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22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문회 시작을 기다리며 옆을 돌아보고 있다. 2016.12.22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김태형
양승태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의 요구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2심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해 청와대에 알려주려 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다. 사법부가 중요 국기문란 범죄 재판과 관련해 청와대와 긴밀히 상의하고, 재판을 ‘고리’로 양 전 대법원장이 추진하던 상고법원 설립과 연계를 시도하려던 정황도 드러났다. 사법부 독립과 재판 공정성을 훼손하는 중대한 ‘헌법 위반’ 사안이어서, 당시 사법행정을 총괄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규명하기 위해 꾸려진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2일 양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행정처가 청와대의 관심 재판 진행 상황과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동향 등을 ‘사찰’하고 선제대응책까지 담은 내부 문건 등을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초 “(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를 보면 판사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 텐데 놀라지 말라”던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발언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행정처 기획1심의관이 사용한 컴퓨터에서 발견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은 사법부 고위층과 청와대의 ‘부적절한 유착’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댓글조작’ 등을 통한 원 전 국정원장의 대선 개입 사건은 당시 박근혜 정부의 정당성을 뒤흔들 중요한 문제였고 1심 무죄, 2심 유죄로 법원 판단이 엇갈렸다. 2심 유죄 선고 다음날인 2015년 2월10일 작성된 이 문건을 보면, 청와대는 판결 선고 전 ‘항소 기각을 기대하면서 행정처에 전망을 문의’했고, 행정처는 ‘우회적·간접적으로 재판부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알렸다. 판결 선고 뒤에는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이 ‘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며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했고, 행정처는 대응 방향으로 ‘(상고심) 기록 접수 전이라도 특히 법률상 오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나아가 문건에는 ‘상고심 판단이 남아 있고 BH(청와대)의 국정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는 국면→발상을 전환하면 대법원이 이니셔티브를 쥘 수도’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법원 판결과 양 전 대법원장이 추진하던 상고법원 설립을 ‘거래’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대법관 13명 만장일치로 2심 판결 5개월 만인 2015년 7월 선거 개입을 유죄로 본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추가조사위는 또 행정처가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판사의 정치적 성향, 영향력, 특정 연구회 소속 여부, 가족관계까지 파악했다고 밝혔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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