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탈퇴 찬성자는 ‘배’ 반대자는 ‘토마토’ 분류
노조원 1명에 간부 2명씩 붙여 성향분석·설득 작업
선거관리 직원 회유 ‘투표함 사전 개봉’ 시도하기도
노조원 1명에 간부 2명씩 붙여 성향분석·설득 작업
선거관리 직원 회유 ‘투표함 사전 개봉’ 시도하기도
동서발전 노조관리 문건 보니
민주노총 소속인 자사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한국동서발전의 사전 계획은 마치 ‘공작 기획’처럼 치밀하게 짜여져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행에 옮겨졌다.
이 회사 일산 사업소가 만든 ‘발전노조 탈퇴 투표 결과에 대한 원인과 대책’이란 문건을 보면, 회사 쪽은 민주노총 탈퇴 찬반 투표가 있기 3개월 전인 지난해 8월 부서별 팀워크 강화 행사 때부터 노조 조합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반대표를 던지도록 설득하는 ‘1단계 목표 달성’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 쪽이 조합원 건의와 애로사항을 빠르게 조처하고, 조합 간부와 협력·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분위기 조성에 나섰으며, ‘와병 중인 직원가족 돕기’, ‘직원가족 초청 고구마 캐기 체험’ 등도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이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투표를 열흘 정도 앞둔 지난해 11월11일부터는 간부급 직원들을 총동원했다. 조합원 135명 가운데 휴직 등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4명을 제외한 131명에 대해 철저한 성향 분석과 관리가 이뤄졌다. 회사 쪽은 8개 부서(또는 팀)별 직원 성향을 배·사과·토마토로 분류했는데, 민주노총 탈퇴에 찬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원 96명(73%)은 속과 겉이 모두 하얀 ‘배’로, 적극 반대 예상 직원 26명(20%)은 겉과 속이 모두 빨간 ‘토마토’로 각각 분류했고, 뚜렷한 성향을 드러내지 않은 직원 9명(7%)은 겉과 속의 색이 다른 ‘사과’로 분류해 집중적인 설득 대상에 올렸다. 반대가 확실한 직원들은 회사가 동우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방식 등으로 찬반 투표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문건에는 적혀 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회사 쪽은 노조원 1명마다 간부 2명씩을 배정했고, ‘판세 분석 사례’ 표를 만들어 △노조원 개개인의 성향과 최종학력 △개인별 사내 인맥 △투표 직전인 11월15일과 17일 당시의 개인별 투표 성향 예측 결과 등도 상세히 기록했다. 또 모든 간부들에게 ‘매일 부(팀)별 조합원 성향 분석 뒤 설득 노력 강화’, ‘반대 예견 인물 발굴’, ‘반대 확실 직원 투표 불참 유도’ 등을 지시했다.
찬반 투표 마지막날에는 선거관리를 맡은 직원들을 회유해 투표함을 사전에 개봉하려고 시도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문건에는 ‘투표함 발송 전일 노무차장 주관하에 극비 투표함 개봉 시도…선거관리위원 4명 중 1명이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설득 실패’라고 적혀 있어, 회사 쪽이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투표 결과가 ‘부결’로 나오자 사업소 쪽은 반대표를 던진 직원에게 기피보직 부여, 힘든 근무형태로 변경 등 노골적인 보복성 불이익을 주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노조 쪽은 이 문건과 관련해 “일산 사업소 쪽 노무차장이 본사에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된 문건이며, 일산 외에 당진·동해·여수·울산 사업소에서도 공통적으로 이같은 회유 작업이 진행됐다”며 “투표 부결 이후 일부 조합원들에게 보복성 인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노조의 찬반 투표 부결 뒤에 ‘사업소장단 회의’를 위해 작성한 ‘사장님 말씀자료’라는 문건을 보면, 이 회사 이길구 사장은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하는 공기업은 기관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며 “(찬반 투표 부결) 결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피드백이 있어야 할 것임. 기업별 노조로 전환토록 사업소는 모든 관리력을 집중(하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실제로 한국동서발전은 오는 3월까지 기업별 노조 형태의 새 노조를 설립하려고 세부 진행 계획(‘플랜 B’)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박종옥 발전노조 위원장은 “한국동서발전이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방법으로 조합 탈퇴를 협박하는 등 발전노조 파괴 행위를 벌이고 있다”며 “이를 뿌리뽑기 위해 총력 투쟁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박종옥 발전노조 위원장은 “한국동서발전이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방법으로 조합 탈퇴를 협박하는 등 발전노조 파괴 행위를 벌이고 있다”며 “이를 뿌리뽑기 위해 총력 투쟁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