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방장이여, 사랑의 온도계를 쓰시라
[매거진 Esc] 요리의 친구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맛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온도일 것이다. 온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하니 어쩌면 온도를 첫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말하셨다. ‘밥 먹을 때 말하지 마라’. 잔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먹고 보니 그게 뜨거울 때 음식을 먹으라는 (미식가) 아버지의 충고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뜨거울 때 먹어야 맛있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차가워야 제 맛이 나는 것도 있고, 미지근한 상태일 때가 가장 좋은 음식도 있다. 그 온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음식 고유의 맛이 사라지고 만다. 온도는 정성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온도를 지키기 위해 아랫목에다 밥그릇을 묻어 두시곤 했다.
얼마 전에 한 음식점에서 오코노미야키를 시켜 먹은 적이 있다. 뜨거운 음식을 기대하고 있었다. 위에 얹힌 가쓰오부시가 뜨거운 바람에 녹으며 갈대처럼 흐느적대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음식은 차가웠다. 겉은 미지근했지만 안쪽은 차가웠다. 종업원에게 뜨겁게 해달라는 주문을 했다. 다시 나온 음식은 여전히 미지근했다. 다시 주문했다. 이번엔 주인이 나와 “하하, 만들다보니 너무 두꺼워져 버린 모양이네요.”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다시 나온 음식은, 그래도 차가웠다. 그 집에선 오코노미야키를 미리 만들어두었다가 손님이 주문을 하면 뜨겁게 데워 주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은 모양이었다. 오코노미야키라면 한국의 전과 같은 것이니, 방금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맛있을 것은 자명한 이치다. 식당의 사정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주문이 들어오고 나서 오코노미야키를 만들게 되면 너무 번거로울 것이고,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다. 시장에서 전을 파는 아주머니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많이 만들어 두었다가 손님이 주문을 하면 다시 데워 주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아쉽다. 모든 음식에는 ‘먹기에 가장 알맞은 시간’이란 게 있는 법이다. 결국 주인은 오코노미야키의 음식값을 받지 않았다. 돈을 내지 않았지만 손해 본 느낌이었다. 맛있는 한 끼를 빼앗겼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제때 저녁을 먹이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디에서 놀고 있어도 어머니는 귀신같이 아들을 찾아내선 집으로 끌고 가셨다. 어머니가 바쁠 때는 형이 부르러 오곤 했다. “저녁 먹자.” 그 한마디는 아주 뜨끈뜨끈한 말이었다. 주방 취재를 다니다 주머니에 온도계를 꽂고 있는 요리사를 본 적이 있다. 그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어 보지 못했지만 어쩐지 믿음직스러웠다. 탐침이 붙어 있는 전자온도계를 사용하는 요리사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실제로 고기 요리나 수플레 같은 음식을 만들 때는 온도계가 필수다. 내부의 온도를 알아야 정확한 요리를 낼 수 있다. 어머니의 뜨끈뜨끈한 사랑의 온도를 낼 수 없다면 음식의 온도라도 정확했으면 좋겠다. 정확하다는 게 참 모호한 표현이긴 하지만.
김중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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