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에 기뻐하며 광화문광장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사진 고한솔 기자
지난해 10월29일 촛불집회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핵심 구호가 사라졌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린 10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시민 3만명은 넉달 넘게 외쳐온 “박근혜는 물러나라”는 구호 대신 “촛불이 승리했다”고 외치며 서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날 무대에서 사회를 본 김덕진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대외협력팀장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아닌 나라에서 첫번째 밤을 맞으신 위대한 촛불시민 여러분 환영한다”며 “촛불시민들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상식이 승리했다”, “국민이 승리했다”, “박근혜를 감옥으로”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박 대통령을 파면 선고하는 영상이 나오자 박수치며 소리를 질렀다.
시민들은 한시름 놓았다는듯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모여 축제 같은 금요일 밤을 보냈다. 첫 무대 공연을 한 킹스턴루디스카가 부른 노래에 나온 “이제 시작입니다 그때가 왔어요. 너무 늦었다고 느껴질 때 이미 우린 여기까지왔죠”라는 가사가 현 상황을 비유하듯 울려퍼졌다. 노래에 맞춰 한 아주머니는 춤을 췄고, 수화 통역사도 간주 부분에서 몸을 흔들었다.
마포구에 사는 김화진(63)씨는 “마지막까지 초조했다. 8대0으로 판결해줘 너무 감격스럽고 역사가 많이 바뀔 거라 생각한다”며 “다른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고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피우고 뒷풀이하는 기분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이태호 퇴진행동 공동상황실장은 기조발언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주섬주섬 외쳐부르던 그 작은 외침이 거대한 함성이 됐고 들불이 됐고 민중의 의지가 주권자의 힘이 산악처럼 일어서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우리가 해냈다. 여러분, 우리가 이겼다. 우리 주권자가 새역사의 장을 열었다”며 촛불시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박 대통령 탄핵은 세월호 유족들한테 ‘잠시만 기쁜 마음’을 주었다. 정성욱 416가족협의회 선체인양분과장은 “박근혜 탄핵돼 기분은 좋지만 잠시뿐인 것 같다“며 “탄핵에서 세월호 7시간이 빠졌고 배는 인양도 되지 않았다. 아직도 저희는 기다림 속에 있다”고 말했다. 정 분과장은 “아직도 9명의 미수습자가 있는 세월호를 기억해달라”고 시민들에게 당부하며 “세월호를 인양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퇴진행동은 11일 촛불집회에 집중하기 위해 행진은 하지 않았다. 박수지 박수진 방준호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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