낀 타란스키는 한 편집광적 과학자가 목숨과 맞바꾼 연구를 통해 유증한 소프트웨어 ‘시뮬레이션 원’을 사용해 아름답고 연기 잘하고 무엇보다도 감독에게 순종하는 디지털 여배우 시몬(Simulation One의 준말)을 빚어낸다. 시몬의 등장에 언론은 “제인 폰다의 목소리, 그레이스 켈리의 우아함, 젊은 소피아 로렌의 육체, 오드리 헵번과 천사를 합쳐놓은 얼굴”이라고 열광한다(시몬의 영화를 제작한 회사는 마침 아말감 필름이다). 쟁쟁한 클래식 스타들의 크림만 걷어 조합한 그녀는 완벽하다.
전작에서 ‘조물주 콤플렉스’에 집착해온 니콜 감독은 <시몬>에서도 여전히 수족관을 구경하는 태도로 누군가의 계략에 의해 조작된 세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들여다본다. 디지털 신호 0과 1의 조합에 불과한 시몬은 두 편의 영화로 동시에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고 기립박수를 받는다.
-김혜리, ‘세련된 이미지만의 조합-시몬’, 2003년 1월 14일 <씨네21> 영화 리뷰에서 발췌 (나) 종종 플라톤의 동굴이라는 이미지와 현대 영화관 사이에는 엄청난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아 왔다. 플라톤의 ‘영화관’에서처럼 영화관에서도 우리는 어두운 객석에 앉아 실재와는 동떨어진 단순히 이미지들에 붙들려 있다. 바로 그러한 영화관의 구조는 동굴의 구조와 아주 유사하다. 영화관의 관객들은 그들 앞에 펼쳐져 있는 스크린에 투사된 이미지들을 본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관객들 뒤에서 비추어진 빛이 계속 돌아가는 필름 조각들을 통과해서 투사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필름 조각에 새겨 있는 이미지 자체는 단지 영화관 밖의 실재 사물들을 모사한 것에 불과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몇 가지 놀랄 만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오히려 영화관은 환영의 장소로서의 동굴을 개량한 것이다. 영화관의 스크린에 투사되고 있는 것들은 단순히 그림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아주 정교하고 극도로 현실감 있는 이미지들이다. 사실상 영화의 역사 자체는 환영을 점점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소리와 색을 점차 덧붙이면서 보다 더 정교하게 실재세계를 재현하고자 했던 점진적인 노력의 산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더구나 이음새 없는 편집을 통해 영화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실재 자체가 아니라, 단지 스크린 상에서의 실재의 재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소위 ‘실재 효과(reality effect)'이다. -크리스토퍼 팔존, <영화가 된 철학> 49쪽 (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거나 또는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악역을 담당한 배우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비난을 퍼붓는 행위 등이 전자의 예라면 텔레비전이 현실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후자의 예이다. 전자의 사례는 단순한 개인적 실수에 속하는 것이어서 별다른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지 않는다. 반면 후자의 오해는 텔레비전을 비판하는 주된 논점 가운데 하나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논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비판은 사극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판에서부터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이나 계층이 특정 집단에 편중되어 있다든지, 텔레비전의 과잉 폭력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오인하도록 만든다는 관점에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비판의 가장 큰 문제는 텔레비전이 하나의 인위적 구성물임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현실에 가장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뉴스조차 현실을 적당한 형태로 재단하여 생산한다. 당장 아무런 조작 없이 카메라를 길 한 모퉁이에 설치해 놓은 후 거기서 나오는 화면을 그대로 방영한다고 해 보자. 과연 그 화면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보여주는 것일까? 