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병에 납세증지를 붙이고 있다. 소주는 세금이 50%가 넘는다.
[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감홍로가 과연 조선의 3대 명주에 값하는지 올 추석에 확인해볼까
감홍로가 과연 조선의 3대 명주에 값하는지 올 추석에 확인해볼까
삼팔 이북에서 가장 유명한 술이 감홍로(甘紅露)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조선의 3대 명주로 감홍로·이강고·죽력고를 꼽았다. <춘향전>에도 <별주부전>에도 감홍로가 나온다. 18세기 문헌 <고사십이집>을 비롯하여 19세기 문헌 <임원십육지>, <동국세시기>에도 등장한다.
작고한 명인을 계승하는 가족을 찾다
이슬 ‘로’(露)자는 소주를 뜻한다. 전통 소줏고리에서 증류되어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습이 이슬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소주를 노주라고도 부르는데, 참이슬 진로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소주는 추운 지방에서 많이 마신 술이라, 평안도 소주가 한반도에서는 명주로 소문나 있었다. 평양 소주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술이 감홍로였으니, 감홍로는 소주의 최고봉에 깃발을 꽂은 술이다.
그 명성을 일찍이 듣고 있어서, 나는 오래 전부터 감홍로를 찾고 다녔다. 평양의 대평술공장에서 빚은 알코올 30%짜리 감홍로를 보았지만, 빈병만 보았을 뿐이다. 월남한 이가 감홍로를 빚는대서 만났지만 술을 맛볼 수는 없었다. 농림부로부터 명인 지정을 받은 이기양씨가 신철원에서 감홍로를 낸다는 소문을 듣고 만나보려 했는데, 2000년 8월에 갑자기 세상을 버리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다.
이제 옛문헌 속에서 감홍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구나 하던 참에, 파주에서 감홍로를 빚는 이가 나타났다는 얘기를 듣고 나는 파주로 달려갔다. 농림부로부터 농민주 추천을 받아 2006년 초에 주류면허를 받고, 2006년 10월에 감홍로를 처음 출시한 감홍로 제조장이 파주읍 부곡리에 있었다. 술을 빚는 이는 작고한 명인 이기양씨의 여동생 이기숙씨였다. 이기숙씨의 집안은 술 집안이었다. 이기숙씨의 아버지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술로서 인간문화재가 된 이경찬(1918~1993)씨다. 이경찬씨가 빚은 술 문배주는 장남 이기춘씨에게 승계되어 김포에서 빚어지고 있다.
이경찬씨가 생전에 자주 빚었던 술로 문배주말고 감홍로와 과일주가 있었다. 막내딸인 이기숙씨는 아버지가 문화재로 지정받고자 실험주나 시음주를 빚을 때 곁에서 일손을 많이 도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오빠들과 함께 감홍로 빚는 법을 배웠다.
이기숙씨는 감홍로 때문에 많이 가슴아파했다고 한다. 감홍로를 빚으려다가 세상을 등진 오빠도 생각나고, 감홍로가 영영 잊혀져 가는 것도 가슴아팠다. 이대로 두면 감홍로가 사라지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술을 빚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고, 마침내 남편과 함께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감홍로는 뜻 그대로 달고 붉은 술이다. 빚는 방법도 문헌에 따라, 빚는 이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임원경제지>에 등장하는 관서 감홍로는 멥쌀과 누룩과 꿀과 지초로 빚은 소주다. 최남선이 알고 있던 감홍로는 소주에 단맛나는 재료를 넣고 홍곡으로 발그레한 빛을 낸다고 했다. 최남선의 홍곡은 아마도 홍국(紅麴)이었던 것 같다. 이기숙씨가 아버지로부터 배운 감홍로는 좁쌀누룩 30%에 멥쌀 70%를 사용하고 약재 8가지가 들어간다. 두 번 증류한 뒤 약재를 넣은 약소주
감홍로는 두 번 증류한 뒤에, 색과 맛과 약효를 내기 위해 약재가 들어가는 약소주(藥燒酒)라는 게 큰 특징이다. 소주든 청주든 우리 민족은 약효가 있는 약술을 좋아했음이 감홍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기숙씨의 감홍주에 들어가는 약재를 살펴보면, 용의 눈을 닮았다는 용안육은 장을 보호하고, 정향은 정기를 북돋아주고, 계피는 두통을 없애고, 진피는 감기에 좋고, 자초는 피를 맑게 하고, 생강은 혈을 뚫어주고, 방풍은 중풍에 좋고, 감초는 이 모든 약재가 다투지 않고 어울리게 해준다.
감홍로는 가슴을 시원스럽게 뚫고 지나가는 소주의 기운을 잘 담고 있다. 술맛을 보니 감렬하다(달고 아주 차갑다)는 옛사람의 표현이 이해가 된다. 감홍로가 오래 잊혀졌다가 세상에 다시 나왔으니, 올 추석엔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만나보시라. 과연 조선의 3대 명주에 값하는 술인지도 확인하시고.
감홍로 (031)954-6233/선물용 700ml 두 병 5만5000원 (택배비 포함)
허시명 여행작가·술품평가

좁쌀누룩을 만드는 누룩상자.
감홍로는 뜻 그대로 달고 붉은 술이다. 빚는 방법도 문헌에 따라, 빚는 이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임원경제지>에 등장하는 관서 감홍로는 멥쌀과 누룩과 꿀과 지초로 빚은 소주다. 최남선이 알고 있던 감홍로는 소주에 단맛나는 재료를 넣고 홍곡으로 발그레한 빛을 낸다고 했다. 최남선의 홍곡은 아마도 홍국(紅麴)이었던 것 같다. 이기숙씨가 아버지로부터 배운 감홍로는 좁쌀누룩 30%에 멥쌀 70%를 사용하고 약재 8가지가 들어간다. 두 번 증류한 뒤 약재를 넣은 약소주

좁쌀누룩을 만들기 위해 좁쌀을 알알이 털어내고 있다.
감홍로를 부활시킨 이기숙씨와 감홍로 술병(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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