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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단일팀의 ‘작은 통일’ 세계 제패로 이어지다

등록 2021-03-27 09:22수정 2021-03-27 09:35

[토요판] 남북탁구단일팀 코리아
⑥ 혼합복식 우승 ‘결실’

한달 뒤 각자 나갈 아시안게임 위해
에이스 제외하고 결성된 남북 혼복
장우진-차효심, 결승까지 승승장구

중국 만리장성 넘어야 하는 결승
입석까지 관중 6천명 열띤 응원
최고의 기량으로 통쾌한 승리
감독·코치 얼싸안고 기쁨 나눠
2018년 7월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혼합복식 결승전에서 장우진-차효심 조가 중국팀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7월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혼합복식 결승전에서 장우진-차효심 조가 중국팀을 상대로 득점에 성공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한의 장우진 선수와 북한의 차효심 선수로 꾸려진 혼합복식조는 2018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 준결승전에서 대만팀을 3-2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단일팀 네쌍 중 유일하게 결승전에 올랐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사실 장우진-차효심 조합은 특별한 전략을 짜고 결성된 게 아닌 우연의 산물이었다.

장우진-차효심 ‘심상찮은 상승세’

“저희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었고 북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일팀 구성에 있어 서로 ‘에이스는 건드리지 말자’고 이야기했죠. 북쪽은 김남해-박신혁 조가, 우리는 이상수-전지희 조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선수로 하자는 데 합의했고, 그래서 우진이와 효심이가 한 팀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그 둘의 경기력이 안 좋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동의하에 단일팀을 꾸린 거죠.” 김택수 감독의 설명이다. 그러나 우연의 산물이라고 치기엔 장우진-차효심 조는 기대 이상으로 경기를 잘 풀어나갔다. 대만과 준결승에서는 세트 스코어 1-1 상황에서 3세트를 듀스 접전 끝에 내줘 벼랑 끝에 몰렸다. 그러나 경기 중반까지 범실을 내며 흔들리던 차효심이 4세트 들어 안정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장우진도 빠른 공격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경기 흐름을 가져왔다. 대만팀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단일팀은 4·5세트를 가져오며 승리를 거뒀다.

장우진-차효심 조의 결승 상대는 중국의 왕추친과 쑨잉사 조였다. 둘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대두’(큰 머리)란 별명을 가진 왕추친은 2000년생으로 혜성같이 나타나 중국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어린 선수답지 않게 기술적 측면에선 포핸드 공격력이 뛰어났고, 어느 순간에서나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나가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왼손 전형으로 탁구채 양면을 활용해 공에 회전을 준 빠른 공격이 일품이었다. 쑨잉사의 경우 2015년 중국 전국선수권대회 여자단식 1등을 차지한 실력자였고 2017년 5월 일본 오픈 여자복식에서 한국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결승 20분 전 ‘미래’를 고민하며

2018년 7월21일. 장우진-차효심 조가 중국과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자 관중들의 관심은 최고조로 치솟았다. 대전 충무체육관은 경기 시작 전부터 4800석 만석에 입석까지 합쳐 6000여명의 관중이 꽉 들어찼다.

결승 시작 20분 전. 장우진과 차효심은 대기실에 나란히 앉았다. 경기장에 얼마나 많은 관중이 들어왔는지 둘은 미처 알지 못했다. 결승 전 긴장감으로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래도 불과 5일 전 서먹했던 이 둘의 관계는 한층 가까워져 있었다. 한 팀을 이뤄 승리를 목표로 함께 뛰었던 경험의 결과였다. 20분 뒤면 이 둘은 6000여 관중의 관심이 집중된 탁구 테이블 앞에서 중국팀과 최종 승자를 가려야 했다. 그 스포트라이트의 무게는 일반인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둘은 이제 와서 어떤 작전을 고민하고 공유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누난 은퇴하고 뭐 할 거?” 장우진이 정적을 깨며 무심하게 차효심에게 말을 건넸다.

