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서운 영화3〉(2005)
[매거진 Esc]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공포건 멜로건 액션이건 영화의 모든 장르는 단순한 완성도 말고도 보는 이의 취향에 호소하는 바가 있다. 아무리 잘난 스필버그 영화라도 내 취향이 아니면 볼 이유가 없는 거다. 취향 가운데서도 호오가 가장 뚜렷하게 갈리는 건 코미디인 것 같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설문조사에서는 한국인이 코미디를 가장 좋아한다고 나왔지만 미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한 영화 가운데 한국에서 개봉이 안 되거나, 형식적인 개봉으로 끝난 영화를 살펴보면 코미디가 가장 많다. 특히나 한국에서 쥐약은 패러디 코미디다. <무서운 영화> 시리즈는 미국에서 개봉할 때마다 흥행 1위에 올랐지만 한국에서는 1편 말고는 거의 대접을 못 받았다. 패러디 영화는 한국에서 일종의 컬트다.
<에어플레인>을 비롯해 <총알탄 사나이>와 <못말리는…> 시리즈, <오스틴 파워>로 명맥을 이어오던 패러디 영화에 불을 지핀 건 <무서운 영화>다. 웨이언스 형제가 감독과 각본·주연을 맡았던 1·2편에서는 거칠고 요란한 화장실 유머가 더 질펀했지만, 데이비드 주커가 3편부터 연출하기 시작하면서 패러디적 성격은 더 강화됐다. 지금까지 5편이 나온 <무서운 영화> 시리즈의 속편(5편 한국 미개봉) 가운데 최고를 꼽자면 역시 주커가 메가폰을 넘겨받은 3편을 꼽겠다.
<에어플레인>과 <총알탄 사나이>라는 걸작을 탄생시킨 명장의 작품답게 이 영화에는 패러디 코미디의 진골이라 할 만한 배우들이 합류했다. 거의 모든 패러디 화제작에서 교수님이나 사장님이나 대통령 등으로 등장해 체통을 지키면서 모든 걸 망쳐버리는 역할을 해온 레슬리 닐슨과 <못말리는 람보>와 <못말리는 로빈 후드> 등에서 토끼 모양 털신을 신고 좋아라 하며 청춘스타로서의 이미지를 날려버린 찰리 신, 그리고 두말할 필요 없는 여배우 패멀라 앤더슨이 등장하니 출발선부터 명품을 표방하는 패러디의 조건을 갖추고 태어났다 하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공포영화들(3편에서는 <링>, <싸인>, <식스 센스>)을 뒤범벅한 줄거리에 <매트릭스 리로디드> <디 아더스> <8마일> 등등을 난사하듯이 패러디한 이 영화에는 아동 성추문에 휩싸인 마이클 잭슨까지 등장한다. 사람들이 <무서운 영화> 같은 영화를 비판할 때 따라쟁이만 할 뿐 풍자는 없다고 씹는데 사실 패러디의 재미는 풍자보다 주인공 아이와 같은 이불에서 나오며 “나는 여자 취향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마이클 잭슨-을 흉내내는 단역-처럼 자기반영적 유머가 더 크다.
패멀라 앤더슨이 웃긴 이유도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금발의 멍청녀 역을 태연하게 해낼 뿐 아니라 여기서는 가슴 성형과 토미 리와의 섹스 비디오 추문까지 대놓고 연기하기 때문이다. 또 <싸인>에서 주인공 아내의 끔찍한 교통사고를 패러디한 장면에서는 찰리 신의 당시 실제 부인이었던 데니스 리처즈가 나와 남편과 멱살잡이를 하며 싸운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냉혈한 심사위원인 사이먼 코웰까지 직접 등장해 <아이돌>에서처럼 못된 소리 하다가 살해당한다. 한국에서 이런 패러디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농담의 당사자들이 출연해 주기는커녕 명예훼손 소송으로 개봉이나 될지 모르겠다.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