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누의 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 회원들이 지난 14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강제연행돼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되어 있는 이주노동자 미누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각통보 3시간 만에’ 강제출국 당한 미누 인터뷰
“한국 잊으려 했지만…네팔서도 할 일 있을 것”
“한국 잊으려 했지만…네팔서도 할 일 있을 것”
“말기 암에 걸렸다고 (죽기) 하루 전에 통보받은 것 같네요. 비행기 타고 오면서 물 한 모금 먹지 못했어요. 18년 동안 긴 꿈을 꾸다 깨어난 것 같습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긴 한숨이 전해져왔다. 삶의 절반을 보낸 곳에서 갑자기 쫓겨난 사내는 더는 할말을 찾지 못하는 듯 한동안 침묵했다. “언젠가 돌아왔어야 했겠지만, 이런 식으로 쫓겨왔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 아프네요. 한국은 고향과 다를 바 없는 곳인데….”
지난 23일 저녁 강제출국 조처를 당한 뒤 네팔 포카라에 머물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미누(38·본명 미노드 목탄)는 25일 <한겨레> 기자와 한 국제전화 통화에서 “23일 오후, 경기 화성시 외국인보호소에서 저녁 식사를 앞두고 있는데, ‘방을 옮긴다’며 상담소로 데려가더니 ‘강제퇴거 이의신청’이 기각됐다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통보를 받은 지 세 시간 뒤인 저녁 8시50분, 인천국제공항에서 네팔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1992년 관광비자로 국내에 들어와 18년간 한국에서 살았지만, 한국에서 쫓겨나는 데는 1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지난 8일 ‘이주노동자로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에 걸렸다. “보호소에 갇힌 상태에서 억울함을 얘기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어요. 법이란 게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을 해온 그는 당국엔 불편한 존재였다. 미누가 붙잡히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곧바로 강제퇴거 이의신청을 내고, 서울행정법원에 강제퇴거명령 취소소송 등도 제기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미누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모두를 합법화하는 건 어렵겠지만,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고 이미 거기에 녹아든 이주노동자라면 차근차근 분리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며 “한국 정부는 ‘다문화 사회’로 가겠다고 말을 하지만 그런 제도 자체가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네팔에서 뭘 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 며칠 동안은 생각을 정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쫓아낸 한국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을 다 잊고 살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그건 아니잖아요. 네팔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예요.”
그는 한국에서 본명보다 한국식 이름 ‘민우’에서 따온 ‘미누’라고 불리는 걸 좋아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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