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뿔났다
[매거진 esc] 펀펀사진첩
어릴 때 동생이 장난감을 뺏어가거나, 숨겨뒀던 맛있는 바나나를 홀딱 먹어치운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같은 어린이 처지에서 배가 아프고 속상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동생의 편이다. 입이 남산타워만큼 삐죽 튀어나오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더 꽁꽁 숨겨두어야지, 더 빨리 먹어야지’ 하는 결심밖에 할 것이 없다. 사진 속 아이는 동생이 아니라 원숭이에게 애지중지 아끼는 자동차를 빼앗겼다. 말이 안 통하는 짐승이다. 하지만 아이라고 그리 ‘사람다운’ 언어를 구사할까 싶다. 아이는 심술이 났고 원숭이는 어째 미안한 표정이다. 동물을 키우다 보면 이처럼 재미있는 상황을 목격할 때가 있다. 이때 찍은 사진은 귀한 추억이 된다. 이 사진의 매력은 두 피사체의 자연스러운 표정이다. 원숭이야 당연하겠지만 아이도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동물이나 아이들도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진가들은 자연스러움을 끄집어내기 위해 다양한 비법을 사용한다. 사진가 신미식(48)씨는 낯선 오지로 촬영을 떠날 때 휴대용 프린터와 풍선을 가져간다. 프린터는 피사체가 되어준 이들에게 그들의 얼굴사진을 인화해주려면 필요하고, 풍선은 불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오지 사람들은 이 두 경험을 통해 신씨가 편해진다. 그때부터 그의 사진은 단짝친구를 찍은 사진처럼 자연스럽다. 그가 세상에 말 거는 방법이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서로 말을 걸면서 시작된다.
글 박미향 기자·사진 사진집 < Good Luck >(존 드라이스데일 작품, 일본 겐토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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