물론 화면 내용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잡아내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카메라가 놓여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카메라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카메라의 높이는 어떠한지 등에 따라 그 길의 영상은 현저하게 달라질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듯이 시위 장면을 보도하는 화면에서 카메라의 위치가 시위대 쪽에 있는지, 아니면 그들을 진압하는 경찰 쪽에 있는지에 따라 시위에 대한 우리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텔레비전의 화면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나머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텔레비전 화면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실재의 인식 방식을 사용하는 나머지 우리는 종종 텔레비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정준영, <텔레비전 보기-시청에서 비평으로> 36~37쪽 (라) 영화 <할로우 맨(Hollow Man)>의 주 무대는 미 국방성이 지원하는 일급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실험실. 팀 리더인 세바스찬 케인(케빈 베이컨)은 ‘인간을 투명하게 만드는 물질’을 개발한 뒤 자신이 직접 실험대 위에 오른다. 그리고는 ‘투명인간’ 영화 사상 가장 사실적인 장면이 뒤를 잇는다. 한 순간 증발해버리는 디졸브 기법이 아니라, 피부에서부터 근육, 내장, 뼈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일부가 하나씩 사라져 가는 장면을 차례로 보여줌으로써 가히 ‘해부학적’이라 불릴 만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몇 분에 이르는 이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투명하게 만드는 물질’의 과학적인 근거나, ‘음식물이나 배설물은 왜 투명해지는 걸까’ 같은 고리타분한 질문은 잊게 만들고, 스크린에 펼쳐진 특수 효과에 압도당한 그들의 현실 감각을 저당 잡는다. 그러나 이 장면을 곰곰이 따져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비의 묘약’은 정맥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어 온몸으로 퍼진다. 그렇다면 묘약이 혈관을 통해 처음 효과를 발휘하는 곳은 혈관이 관통하는 심장과 주요 장기 부분. 따라서 모세 혈관으로 연결된 피부는 마지막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영화 속 장면은 이상하게도, 피부에서부터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영화의 첫 장면인 ‘투명한 고릴라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장면’과 비교해 보면 더욱 선명하다. 투명한 고릴라는 회복약을 투여받은 후 하나씩 차례로 원래 모습을 되찾게 되는데, 그 순서는 회복약이 제일 먼저 도달하는 혈관과 심장에서부터 신체의 각 장기들, 근육, 뼈 순이다. 피부와 털은 맨 마지막에 복원된다. 투명해지는 과정과 회복되는 과정은 역반응이라 마치 반대 순서로 진행될 것 같지만, 주사 방식이 같기 때문에 약효도 같은 순서로 진행돼야 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시각 효과를 위해서 과학적인 (혹은 논리적인) 구성이 희생된 영화 속 장면의 대표적인 예다. -정재승,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16~17쪽
-김혜리, ‘세련된 이미지만의 조합-시몬’, 2003년 1월 14일 <씨네21> 영화 리뷰에서 발췌 (나) 종종 플라톤의 동굴이라는 이미지와 현대 영화관 사이에는 엄청난 유사성이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아 왔다. 플라톤의 ‘영화관’에서처럼 영화관에서도 우리는 어두운 객석에 앉아 실재와는 동떨어진 단순히 이미지들에 붙들려 있다. 바로 그러한 영화관의 구조는 동굴의 구조와 아주 유사하다. 영화관의 관객들은 그들 앞에 펼쳐져 있는 스크린에 투사된 이미지들을 본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관객들 뒤에서 비추어진 빛이 계속 돌아가는 필름 조각들을 통과해서 투사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필름 조각에 새겨 있는 이미지 자체는 단지 영화관 밖의 실재 사물들을 모사한 것에 불과하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몇 가지 놀랄 만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오히려 영화관은 환영의 장소로서의 동굴을 개량한 것이다. 영화관의 스크린에 투사되고 있는 것들은 단순히 그림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아주 정교하고 극도로 현실감 있는 이미지들이다. 사실상 영화의 역사 자체는 환영을 점점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소리와 색을 점차 덧붙이면서 보다 더 정교하게 실재세계를 재현하고자 했던 점진적인 노력의 산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더구나 이음새 없는 편집을 통해 영화는 일반적으로 그것이 실재 자체가 아니라, 단지 스크린 상에서의 실재의 재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못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소위 ‘실재 효과(reality effect)'이다. -크리스토퍼 팔존, <영화가 된 철학> 49쪽 (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거나 또는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악역을 담당한 배우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비난을 퍼붓는 행위 등이 전자의 예라면 텔레비전이 현실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후자의 예이다. 