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는 농부
[매거진 esc] 지마켓과 함께하는 시골 밥상 공모전
남편은 서울내기다. 서울내기라 대보름날 쥐불놀이도 한번 해보지 못했고 논밭일도 대학 시절 농활 가서 처음이었단다. 그런 남편을 늘 불쌍히 여기며, 이렇게 시골 출신 아내를 얻어 시골 처갓집이 생기게 된 걸 고마워하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는데, 어랏! 우리 아기도 서울내기네? 어쩌면 우리 아기도 손에 흙 한번 안 묻혀보고 자라게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지난봄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기의 손을 잡고 마을 도로변에서 팔던 쌈 채소 모종 12개를 사 왔다. 마음 같아선 토마토도 고추도 사고 싶었지만 얕은 스티로폼 박스에선 키우기 무리란다.
“고작 모종 12개로 얼마나 먹겠냐? 심어놓고 물은 제대로 줄 것 같으냐? 애가 관심이나 갖겠어?” 남편은 모종을 사고 스티로폼 박스 구멍을 뚫고 흙을 담고 모종을 심는 동안 내내 옆에서 거들면서도 잔소리였다. “거참, 서울내기들은 이렇게 농사일을 모른단 말이야”라고 나도 퉁을 주며 우리의 첫 번째 ‘박스 농사’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아기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물을 주었더니 이젠 아침이면 아기가 바가지를 챙겨 “물~ 물~” 하며 옥상에 가자 한다. 심은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상추잎, 겨자잎을 따 먹기 시작해 2~3일에 한 번씩 골고루 이파리를 수확해 한 접시를 제대로 갖춰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아기도 엄마 아빠가 잎을 뜯으면 옆에서 따라 하며 바가지에 담아주고 상추를 입에 넣어 잘도 먹는다. 쑥갓은 꽃 볼 요량으로 잎을 늦게 따 키를 키웠더니 쑥~ 올라왔다. 아기도 먹는 잎보다 꽃에 더 관심이 많아서 쑥갓은 아기의 ‘완소 야채’가 되었다. “자, 그만 내려가자”라고 말하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흙 만지며 놀자”는 우리 아가. 서울에 살아도, 손바닥만 한 텃밭만 있으면 아기는 자연과 함께 자란다.
정명희/성북구 성북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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