“은퇴하면 대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차효심은 답했다.

“우진 동생은 뭘 하고 싶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레슨도 하고 싶고, 다른 사업도 해보고 싶고. 여러가지 해보고 싶은 건 많은데 결국엔 탁구장을 열어서 레슨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북한에선 몇살쯤 선수 은퇴해요?” 장우진이 다시 물었다.

“스물여덟살이나 서른살쯤 은퇴하는데 내가 올해 스물여섯이니 나이가 많은 편입니다. 은퇴하면 못 한 공부 더 해서 대학교 졸업장을 따고 싶습니다.”

선수 생활이 끝난 시점의 불확실한 미래. 그 고민은 남북을 떠나 운동선수라면 당연히 안고 있는 것이었다. 시야 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오로지 한 방향만 바라보며 달려온 선수들에게 은퇴 뒤 삶은 불안함과 두려움이 가득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것은 한국 선수나 북한 선수나 마찬가지였다. 노력한 만큼 그 영광이 개인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삶에 적응한 선수의 입장에선, 선수 생활을 되도록 길게 하는 것이 그들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일 수도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장우진과 차효심의 이름이 불리고 경기장에 입장한 순간, 장우진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목격하며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관심. 수십개에 이르는 언론사 카메라와 1만여개의 눈. 그리고 한곳을 향한 관중들의 함성까지.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장우진-차효심 조가 서 있는 탁구 테이블에 맞춰져 있었다.

“경기장에 입장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관중들이 그렇게 많을 줄 상상도 못 했죠. 저희와 중국 선수들이 입장하고 불이 딱 켜졌는데 사람들이 기립해 박수를 쳐주는 모습을 보며 긴장이 많이 됐습니다. 저희를 둘러싸고 집중된 그 느낌은 기분 좋은 짜릿함이었죠.” 장우진은 그때의 감정을 이렇게 떠올렸다.

자기에게 집중된 스포트라이트에 소실되고 말지, 아니면 열기에 불타오르며 실력을 120% 발휘할지는 탁구대 앞에 선 선수 본인의 몫이었다. 다행히 장우진은 위축되지 않았다. 평소보다 강한 집중력을 발휘했고, 또 다른 한편으론 짜릿한 긴장감을 즐기기도 했다.

2018년 7월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혼합복식 결승전에서 단일팀이 승리한 뒤 장우진이 북한의 안철용 코치와, 차효심이 남한의 김택수 감독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7월21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혼합복식 결승전에서 단일팀이 승리한 뒤 장우진이 북한의 안철용 코치와, 차효심이 남한의 김택수 감독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하나 되어 만리장성 넘었다

그러나 경기 초반, 장우진-차효심 조는 불안하게 출발했다. 범실이 이어졌고, 5-11로 첫 세트를 중국팀에 내줬다. 관중들은 단일팀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박수와 탄식을 쏟아냈다. 장우진의 스매싱이 상대 테이블에 꽂히는 순간엔 귀를 찢을 듯한 함성이 터졌다.

단일팀의 실책이 이어지던 1세트와 달리 2세트에선 경기 흐름이 바뀌었다. 차효심의 안정적인 서브를 바탕으로 장우진은 강력한 드라이브 공세를 이어갔다. 파죽지세. 2세트를 11-3으로 가볍게 따내며 세트 스코어 1-1로 따라잡았다. 2세트를 가져오자 관중들은 연신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응원전을 펼쳤고, 그 열기는 단일팀 선수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단일팀은 3세트에서도 5-1, 7-2로 여유 있게 앞서나갔다. 관중들의 응원에 힘입어 장우진의 스매싱은 점점 더 날이 섰고, 차효심의 백드라이브 역시 힘이 넘쳤다. 10-3 매치포인트 상황에서 장우진의 강한 드라이브가 상대 구석에 꽂히면서 11-3으로 세트가 끝났다. 세트 스코어 2-1. 이제 4세트만 이기면 단일팀의 혼합복식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

