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심판의 가방 속은 안약·프로폴리스·진통제·파스 등 의약품으로 가득하다.
[속보이는 스포츠] 심판 가방 속 물건들
‘만물상’ 심판 가방속 테마는 ‘눈’
안약은 필수…눈 마사지 기계도
‘만물상’ 심판 가방속 테마는 ‘눈’
안약은 필수…눈 마사지 기계도
문제 하나. 심판실 안 냉장고 냉동실에는 여러 개의 캔커피가 있다. 얼음 커피를 마시려는 것일까. 주목적은 아니다. 꽁꽁 얼린 캔커피를 과연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힌트는 볼, 스트라이크 판정이다.
프로야구 심판의 손은 경기 중 분주하게 움직인다. 삼진 아웃부터 세이프 판정 여부까지 큰 동작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하지만 옷매무새는 흐트러짐이 없다. 심판들의 검은 가방 속에 정답이 있다.
심판 가방 속은 만물상이 따로 없다. 진통제, 목 보호를 위한 프로폴리스, 파스는 기본이고 손톱깎이, 심지어 휴대용 반짇고리까지 있다. 지방 출장이 잦은 탓이다. 버클 없는 허리띠 같은 것도 있는데, 윗옷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심판들이 경기 내내 단정한 옷차림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주심의 가방은 아주 무겁다. 얼굴 보호구와 가슴·팔꿈치 보호대, 그리고 낭심 보호대 등이 들어 있다. 심판 장비는 모두 개인 물품이다. 시즌 전 한 차례만 지급되기 때문에 소중히 다뤄야 한다. 초시계·심판일지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얼굴 보호구는 주로 티타늄 재질로 만들어진다. 김성철 심판은 “철심으로 된 보호구는 공에 맞으면 앞부분이 휘어진다. 티타늄 소재 보호구는 휘지 않는 장점이 있기는 한데 용접 부분이 잘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공 주머니도 빠뜨릴 수 없다. 예전에는 바깥쪽 부분에만 방수 처리가 되어 있었는데 요즘에는 안쪽까지 전부 방수 처리가 되어 있다. 한여름에 공 주머니와 맞닿은 허벅지 쪽에 계속 땀이 차올라 주머니 속 공들이 다 젖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심의 신발은 누심과는 다르다. 앞과 옆, 윗부분이 아주 딱딱하다. 철판이 깔렸다고 보면 된다. 부상 방지를 위한 것인데, 통풍이 전혀 안 돼 무좀에 걸리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한여름에는 땀이 고여서 경기가 끝나 신발을 기울이면 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도 한단다. 나름 보호 장치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빠른 공에 맞으면 신발이 안쪽으로 푹 들어가기도 한다. 통증으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지만” 체면상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다. 한바탕 땀과의 전쟁을 치른 뒤 필요한 것은 탈취제. 심판들은 경기 뒤 장비에 탈취제를 뿌려 보관한다.
심판 가방 속 테마를 한 글자로 요약하면 ‘눈’이다. 매의 시력으로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전에 눈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한 기구가 여러 개 있다. 안약은 항상 휴대하고, 요즘에는 눈 마사지 기계까지 들고 다닌다. 김풍기 심판은 “세계야구클래식(WBC)에 참가해서 다른 미국 심판들하고 경기를 준비하는데 그들도 똑같은 상표의 안약을 쓰고 있어 놀랐다. 다 같이 안약을 넣고 그라운드로 나갔다”며 웃었다. 두피를 꾹꾹 누르거나 밀어 올려 마사지해주는 플라스틱 재질의 간단한 기구도 있다. 경기 전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수차례 머리를 마사지해준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할 수 있는 고무도 있다.
그렇다면 얼린 캔커피의 용도는 무엇일까. 머릿속에 생각한 답이 맞다. 바로 눈 주위에 갖다 대 눈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한 용도다.
글·사진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두피를 마사지해주는 간편 기구와 스트레칭에 쓰이는 고무도 가방 속에 넣고 다닌다.
시계 방향으로 얼굴 보호구와 팔꿈치 보호대, 낭심 보호대, 그리고 윗옷을 고정시켜주는 벨트.
눈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눈 마사지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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