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판을 둘러싸고 ‘박근혜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부적절한 뒷거래’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재직 때 수십차례 통화한 사실이 24일 확인됐다. 법원행정처가 2차 추가조사에서 유독 임 전 차장의 컴퓨터 제출을 거부해 비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최측근이었던 임 전 차장이 청와대와 ‘연결고리’ 노릇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이 더 커지고 있다. <한겨레>가 확인한 임 전 차장과 우 전 수석의 통화는 2016년 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에 집중됐다. 그해 7~8월에만 10차례 가까운 통화가 이어졌다. 통화가 이뤄진 8월26일에는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의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재판 허위증언’과 관련해 1심 선고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또 그 무렵은 ‘넥슨 땅 특혜 매매 의혹’으로 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법원에서 우 전 수석 사무실 정강 등에 압수수색 영장 등을 발부할 때였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가 불거진 시기 양 전 대법원장의 최측근으로 사실상 사법행정 실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판결 뒷거래 의혹의 발단이 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은 법원행정처 기획1심의관의 컴퓨터에서 발견됐는데, 당시 임 전 차장은 기획1심의관을 지휘하는 기조실장을 지냈다. <한겨레>가 당시 상황을 묻기 위해 수차례 전화·문자를 했지만 임 전 차장은 답하지 않았다.
임 전 차장 외에 청와대 ‘연결고리’로 주목받는 이가 또 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다 2016년 2월 일선 법원으로 복귀한 ㄱ부장판사가 대표적이다. ㄱ부장판사는 그해 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윤장석 전 민정비서관과 수십차례 통화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ㄱ부장판사는 대법원을 통해 <한겨레>에 “기조실에서 근무하며 윤 전 비서관을 알게 됐고, 그 뒤 안부전화를 한 것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안부전화라고 하기엔 이들의 통화는 반복적으로 자주 이뤄졌다.
ㄱ부장판사가 이번 추가조사위에서 언급된 ‘거점 판사’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대법원 추가조사위는 지난 22일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법원행정처가 각급 법원에 흩어져 있는 법원행정처 심의관 출신, 이른바 ‘거점판사’를 통해 비공식 정보 수집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한 판사 역시 “재판 업무에 복귀하고도 수차례 청와대 비서관과 통화한 사실은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과 ㄱ부장판사의 청와대 통화는 ‘재판 뒷거래 의혹’이 제기된 시기에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이미 공개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수첩 등과 함께 청와대와 법원 사이의 ‘유착 정황’을 보여주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작 이 사찰을 지시한 것으로 의심받는 임 전 차장의 컴퓨터를 행정처가 보여주지 않아 들여다보지 못하고 조사를 끝냈다. 3차 조사에서는 임 전 차장 컴퓨터를 반드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