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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분자주에도 빈티지를?

등록 2007-10-18 22:25

중양절에 돌을 머리에 이고 고창읍성을 도는 주민들.
중양절에 돌을 머리에 이고 고창읍성을 도는 주민들.
[매거진 Esc]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농촌사랑의 마음으로 마시면 좋은 술, 고창모양성제 축제의 주인공으로
가을이 깊어간다. 내일(음력 9월 9일)은 중양절이다. 높은 곳에 올라 국화주를 마시는 날이다. 중양절 전통을 잇는 동네로 전북 고창이 있다. 내일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답성놀이를 하는 장관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고창 모양성 밑에 운집할 것이다.

어떻게 차별화하고 표준화할 것이냐

복분자 열매.
복분자 열매.
고창 읍성 답성놀이는 강릉 단오제와 더불어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축제로, 전국 어느 축제보다도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은 행사다. 마치 <심청전>의 황성 잔칫날처럼 주민들이 읍내로 몰려오는데, 이는 주민들이 단단히 믿는 속신(俗信) 때문이다. 이날 모양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왕생한다는 것이다.

19일 모양성 아래에서는 판소리 명창 공연과 함께 흥성한 잔치가 벌어진다. 그 잔칫상에 국화주가 오를지는 알 수 없지만, 복분자주는 반드시 오를 것이다. 고창은 ‘복분자주의 고향’이다. 소주와 맥주가 주도하고, 수입 와인과 위스키가 공습하는 국내 주류시장에서, 최근 5년 동안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한 국산술은 복분자주뿐이다. 바야흐로 막걸리, 소주, 맥주, 약주에 이어 복분자주가 새로운 술의 장르로 등극한 양상이다. 더불어 가장 경쟁력 있는 농산물의 하나로 복분자가 부상하면서 재배지도 제주도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빠르게 확산되었다.

복분자주를 발효하고 있는 선운산복분자주 흥진의 발효실.
복분자주를 발효하고 있는 선운산복분자주 흥진의 발효실.
술은 농촌을 살리는가? 적어도 복분자주는 고창을 살린다. 고창군 전체 농가의 37.2%(2006년 기준)가 복분자를 재배한다. 수확 시기가 15일 밖에 안 되고 장마철과 겹쳐서 농가당 재배 면적을 확대하긴 어렵지만, 지금까지는 재배 면적당 소득액이 고추의 2.8배, 쌀의 5.9배로 고소득 작목으로 평가받는다. 고창에 복분자주 공장만도 올해 2개가 추가되어 9개가 되었다. 안동시에 안동소주 회사가 세 군데이고, 진도군에 진도홍주 회사가 여섯 군데인데, 그 수를 추월하여 고창은 ‘술의 고장’이 되어가는 중이다.

복분자주를 여과한 여과포를 정리하고 있는 흥진 작업장.
복분자주를 여과한 여과포를 정리하고 있는 흥진 작업장.
고창군청도 발빠르게 대응하여 복분자 산업특구로 지정받았고, 2004년에 복분자주 지리적 표시제 등록에 이어, 2007년에 복분자생과도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했다. 이강수 고창군수는 “향후 3년 동안 80억~1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복분자 농가와 가공업체를 지원하고, 관광빌리지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창 복분자 회사 중에서 매출이 가장 높은 산매수복분자주를 생산하는 흥진을 찾아갔다. 흥진은 알코올 강화 와인 타입으로 알코올 16% 복분자주와 19% 복분자주를 내는데, 올해 안에 알코올 13% 정통 와인 타입을 출시할 예정이다. 흥진의 임종훈 부장은 “매출이 해마다 늘어 한 해에 작업장을 한 동씩 지어, 현재는 연 400만병 정도의 복분자주를 생산한다”고 말했다. 12톤짜리 발효통 속에서는 술이 한창 발효되고, 주말인데도 직원들이 나와 복분자주를 여과하고 있었다.

정통와인을 빚는 선운당복분자주.
정통와인을 빚는 선운당복분자주.
관광객들이 찾기 좋은 전시장을 갖춘 고인돌복분자주의 염관록 전무는 “기능성을 높이고 고창 복분자의 소비도 높이는 차원에서, 가벼운 복분자주보다는 좀 진하고 묵직한 복분자주를 만든다”고 말했다. 선운당복분자주의 진남표 회장은 “복분자주의 차별화를 위해서 주정을 넣지 않은 정통 와인 타입을 만든다”고 말했다.

고창에서 빚어지고 있는 복분자주들.
고창에서 빚어지고 있는 복분자주들.
매출 600억원이 넘는 무한경쟁의 시장

현재 복분자주 시장은 매출 600억원이 넘는 규모로, 무한경쟁의 상황 속으로 들어왔다. 과일주 복분자주를 빚는 양조장이 30군데를 넘었고, 탁주 복분자주까지 합하면 50군데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위로는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대형 주류회사들이 복분자주 사업에 뛰어들고, 아래로는 저렴한 복분자탁주가 생산된다. 출고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유통되는 복분자주들도 있어서, 시장이 혼탁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허시명의 알코올 트래블
지금은 복분자주가 와인 바람을 함께 타지만,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위해 표준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원료 생산지의 표기, 제조방법을 식별케하는 표기, 맛의 분포도에 따른 표기들이 이뤄져, 소비자들이 취향껏 골라 마시게 해야 한다. 복분자주라면 모두 똑같은 술인 줄 알아 오로지 싼 술만 찾고, 3만원짜리 복분자주에 혀를 내두르면서 10만원짜리 수입 와인에 고개를 끄덕이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곤란하다. 복분자주가 잘되기를 염원하는 것은 농촌이 잘되기를 염원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번주 일요일까지 고창모양성제가 열리니, 가을바람도 쐬고 고창복분자주로 정기도 충전하시라.

허시명 여행작가·술품평가 twojob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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