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읽어주는 여자〉예술과 진실의 만남
[매거진 Esc] 사진 읽어주는 여자
아르놀트 퀴블러(Arnold Ku"bler)를 만나지 않았다면 휴먼다큐멘터리를 찍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38살에 죽지도 않았을까? 알 도리가 없다. 온간 ‘이프’(if)는 아쉬움의 흔적일 뿐이다.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은 2차 세계대전 뒤 전쟁의 상처를 찍은 매그넘 소속 사진가다. 초창기 그가 찍은 사진은 빛과 어둠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아름다운 광고사진이었다. 프레임은 조형적으로 완벽했고 만 레이 사진처럼 예술적인 끼가 충만했다.
그의 피사체가 바뀐 것은 42년 스위스 잡지 ‘두’(Du)의 편집장 아르놀트 퀴블러를 만나면서부터다. 그때부터 54년 자동차 사고로 숨질 때까지 인간·전쟁·아이들의 아픔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기록들은 진실에만 집착해서 앵글에 담을 수 있는 예술적인 구도 자체를 포기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진실은 예술적인 구도를 쓰고 더 극명하게 드러났다. 위의 사진도 마찬가지다. 흑백 사진은 온갖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어디일까?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뉴욕? 왜 사람들은 탈을 쓰고 춤을 추는 것일까? 탈은 너무 위압적이다. 정말 흥겨울까? 왜 남자들만 있지?’ 온갖 의문이 가슴을 헤집는다. 사진 속 장소는 놀랍게도 1952년 한국의 거제도다. 바로 그 포로수용소다. 비숍은 이외에도 50년대 부산의 고아들의 모습도 담았다.
비숍이 남긴 모든 것들은 사고 당시 네 살이던 아들 마르코와 매그넘이 관리하고 있다. 지금 아들은 쉰셋이고 사고 당시 아버지보다 열다섯 살이 많다. ‘이프’, 그가 살았다면?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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