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WPP 수상작. 연화지정. 간쯔. 중국. 2008
[매거진 Esc] 한국의 사진가들
한국인 최초로 ‘세계보도사진’ 두 번 수상한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
“따르릉, 따르릉” 전화가 왔다. 끊겼다 이어지는 전화 속 낮은 목소리가 흥분된 톤으로 말을 붙인다. “수상했어요. 성남훈 선생이 수상했어요.” 흔들흔들 배 위에서 춤추는 듯, 송수정(사진편집자 겸 큐레이터)씨의 목소리다. 그는 지난 2월 2일에 세계보도사진(WPP)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떠난 터였다. 다음날 일간지에는 성씨의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붉게 언 뺨에 새겨진 애잔한 슬픔
세계보도사진은 54년 역사를 지닌 포토저널리즘의 가장 권위 있는 상이다. 1년에 한 번, 뉴스사진이나 다큐멘터리를 찍은 전세계 사진가와 사진기자들을 대상으로 상을 준다.
사진가 성남훈(46)씨는 제52회 세계보도사진 인물사진 싱글부문 3위에 올랐다. 이번에 수상한 작품은 중국 쓰촨성 간쯔현 아추가르 불교학교에서 배움을 닦는 비구니를 찍은 사진이다.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이 불교학교는 1만여 수도승 중 7천명이 비구니고, 그들의 반이 20대 이하다. 정직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눈동자 안에는 그를 찍는 성남훈이 보이고 그 아래 추운 바람에 붉게 얽힌 뺨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소리를 낸다. 애잔한 슬픔이 밀려온다. “볼이 눈에 들어왔다. (외모만 보면) 세상살이 힘들어서 불교학교에 들어온 듯하지만 마음을 닦기 위해서란 것을 알았다”고 그가 말한다. 성씨는 1999년 세계보도사진 일상뉴스 부문에서 상을 받은 바 있다. 두 번째다. 매우 보기 드문 일이다.
그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동강사진상, 한미사진상 국내 다큐멘터리 사진상을 휩쓸었고, 각종 사진 기획전에는 그가 일순위로 초청되었으며, 그의 사진은 <르몽드>나 <지오>, <타임> 등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다.
희한한 사실은 그의 작품들 중에 한국을 장기간 찍은 작품은 드물다는 점이다. 몇 해 전 소록도를 찍은 작품들이 거의 유일하다. 15년 넘게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아가면서 그의 손에 남은 사진들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인도네시아·이라크·르완다 등 우리땅 밖이었다. 결과물이 그러할진대 한국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라고?
피사체는 우리 밖의 현실이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카메라에 담은 시선은 한국 지방 소도시 출신의 토종, 성남훈의 눈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사진가들이 몰리는 국제적인 뉴스 현장에서 그는 다른 외국 사진가들과는 다른 한국인 성남훈만이 담을 수 있는 눈길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의 사진은 다른 어떤 세계적인 사진과도 다르고, 그렇기에 그의 사진은 세계적이다.
지난 15년 동안 그가 쫓아다닌 전쟁터는 한순간 그를 위험한 상황에 빠뜨리기도 했다. 몇 해 전 이라크 바그다드 서쪽 미군과 이슬람 수니파 사람들과 큰 싸움이 있었다. 그 정보를 듣고 그는 “그림이 되겠다”는 생각에 달려갔고, 미군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는 수니파 사람들 앞에서 셔터를 눌렀다. 그때 아무런 경고도 없이 미군이 점령한 건물에서 총탄이 쏟아졌고, 기관총을 단 차가 자신의 앞으로 돌진해 왔다. 발이 얼어붙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던 그는 그저 납작 엎드렸고 신이 그를 살렸다. 그는 “잠깐 방심한 셈”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진가들이 먼 곳에서 위치를 잡고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도 그 자리를 지킨 것이 자칫 목숨을 내놓을 뻔했다.
이런 경험들 덕분에 전쟁터에 나설 때마다 그는 제임스 본드가 된다. 첩보원처럼 무장을 하고,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믿을 만한 사람을 조수로 둔다. 성씨는 조수를 고용할 때 기준이 있다. 아이들 사진을 차에 걸어두는 사람을 선택한다. “가족을 위하는 사람은 믿을 만하고 조심성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엄청나게 위험한 취재현장에서 그가 가장 큰 관심을 두는 풍경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쟁에 휩쓸린 난민들과 아이들이다. 총탄이 박힌 칠판을 앞에 걸고 몽당연필로 공부하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만의 묘한 감성은 완벽한 사진 구도와 아름다운 선들로 구성된 흑백사진을 만든다. 평론가들은 그를 서정적이고 미학적인 구도의 대가라고 말한다. 아무리 처절한 참상이 벌어지는 현장도 그의 앵글 안으로 들어오면 처연하고 완벽한 구도로 재탄생한다. 현실을 포장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부의 비판에 “장점이자 단점이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앵글이 아니면 셔터가 눌러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특징은 사진기를 처음 잡은 곳이 예술의 도시 파리이고 20대를 보낸 곳이 줄곧 연극무대였기에 가능했다. “연출자 처지에서 대본을 보고 어떤 형태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가?” 고민했던 연극인 시절 버릇이 사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진찍기 즐기고 싶으면 재정시스템을 갖춰라
화려한 명성에도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곳간은 넉넉하지 않다. 그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강의든 매체 기고든 독립적인 재정시스템을 갖추라는 것이다. 그것이 “목숨을 걸고 늘 하고 싶은 즐거움(사진찍기)을 유지하는 방법”이며 “혼자 미학을 즐기기보다 내가 가진 재능을 사회와 호흡하고 나눌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제 그는 또다른 봇짐을 싸서 길을 떠난다. 네 대륙 열두 나라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향해서 셔터를 누를 참이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작품 사진 성남훈 제공
사진가 성남훈(46)씨. 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1999년 WPP수상작. 인도네시아민주화.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1998
코소보난민. 브라즈다. 마케도니아. 1999
르완다 난민. 키상가니. 구자이레. 1997
연화지정. 간쯔. 중국.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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