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다양한 활동을 찾아나서는 자기주도성과 열정이 은솔양이 인정받은 ‘대학수학능력’이다. 사진은 2007년 9월 대회에 참가한 은솔양(왼쪽에서 네번째). 김은솔양 제공
대학 생활에 대한 꿈과 기대에 부푼 예비 대학생들이 많다. 그렇다면 예비 고등학생은? 고교 생활에 대한 걱정과 공포로 잠 못 이룰 뿐이다. ‘공부, 공부, 공부’로 빼곡한 일상이 너무 뻔한 탓이다. 그러나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여기 고교 시절을 다채롭게 보낸 김은솔(19ㆍ부산 대덕여고)양이 있다. 좋아하는 분야를 찾았고 몰입했다. 대학 합격은 덤이었다. 그는 올해 처음 시행한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건국대 상경대학에 합격했다. 내신과 수능 성적 관리에 10대의 열정을 저당잡히기 싫은 이들은 대학으로부터 ‘검증받은’ 은솔양의 포트폴리오에 주목하면 된다.
■ ‘선택과 집중’ 김은솔양의 고교시절
2007년 3월: 교내 경제동아리 ‘경제탐험대’ 가입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은솔양은 ‘경제탐험대’에 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경제 과목이 좋았지만 1학년 때는 ‘공부’에 대한 압박이 컸다. 경제동아리가 있는 줄 알면서도 찾아볼 엄두를 못 냈다. 성적은 5등급 언저리에 머물렀다. 낙담 속에 다시 만난 게 경제탐험대였다. “동아리를 찾다가 경제탐험대 얘기를 듣는 순간 ‘이게 기회다’ 싶었어요.”
경제탐험대에서 그는 ‘물 만난 고기’ 같았다.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피와 살이 되는 결과를 냈다. “은솔이는 경제 분야 공부를 할 수 있는 일이면 실패가 뻔한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경제탐험대 학생들의 올해 입시 실적이 좋아서 가입 문의를 많이 하는데, 경제 분야에 관심이 있고 열정이 있는 학생만이 살아남는다. 지금 동아리에 등록돼 있는 학생은 39명이지만 13명의 친구만이 의미있는 활동을 한다.” 2001년에 경제탐험대를 만들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박세현 교사의 말이다.
2007년 6월: 경제탐험대 월간지 ‘이.티.’(이코노믹 싱킹의 약자) 첫 기고
은솔양은 동아리가 내는 잡지 6월호에 책임편집기자로 <한미 자유무역협정 사용설명서>라는 첫 글을 실었다. 12월까지 모두 여섯 편의 글을 더 썼다. 글 한 편을 쓰는 데는 2~3일 정도 걸렸다. 쉬는 시간에 틈틈이 스크랩한 기사를 읽고 야자를 마친 뒤 집에 가서는 인터넷을 검색해 자료를 보강했다. 박세현 교사는 “자료를 찾고, 읽고, 정리하고, 쓰는 일이 고교생한테 쉬운 일은 아닌데 은솔이는 이런 능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기말고사가 끝난 7월에는 학교가 주최한 ‘사회문제 탐구 대회’에 ‘거품 교복 언제까지?’라는 논문을 제출해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8월에는 ‘대덕 소비자 대상’이라는 동아리 행사를 위해 직접 설문지를 만들고 인터뷰를 했다. 1등 기업으로 뽑힌 곳을 취재해 글도 썼다. 모든 글은 수시 모집에 지원할 때 귀한 자료로 쓰였다. “그때는 이런 게 대학 갈 때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냥 저는 재미있고 좋아서 한 거예요.”
2007년 9월: ‘창원 전국청소년동아리축제’ 참가
7월부터 한달 반 정도 준비해서 출전한 전국 규모의 대회였다. 동아리 활동의 결과물을 배정받은 부스에 전시했다. 은솔양은 인라인을 타고 전시 부스를 홍보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은솔양이 플래카드를 몸에 두르고 행사장 곳곳을 누빈 결과 사람들이 몰렸다. 경제탐험대는 장려상을 탔다.
“진짜 ‘대학 수학 능력’은 자기주도성과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열정 등인데 이는 내신이나 수능 점수로는 잘 안 나타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경제 분야와 관련한 꾸준하고 일관된 경험을 쌓은 은솔양은 대학에 와서도 적극적으로 자기계발에 나설 것이라고 봤다.” 은솔양을 심사한 건국대 입학사정관의 말이다.
박세현 교사는 “경제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들 가운데는 공부하는 태도까지 적극적으로 변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은솔양이 그렇다. 그의 성적은 1학년보다 2학년이 더 좋다. 4등급을 헤매던 수학은 2등급으로, 5등급이었던 국어는 3등급으로 올랐다.
2007년 12월: ‘청소년 대한민국 발전 프로젝트’ 공모 당선, 싱가포르 방문
은솔양의 기억에 남는 것은 싱가포르를 방문한 사실보다 항구도시인 싱가포르와 부산의 경쟁력을 비교한 논문을 쓴 일이다. 싱가포르 방문의 목적을 관광이 아닌 연구에 둔 박세현 교사 덕이었다. “일주일 바람 쐬고 와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출입국신고서 말고는 남는 게 없다. 대학 갈 때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쓰려면 결과물을 남기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싱가포르를 넘어서>라는 논문집에 은솔양도 <‘포트 시티(port city) 부산’으로의 도약>이라는 소논문을 썼다.
이처럼 은솔양의 경험이 대학 합격이라는 결실을 보는 데는 박세현 교사의 ‘전략’이 주효했다. 그가 잡지를 만들면서 편집장 등의 간부를 따로 두지 않은 것도 대입을 염두에 둔 포석이었다. ‘청소년 경제 월간지 편집’이라는 이력을 몇몇 간부가 아닌 모두가 공유할 수 있도록 참여하는 모든 학생에게 ‘책임편집기자’라는 타이틀을 줬다.
2008년 7월: ‘수시1학기 모집 건국대 자기추천자전형 지원’
은솔양이 건국대에 원서를 쓴다고 했을 때 합격을 기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저도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모두가 어려운 일이라고 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다른 친구가 내신이나 수능 준비하는 것처럼 열심히 활동해 왔는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했죠.” 1단계 서류 전형에 붙고 2단계 면접 때까지 남은 2주 동안 거의 매일 새벽 4시까지 면접 준비에 매달렸다. 청소년 경제 논술지 1년치를 독파하기도 했다.
면접에서 만난 화려한 경력의 친구들은 외려 은솔양의 경제탐험대 활동을 두고 ‘대단하다’고 추어올렸다. “경제 과목을 배우는 친구들한테 뒤질까봐 걱정했는데 그 친구들보다 제가 실질적인 경험을 통해 쌓은 지식이 훨씬 구체적이고 많아서 놀랐어요.” 그를 심사한 건국대 입학사정관은 “면접 상황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침착하고 당당하게 자기가 해 온 활동을 얘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du@hani.co.kr
김은솔양의 고교 시절 포트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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