전자의 사례는 단순한 개인적 실수에 속하는 것이어서 별다른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지 않는다. 반면 후자의 오해는 텔레비전을 비판하는 주된 논점 가운데 하나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논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런 비판은 사극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비판에서부터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이나 계층이 특정 집단에 편중되어 있다든지, 텔레비전의 과잉 폭력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오인하도록 만든다는 관점에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런 비판의 가장 큰 문제는 텔레비전이 하나의 인위적 구성물임을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현실에 가장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뉴스조차 현실을 적당한 형태로 재단하여 생산한다. 당장 아무런 조작 없이 카메라를 길 한 모퉁이에 설치해 놓은 후 거기서 나오는 화면을 그대로 방영한다고 해 보자. 과연 그 화면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보여주는 것일까? 물론 화면 내용이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잡아내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카메라가 놓여 있는 위치가 어디인지, 카메라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카메라의 높이는 어떠한지 등에 따라 그 길의 영상은 현저하게 달라질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듯이 시위 장면을 보도하는 화면에서 카메라의 위치가 시위대 쪽에 있는지, 아니면 그들을 진압하는 경찰 쪽에 있는지에 따라 시위에 대한 우리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우리가 텔레비전의 화면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나머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텔레비전 화면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실재의 인식 방식을 사용하는 나머지 우리는 종종 텔레비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정준영, <텔레비전 보기-시청에서 비평으로> 36~37쪽 (라) 영화 <할로우 맨(Hollow Man)>의 주 무대는 미 국방성이 지원하는 일급 프로젝트를 수행 중인 실험실. 팀 리더인 세바스찬 케인(케빈 베이컨)은 ‘인간을 투명하게 만드는 물질’을 개발한 뒤 자신이 직접 실험대 위에 오른다. 그리고는 ‘투명인간’ 영화 사상 가장 사실적인 장면이 뒤를 잇는다. 한 순간 증발해버리는 디졸브 기법이 아니라, 피부에서부터 근육, 내장, 뼈에 이르기까지 신체의 일부가 하나씩 사라져 가는 장면을 차례로 보여줌으로써 가히 ‘해부학적’이라 불릴 만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몇 분에 이르는 이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투명하게 만드는 물질’의 과학적인 근거나, ‘음식물이나 배설물은 왜 투명해지는 걸까’ 같은 고리타분한 질문은 잊게 만들고, 스크린에 펼쳐진 특수 효과에 압도당한 그들의 현실 감각을 저당 잡는다. 그러나 이 장면을 곰곰이 따져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비의 묘약’은 정맥 혈관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어 온몸으로 퍼진다. 그렇다면 묘약이 혈관을 통해 처음 효과를 발휘하는 곳은 혈관이 관통하는 심장과 주요 장기 부분. 따라서 모세 혈관으로 연결된 피부는 마지막으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영화 속 장면은 이상하게도, 피부에서부터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영화의 첫 장면인 ‘투명한 고릴라가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장면’과 비교해 보면 더욱 선명하다. 투명한 고릴라는 회복약을 투여받은 후 하나씩 차례로 원래 모습을 되찾게 되는데, 그 순서는 회복약이 제일 먼저 도달하는 혈관과 심장에서부터 신체의 각 장기들, 근육, 뼈 순이다. 피부와 털은 맨 마지막에 복원된다. 투명해지는 과정과 회복되는 과정은 역반응이라 마치 반대 순서로 진행될 것 같지만, 주사 방식이 같기 때문에 약효도 같은 순서로 진행돼야 하는 것이다. 이 장면은 시각 효과를 위해서 과학적인 (혹은 논리적인) 구성이 희생된 영화 속 장면의 대표적인 예다. -정재승,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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