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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가자! 오가자 와인 마시러”

등록 2007-10-31 22:51수정 2007-10-31 23:14

검붉게 익은 오가피나무 열매인 오가자.
검붉게 익은 오가피나무 열매인 오가자.
[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농민과 중견기업이 함께 빚은 벤처술, 강원도 정선군의 명작 오가자
강원도 정선군은 생약초 특화 지역으로 선정된 곳이다.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성공시킨 정선군 오일장에서 가장 쉽게 보는 것도 생약초다. 그 생약초를 가지고 만든 정선 명주(특별한 제조법으로 빚어 고유한 상표를 붙인 좋은 술)가 있다. 오가피 열매로 만든 ‘명작 오가자’ 와인(과실주)이다. 구기자, 오미자, 복분자 하듯이, 오가피 열매를 오가자라 부른다. 오가자는 서리 내리고 난 뒤에 수확하는지라 지금이 제철이다.

오가피 열매 이용… 러시아에서도 특허

오가피나무는 그 효능이 널리 알려지면서 근자에 농가에 많이 보급되었다. 귀농한 내 친구도 오가피나무 묘목을 사다 심으면서 주름 깊게 웃음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오가피 한 줌을 얻으면 옥이 수레에 가득 찬 것보다 낫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1670년경에 집필된 <음식디미방>에는 중국의 맹작이란 사람이 평생을 두고 먹으니, 나이 삼백을 살고 아들 서른을 낳았으며, 이제 사람은 병 있고 단명하니 온갖 일을 다 버리고 오가피술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정선 오일장에서 벌어진 흥겨운 공연(맨위사진). 탱크 안에서 발효되고 있는 오가자 와인(두번째사진). 정선군농업기술센터 안에 있는 오가자 제조장(세번째사진). 강원도 횡성에 있는 국순당 백세주 제조장의 견학로(맨아래사진).
정선 오일장에서 벌어진 흥겨운 공연(맨위사진). 탱크 안에서 발효되고 있는 오가자 와인(두번째사진). 정선군농업기술센터 안에 있는 오가자 제조장(세번째사진). 강원도 횡성에 있는 국순당 백세주 제조장의 견학로(맨아래사진).
이런 배경 때문인지, 근자에 복분자술만큼이나 많이 빚어지는 게 오가피술이다. 그런데 정선의 오가피나무 술은 좀 다르다. 거의 모든 오가피술들이 오가피나무의 껍질을 이용하는데, 정선의 오가자 와인은 오가피나무의 열매를 이용한다. 오가자 와인을 특허낸 정선군농업기술센터의 최대성 소장은 “열매가 진수인데 사람들이 몰라 과실주로 개발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정선군은 세계화전략도 마련해서 러시아·유럽연합·미국·일본·중국에도 특허출원을 했는데, 지난 10월에 오가피나무의 강국인 러시아에서 가장 먼저 특허 등록이 났다.

정선군은 세계화 전략에 앞서, 오가자 와인의 국내 시장 진출을 위해 약주시장의 맹주인 국순당과 손잡아 2005년 10월에 농업회사법인 국순당 정선명주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이미 생열귀술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최대성 소장은 “아무리 좋은 원료로 좋은 술을 만들더라도 결국은 유통이고 마케팅이어서, 적극 구애 끝에 손을 잡았습니다”고 했다.

명작오가자 와인 공장은 정선군농업기술센터 안에 있다. 모든 재료는 정선의 농민들이 거둔 오가자를 사용한다. 올해는 정선군의 186농가 53ha에서 거둬들인 10톤 분량, 2억원어치를 사들일 예정인데,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한다. 공장장은 국순당에서 파견했고, 현지에서 채용한 기능직 세명과 일용직 다섯명이 일한다. 2006년 8월에 상품을 처음 선봬 2007년 상반기까지 순매출이 6억8천만원이다. 농민주를 만들어 1년이 채 안 되어 이 정도 매출이라면, 성공적인 출발이다.


명작 오가자 와인병.
명작 오가자 와인병.
명작 오가자 와인은 오가자를 따서 말려 사용한다. 말린 오가자는 당도가 30브릭스로 아주 높게 나오는데, 당이 배당체 형태로 존재해서 설탕을 타지 않은 식혜맛 정도가 난다. 오가자의 성분을 가장 잘 추출하는 방법은 찬물에 우려내는 것이라 한다. 우려낸 오가피물에 당을 첨가하고 효모를 넣어서, 발효 10일, 숙성 6개월을 시켜 상품화한다. 오가자 와인의 색깔은 복분자술보다도 더 짙은 검붉은색이다. 첫맛은 연한 단맛이 산뜻하게 도는데, 중간맛엔 달인 한약재의 진액에서 나는 듯한 낯선 맛이 느껴지고, 뒷맛은 쓴맛이 깔리며 입에 가득 찬 느낌이 돈다. 중간에 느껴진 맛과 향은, 발효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약효가 강한 오가피나무의 본성 같아 보인다.

고창 농민들의 벤치마킹으로 이어져

농민주를 생산하는 대다수의 농민들이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서지도 못한 형국이라면, 정선의 명작오가자 와인을 재배하는 농민들은 아주 거뜬하게 일어서 걷는 셈이다. 술을 만드는 사람들이 편하면, 술도 편안한 법이다. 명작 오가자 와인의 사례는 모범적인 농민주 클러스터(단지)로 평가되는데, 이를 지켜보고 부러워한 고창 농민 420명이 국순당에 제안하여 설립한 회사가 명작 복분자를 생산하는 국순당 고창명주 주식회사다.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정선의 명작 오가자주는 독창적인 제조방법과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진 벤처상품이다. 알코올과 오가자만 담긴 게 아니라, 농업을 살리는 묘안도 담긴 벤처 술이다. 술 밝히는 친구에게 “오, 가자! 정선 5일장 관광열차를 타고, 오가자 와인 마시러!”라고 권하고 싶은 술이다.

허시명 여행작가, 술품평가
twojob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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