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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호텔도어엔 거울을 달았을까

등록 2007-10-31 23:24수정 2007-10-31 23:32

지난 0월 대만 가오슝의 야시장. 한 노점상이 저녁 장사를 준비한다.
지난 0월 대만 가오슝의 야시장. 한 노점상이 저녁 장사를 준비한다.
[매거진 Esc]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⑤
대만에서의 엔지니어 시절 ‘펑슈이’에 따른 공간배치를 경험하다
1991년 타이완에 갔습니다. 아시아는 첫 경험이었죠. 그전까지는 어렸을 적 갖고 놀던 플라스틱 인형에 새겨진 ‘메이드 인 타이완’이라는 문구와의 만남이 전부였어요. 그때까지 서양에서 타이완은 ‘포모사’(Formosa)로 알려졌기 때문에, 당시 저는 타이완이 뭘 의미하는지 헷갈렸죠. 타이완에 처음 도착했던 날을 기억해요. 세상에, 그 많은 사람들이란. 공항에서 나오면서 저는 마치 자동차 레이스에서 혼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이 흘러가면 돈도 흘러간다구!

전 타이베이에 있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먹고자면서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도착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타이완인 기술 스태프의 결혼식에 참석했어요. 저는 친척이나 가족은 아니었지만 일종의 명예손님 자격이었죠. 타이완식 결혼 피로연은 정말 화려하죠. 저를 포함해서 호텔 기술 담당자들은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았습니다. 테이블 한가운데는 간장으로 맛을 낸 거대한 생선요리가 놓여 있었죠. 그때 한 타이완 동료가 제게 생선눈알을 건넸어요. 테이블은 물론 결혼식에 참석한 모두가 저만 바라봤죠. 먹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그날 타이완식 건배를 처음 배웠습니다. 테이블의 타이완 동료들이 한명 한명 저와 건배를 하더군요. 한 사람이 “건배!”를 외치고 나서 ‘원샷’을 했어요. 저도 ‘원샷’을 했죠. 그러자마자 바로 옆에 있던 동료가 다시 저와 건배하고 ‘원샷’을 했어요. 그렇게 돌아가며 건배하는 게 타이완인들이 우정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어요. 저는 ‘이 순간을 기꺼이 즐겨 주지’라고 생각하고 술을 마셨어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날 다른 누구보다 취했습니다. 아무튼 아직까지도 그분들이 제게 장난으로 생선눈알을 건넨건지 진지하게 먹으라고 권한건지 모르겠네요.

해마다 열렸던 기술 부문 파티도 기억납니다. 타이베이 근처 산 위의 빌라에서 직원들끼리 단합대회를 열었습니다. 직원 모두 타이완식 게임을 했죠. 전 그때 신입인데다 외국인이어서 게임에 익숙치 않아 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벌칙으로 얼굴에 밀가루를 뒤집어썼죠. 다음날 호텔 전체 직원들 사이에 ‘게이샤 닉’의 사진이 돌고 돌았다지요. 하지만 전 그 당시 사람들이 저를 재밋거리로 삼거나 제게 이목이 집중되는 것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타이완 사람들은 매우 개방적이었고 재미있었죠. 전 타이완에서 지내는 시간을 매우 즐겼어요.


지금은 미국에서도 모두 ‘펑슈이’(fengshui. ‘풍수’의 중국 발음)를 알죠. 그러나 1991년에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아무도 펑슈이를 몰랐습니다. 타이완에서는 모두가 “펑슈이, 펑슈이”를 말했어요. 처음 호텔에 도착했을 때 천장에 매달린 ‘윈드 차임(가늘고 긴 금속관을 매단 장식도구로 바람불면 소리가 남)’을 봤죠. 바람이 불면 금속관들이 서로 부딪혀 “딩동딩동”하는 소리가 났죠. 윈드 차임은 아주 아주 길었어요. 4미터쯤 됐던 것 같네요. 윈드 차임을 매단 이유를 묻자 한 대만인 동료가 그저 “펑슈이”라고만 답하더군요. 호텔문에는 거울이 달렸더라고요. 대체 문에 왜 거울이 달렸을까요? 타이완 동료들은 “귀신이 호텔에 들어오려다가 거울을 보고 제 모습에 놀라서 도망간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물이 절대로 호텔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설치했어요. 왜냐면 물은 돈을 상징했으니까요. 호텔 안 분수에서 물이 외부로 흘러나가면 돈이 당신을 떠나간다는 겁니다. 타이완 동료들은 펑슈이에 따라 제 방의 책상과 소파를 이리저리 재배치했죠. 펑슈이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지금 펑슈이는 미국과 유럽에서 외려 주류가 됐습니다.

에너지 소비 측정방법 개발에 매진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대만에서의 일상들이 떠오르네요. 말보로 담배를 쉽게 살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대만산 ‘장수(Longlife)담배’를 피웠죠. 숙취가 아주 심했던 대만 맥주도요. 어느 날 저녁 친구를 만나고 나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죠. 택시기사가 제게 “타이완에서 운전해 본 적이 있냐”고 묻더군요. 없다고 하자 그가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제게 운전대를 맡기더군요. 얼떨결에 저는 앞자리로 가서 운전대를 잡았죠. 호텔에 도착하자 벨보이가 저를 위해서 뒷자리 문을 열었지만, 평소와 달리 제가 운전석에서 나오자 깜짝 놀라더군요.

당시 저는 호텔(객실 1000개에 8개의 레스토랑을 갖췄죠)에 있는 모든 기술 시설들의 목록을 만들고 그 가운데서 에너지를 소비하는 설비들을 골라내는 일을 맡았습니다. 작동 시간을 이용해서 실제 에너지 소비를 측정하는 방법을 만들어냈죠. 이 방법은 모든 아시아 지역 하얏트 호텔에서 최고의 방법으로 사용됐죠. 저와 우리 팀은 시설 예방 정비를 다루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를 두 가지 언어로 개발하기도 했죠. (91년도엔 꽤나 선진적이었습니다). 사실 기술 작업은 매우 계산적이고 혼자서만 잘하면 되는 일이어서 별로 재미가 없었지만 묵묵히 일했죠.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남종영 기자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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