경기장 어디에선가 ‘오~ 필승 코리아’가 흘러나왔고 관중들은 한목소리로 떼창을 했다. 소수이긴 했지만 중국 팬들도 “짜요! 짜요!”(加油·힘내라)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4세트 초반엔 중국팀이 3-1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장우진과 차효심은 흔들림 없이 곧바로 따라잡았다. 장우진의 스매싱, 차효심의 드라이브가 작렬하며 연속 득점에 성공했다. 3-3 동점을 만들고 7-5로 역전하더니 결국 10-8로 승기를 잡으며 매치포인트까지 질주했다.

우승까지 마지막 한점. 두 팀 모두 절실한 한점이었기에 메가 랠리가 이어졌다. 왕추친의 회심의 날카로운 드라이브를 장우진이 백핸드로 잘 받아냈고 쑨잉사의 스매싱을 이번엔 차효심이 백핸드로 또 받아내며 위기를 벗어났다. 이어 차효심의 14구째 드라이브에 왕추친이 맞드라이브로 응수했지만 공은 테이블을 벗어났다. 11-8, 단일팀을 우승으로 이끈 결정적인 한방이었다. 두 사람은 얼싸안으며 승리의 기쁨을 나눴고 장우진은 북한의 안철용 코치, 차효심은 남한의 김택수 감독과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상대편이 붙어서 공격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상대 여자 선수가 공격을 했는데 효심이 누나가 미스를 낼 줄 알았는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효심이 누나가 공격을 했고, 그게 들어가서 마지막 포인트를 냈죠. 지금도 그때 경기에선 그 포인트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장우진은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다.

집중력과 의지가 응축된 차효심의 마지막 포인트로 우승이 확정되자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들의 함성으로 체육관이 ‘웅~ 웅~’ 하고 울릴 정도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단일팀 혼합복식조의 우승. 관중들의 표정은 마치 ‘작은 통일’이라도 경험한 듯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경기장을 찾은 몇 안 되는 중국 관중들도 아름답고 역사적인 순간에 동참하며 흔쾌히 박수를 쳤다.

“한 민족이라 힘을 합치니 되는고만요!” 주정철 북한탁구협회 서기장이 박창익 대한탁구협회 전무를 얼싸안으며 말했다. 평소 과묵하던 주 서기장도 본부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우승의 순간을 함께하고 기쁨을 만끽했다. 박 전무와 주 서기장은 2018년 스웨덴 세계탁구선수권대회부터 코리아오픈까지 남북단일팀 결성을 이끈 숨은 주역들이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경기를 뛰는 단일팀 선수들에게 집중됐지만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27년 만의 단일팀 결성’은 이상에 불과한 일이었을 것이다.

시상식이 거행됐다. “시상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님께서 해주시겠습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 뒤 만면에 웃음을 띤 조 장관이 경기장에 입장했다. 조 장관이 상패를 수여하려 앞에 서자 차효심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경기 내내 무표정이었던 차효심의 의외의 모습에 옆에서 바라보는 장우진의 마음도 뭉클했다.

2018년 7월21일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한 단일팀 차효심과 장우진이 상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7월21일 코리아오픈 탁구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한 단일팀 차효심과 장우진이 상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김지나 작가·<뉴스핌> 기자, 공동기획 팩트스토리

▶ 스포츠는 정치와 국경을 넘을 수 있는가. 1991년에 이어 2018년 또다시 남북탁구단일팀이 꾸려졌다. 그해 봄, 남북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직후였다. 30년 전 단일팀 선수들은 감독과 스승이 되었고, 그들의 제자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남북관계가 안개에 싸인 지금, 새 시대를 열었던 단일팀의 이야기를 다시 돌아본다. 이 기획은 영화사 명필름과 실화 전문기획사 팩트스토리가 함께 했고, 명필름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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