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대신 ‘오륀지’
[매거진 Esc] 박미향의 신기한 메뉴
‘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스페인 노래가 귀를 붙잡는다. 파란 테이블 위의 그릇도 스페인 투우사의 얼굴을 했다. 화장실의 작은 비누받침마저도 스페인 여인네의 향기를 풍긴다. 온통 스페인이다.
작은 스페인 음식점 ‘알바이신’의 주인 정세영(46)씨는 본래 사진가였다. 물론 지금도 사진가다. 빛을 이용해 그가 만드는 사진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흑백 이미지였다. 그 흑백사진을 그는 3년 동안 뜨거운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서 만들었다. 사진만이 아니었다. 우리네 된장찌개와 갈비찜을 만들어 그네들의 혀끝에 내밀었다. 스페인 지인들은 환호했고 그들로부터 스페인의 먹을거리를 배웠다.
귀국한 뒤 ‘먹고 살기 위해’ 대학로에 ‘알바이신’을 열었다. 2001년이었다. 사진을 찍던 손재주가 마술을 부려 맛난 스페인 음식을 쏟아냈다. 그 입소문 덕에 지금 서교동에 두 번째 ‘알바이신’을 열게 됐다.
그가 한국에서 개발한 요리 하나. ‘바카라오 콘 나랑하’(bacalao con naranja). 원래 스페인에서는 대구를 소금에 절여 마요네즈를 얹어 먹는데, 마요네즈 대신 ‘나랑하’, 곧 오렌지를 요리에 넣었다. 느끼함을 싫어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고려했다.
‘바카라오 콘 나랑하’를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다. 대구 한 마리를 하룻동안 소금 1킬로그램에 절인다. 스페인식이다. 소금을 만난 대구는 크기가 줄어들고 살이 쫄깃해진다. 다시 하룻동안 소금기를 빼기 위해 물에 넣어 둔다. 이것을 월계수 잎과 올리브기름이 섞인 것에 두었다가 식탁에 내놓는다. 레몬을 뿌리면 더 맛있다. 대구 위에 올라간 토마토 세코(토마토를 말린 것)의 육포 같은 질긴 맛도 특이하다. 화이트 와인과 먹으면 대구의 풍미가 더욱 짙어진다.
그가 ‘알바이신’의 벽에 그린 그림들은 마치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걸린 스페인 화가 고야의 그림처럼 뜨겁다. 그의 요리도 강렬하다. (02)334-5841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